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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성이 항복했구나! 백제의 이름이 끊겼구나!" ‘백제 부흥운동 거점 부안 우금산성 남문지 확인.’ 올들어 두차례에 걸쳐 들어온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요컨대 ‘부안 우금산성은 백제부흥군의 최후 거점성’이라고 명시해놓은 것이다. 산성을 발굴한 전북문화재연구원은 더 나아가 “(몇몇 학자들이) 우금산성을 백제부흥군의 최후 거점성인 주류성이라고 주장했다”면서 산성조사의 경위와 목적을 밝혔다. 물론 학계에서도 우금산성을 백제부흥군(660~663)의 최후거점이자 임시수도로 보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핮 하지만 여러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어떤 확실한 유물이나 유구가 나온 적은 없다. 우금산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문화재청이 우금산성과 관련된 보도자료를 내면서 ‘백제 부흥군의 최후 거점’ 운운하는 표현을 쓴 것은 잘못됐다. 국..
‘에어포스 은(Air Force One)’ 참매 1호 “참매는 몸통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균형있는 외모와, 빠르고 영리하며 결패(결기와 패기)있는 기질을 갖고 있다.” 2009년 1월10일 북한 주간지 는 참매를 북한의 나라새, 즉 국조(國鳥)로 소개하고 있다. 는 “매로 꿩을 사냥하는 장면은 안악 3호분과 삼실총 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 예외없이 그려져 있고, 고려 시기에는 매를 기르는 관청(응방·鷹房)을 둘만큼 우리 민족의 생활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삼실총 벽화에 그려진 매사냥 그림. 특히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참매는 용맹스러운 새이며, 조선사람의 기질을 닮은 새”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빠른 속도로 하강해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한순간에 먹잇감을 확 낚아채는 참매의 기질을 일컬은 것이리라. 비단 북한 뿐이 아니다..
마오쩌둥 밴플리트 이회영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사망자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는 전용 열차에 올라 침통한 표정으로 전송하며 “속죄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사망자 중에 뭔가 중요한 인물이 포함된게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의 행적이 관심을 끌었다. 교통사고가 한국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묻혀있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교권 매체는 “사망자 가운데 마오쩌둥 주석의 차남인 마오안칭(毛岸靑)의 외아들, 즉 마오쩌둥의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마오 주석의 유일한 적손인 마오신위는..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소개한 가 2쇄를 찍었습니다 차후에 제2권 제3권이 나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를 생각하고자 한 것입니다.(述往事 思來者)”( ‘태사공자서’ ‘사마천전·보임안서’) 사마천이 불후의 역사서인 를 쓴 까닭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E) 핼릿(H) 카(1892∼1982) 역시 (1961년)에서 유명한 말을 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그러고 보면 사마천이나 E H 카나, 두 사람의 뜻은 2000년의 시공을 초월했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즉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며, 과거(역사)를 배우는 것은 바로 현..
반달곰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허한다" 1983년 5월 설악산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반달가슴곰이 2주 이상 고통을 호소하다가 끝내 숨졌다. 밀렵꾼들이 10여일 이상 총을 맞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곰의 동태를 살피면서 밀매꾼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곰의 쓸개, 즉 웅담을 키우려고 사경을 해매는 곰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뉴스는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이 죽은 곰의 웅담(180g)을 4600만원에 공매처분했다는 것이다. 창경궁에서 실시된 공매의 낙찰자 인터뷰 기사까지 자랑스레 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문화재관리국이 천연기념물(제329호)의 내장(웅담)을 대놓고 팔았다는, 지금 같으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뉴스가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75년 9월에는 꿀바른 고기에 폭약을 넣어 반달가슴곰이 지..
"강보에 싸인 두 병정아!"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선생님, 제가 채소바구니를 짊어지고 날마다 홍구(虹口·훙커우) 방면으로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上海·상하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선생님께서….” 1932년 4월1일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를 남겨둔채 혈혈단신 상하이로 건너온 24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다. 청년은 피혁공장과 세탁소 등에서 일하다가 훙커우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백범을 찾아온 용건은 “(이봉창 의사처럼) 제발 나를 독립운동 자원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김구 선생은 허심탄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청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끝..
축구는 왜 ‘안녕! 단일팀’을 선언했는가 남북한 축구 대결사에서 명장면 하나가 있다. 1978년 12월20일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한 남북한 주장인 김호곤과 김종민 선수가 1위 시상대에서 어깨동무한 사건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으르렁댔지만 시상대에서는 한민족임을 과시한 가슴뭉클한 장면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그 장면은 ‘연출’이었다. 비좁은 1위 시상대 위에 오르려고 남북 선수들이 서로 밀치는 촌극을 빚었고, 급기야 김호곤 주장이 시상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겨우 자리를 다잡은 김호곤 선수가 “남의 눈도 있으니 잘해보자”고 속삭이고, 이를 김광민 선수가 받아들이면서 ‘어깨동무 사진’(사진)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는 남북한 축구가 벌인 치열한 신경전의 단편에 불과하다. 1960년대엔 북한이 한국을 압도했다. 예컨대 북한이 196..
남북 정상의 군사분계선 '금 밟기 놀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은 엄밀히 따지면 군사분계점(휴전점)이라 해야 한다. 선이 아니라 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공산군측은 54년 9월까지 임진강변의 제0001호 말뚝(표지판)에서 동해안의 제1292호 말뚝까지를 지도상으로 이은 선을 군사분계선이라 했다. 그중 696개는 유엔군이, 596개는 북한군이 관리한다. 간격도 200~500m 사이로 들쭉날쭉했다. 흔히 155마일(248㎞)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디지털맵으로는 148마일(238~239㎞)로 계산된다. 어찌됐든 이 ‘지도상의 선’을 기준으로 남북 2㎞씩 만들어놓은 완충지대가 바로 비무장지대다. 그런데 휴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즉 임진강변 이하~강화도와 황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