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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어제와 오늘…무슨 일이 일어났나 1951년 7월8일과 10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1년을 훌쩍 넘긴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시작된 것이다. 7월8일 열린 예비회담(광문동 민가)과 10일 본회담(내봉장)은 모두 개성에서 열렸다. 개성이 한국전쟁 전의 분단선인 38도선상의 도시라는 점이 감안됐다. 즉 1951년 6월30일과 7월1일 유엔군측이 “휴전을 위한 예비회담을 원산비행장이나 개성~임진강 사이의 국도상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제의하자 공산군측은 “그럼 회담장소를 38도선 상의 개성으로 하자”고 회답했다. 개성이 한국전쟁 이전에는 38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회담장소로 낙점된 것이었다. 그러나 개성지역이 그 당시 공산군측의 치하에 속했다는 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1951년 11월9일 판문점에서 열린 ..
'소박데기' 보물의 명예회복 1933년 4월8일 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밭을 갈던 주민 김덕언씨가 금귀고리·금반지 각 1점과 금구슬 33알을 발견했다. 김씨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추가발굴에서 나머지 금귀고리 1점과 금팔찌 1쌍 등과 금구슬 44알, 비취색 굽은 옥 1점 등을 더 찾아냈다. 금구슬 77알과 비취옥을 이으니 완벽한 목걸이가 됐다. 여기에 합체된 금귀고리 한 쌍까지…. 무덤 주인공이 차고 있던 장신구 세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물의 운명은 얄궂었다. 김씨 수습품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아리미쓰 발굴품은 도쿄제실박물관(현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나뉘어 이산가족처럼 보관됐다. 그러다 1965년 한·일 협정 체결로 일본에 있던 유물 반쪽이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다. 문화재관리국은 1..
'못난이 아닌 개성파 국보' 인증받은 은진미륵 ‘은진미륵’으로 알려진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못생긴 불상’으로 폄훼됐다. 일본의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균형미가 없고, 머리가 지나치게 크며 면상 또한 평범하다”고 혹평했다. 고고미술사학자인 고 김원룡 박사도 “전신의 반쯤 되는 거대한 얼굴은 삼각형이어서 턱이 넓고… 일자로 다문 입, 넓적한 코와 함께 가장 미련한 타입”이라 했다. 김원룡 박사는 특히 “은진미륵이야말로 신라의 전통을 완전히 잃어버린 최악의 졸작”이라고 ‘디스’했다. 1000년 이상 그 자리에 그냥 서있는 죄밖에 없는 은진미륵으로서는 어이없이 당해온 ‘의문의 1패’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삼등신’이니 ‘미련한 대두’니, ‘최악의 졸작’이니 하고 손가락질하다 못해 각종 언론 지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술논문에까..
'팀킴' 화가 김득신이 그린 '조선 최고의 짤방' 조선 후기 풍속도의 계보는 김홍도(1745~)-신윤복(1758~?)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민들의 일상과 애환을 진솔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한 김홍도와, 양반과 기녀들의 사랑과 일탈을 때로는 애로틱하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그려낸 신윤복의 풍속도가 워낙 빼어났다. 하지만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사이에 또 한사람의 풍속화가가 있다. 김홍도보다는 9살 아래, 신윤복 보다는 4살 위인 긍재 김득신(1754~1822)이다. 김득신의 대표작인 ‘파적도(야묘도추)’.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도망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어미닭은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뜬채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고 병아리들은 사방으로 도망친다. 이 모습을 본 주인영감은 돗자리를 짜다말고 곰방대를 후려치며 뛰어들지만 역부족이다. 툇마루에서 그만..
안경 아나운서의 용기 “다시 이렇게 밝고 통쾌한 물건을 낳아 사람들이 이용하니 노인 눈이 아니요 젊은이의 눈이로다. 털끝만큼 작은 것도 볼 수 있으니 누가 이러한 이치를 알아내었나. 바로 구라파의 사람이도다. 저 구라파의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인을 행하였도다.”() 실학자 이익(1681∼1763)의 안경예찬론이다. 임진왜란 전후 조선에 들어온 안경은 이런저런 이유로 눈이 침침해진 독서인의 ‘잇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안경예절이 생겼다. 이규경(1788~?)은 “아무리 눈이 나빠도 존귀한 사람이나 연장자 앞에서는 안경을 써서는 안된다”면서 “안경 너머로 높은 분이나 연장자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건방지기 때문”이라 소개했다.() 심지어는 지존인 임금(정조)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꺼려 했다. “내 시..
잘못된 임시정부 수립일…어디서부터 문제였나 4월 13일자 달력을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1990년부터 시작된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위해 제정한 날짜였다. 왜 4월13일이었을까. 상하이(上海) 주재 일본 총영사국 경찰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후 임시정부 사무실을 급습·압수한 문건을 토대로 작성한 ‘조선민족운동연감’을 근거로 했다. 1938년 4월30일자 한국국민당 기관지인 18호기사. ‘1919년 4월11일 임시로 10개조의 헌장을 제정 발포하고 임시정부를 조직했는데, 금년 4월11일이 임시정부를 성립한지 제19회째 되는 기념일이므로 임시정부에서는 그 날에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내용이다.|출처: 한시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바로 잡아야 ’, 제44집, 2008..
15살에 신라 가야 백제인은 나라를 구했다 “온조왕 41년(기원후 23년) 한수 동북쪽의 여러 부락 사람으로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위례성(慰禮城)을 수리했다.” “진사왕 2년(386년)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국경을 방비하는 관문을 설치했다.” “전지왕 13년(417년) 동·북부의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사구성(沙口城)을 쌓았다. 병관좌평 해구(解丘)가 공사를 감독했다.” “동성왕 12년(490년) 북부의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사현성과 이산성 두 성을 쌓았다.” “무령왕 323년(523년) 한강 북쪽 백성 중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쌍현성을 쌓게 하였다.” 김해 퇴래리 고분에서 발굴한 것으로 4세기 무렵 가야의 철기 문화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온조왕의 유훈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기사다. 모두 15살이라는 공통점이..
공시생이 읽어야 할 '지×같은' 필독서? “대학 교수도 풀 수 없는 지×같은 문제를 출제하다니….” 온라인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씨가 비속어를 섞어가며 지난달 24일의 서울시 지방공무원 7급 필기시험 한국사 문제를 비판한 동영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려 후기의 역사서를 시간 순으로 옳게 배열한 것’을 찾는 7번 문항의 보기는 ‘ㄱ)민지의 본조편년강목, ㄴ)이제현의 사략, ㄷ)원부·허공의 고금록, ㄹ)이승휴의 제왕운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틈틈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필자에게도 ‘멘붕’의 문제였다. (1317년)과 (1357년)도 그렇지만 불과 3년 차이인 (1284년)과 (1287년)를 구별해내라니…. 무엇보다 이라는 역사책이 생소해서 를 검색해보았다. 모두 3종류의 이 검색됐다. 먼저 “(고려 전기 문종대의) 박인량(?~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