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주개총' 고고학, '쓰레기' 특별전 1971년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랏제가 애리조나주 투손의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했다. 랏제는 출토된 기저귀·신문·플라스틱 등을 분석해서 이 지역의 생활상을 복원했다. ‘쓰레기 고고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6년 전 한국에서 이미 ‘쓰레기 고고학’의 개념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1965년 김원룡 교수가 이끈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반 학생들의 ‘신앙촌’ 발굴이었다. 1957년 박태선 장로 일파가 설립한 신앙촌에는 65년 당시 1만 6000여명이 집단거주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신앙촌의 쓰레기 더미에서 ‘신앙촌 8년사(1957~65)’를 복원했다. 이들은 발굴결과를 토대로 ‘주개총(廚芥塚) 발굴을 통한 신앙촌의 문화복원’이라는 공동졸업논문을 발표했다. ‘주.. 파문 일으킨 일본장관 다나카의 경천사탑 약탈사건 “일본의 특사 다나카 자작(궁내대신)의 흉계로…무기를 가진 일본인들이 경천사탑을 급습해서 탑을 해체하여 실어갔다고 한다.…” 1907년 3월7일 가 해괴망측한 단독보도를 씁니다. 1907년 1월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1843~1939)가 경천사 10층석탑을 무단으로 해체해서 일본으로 반출했다는 충격적인 기사였습니다. 이 대리석 탑은 높이만 13m에 이르는 섬세한 부조의 걸작 석조유물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탑을 송두리째 해체한 뒤 무단반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는 이날의 1보를 시작으로 6월까지 3개월 동안 끈질기게 이 야만적인 약탈행위를 연속 보도했습니다. 이 약탈사건은 지각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손가락질 받았고, 결국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됩니다. 한일병합 .. 노벨의 질투심과 '수학상'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기부로 1901년 시작된 노벨상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하나 있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같은 기초 분야에 상을 주면서 왜 수학상은 없을까. ‘노벨상은 반드시 발명이나 발견을 통해 실질적으로 인류 복지에 기여한 자’라는 조건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란 신문들이 16일 요절한 천재 여성 수학자의 소식을 전하며 히잡을 쓰지 않은 그의 얼굴을 크게 실었다. 수학은 당시 실용성과는 관계없는 학문으로 꼽혔기에 노벨상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이 수근거렸다.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노벨이 당시 스웨덴의 여성 수학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저명한 수학자인 미타그 레플레르(1848~1927)를 좋아했다. 결국 노벨은 이 삼각관계에서 패배자.. 트럼프의 골프와 카터의 집짓기 [여적] 트럼프의 골프와 카터의 집 짓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 대회를 즐기는 동안 92살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지난주 목요일 US 여자 오픈 골프 대회를 참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하루를 카터 전 대통령의 하루와 비교하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트럼프가 재임 176일 동안 36번이나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반면 92살 고령인 카터는 89살의 로잘린 여사와 함께 안전모를 쓰고 34번째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했다.” 지난 2001년 8월 충남 아산에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하여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얼핏 트럼프를 폄훼하려는 비아냥 기사로 읽힐 수 있겠다. .. 인조, 죄가 없다면 광해군에게 돌을 던져라 인조반정 세력이 광해군을 쫓아낸 명분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폐모살제였습니다.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10년간이나 유폐시킨 죄와 8살짜리 이복동생(영창대군)을 죽인 죄 등을 물었습니다. 또하나는 임진왜란으로 불탄 궁궐을 중수하면서 백성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죄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배반하고 오랑캐(후금)와 화친한 죄였습니다. 세가지 죄상 중 첫번째, 즉 폐모살제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큰 죄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두번째 궁궐의 중수도 보기에 따라서는 잘못된 내정으로 지탄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업적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분조(分朝)의 책임자로서 전국을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를 모집했습니다. 또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 훈민정음 '낙장' 미스터리 은 예의와 해례로 나뉜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예의’는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나 등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말까지 한글 창제의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해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대 및 범자, 혹은 몽골문자 기원설은 물론이고, 어이없게도 화장실 창살 기원설까지 등장했다. 1940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경북 안동에서 기와집 10채값을 주고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있는 원본(사진)을 구입했다.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세종의 한글 창제 신화는 자칫 물거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간송은 500년 만에 찾아낸 기화(奇貨)를 얼마나 아꼈던지 한국전쟁 중에도 품에 안고 다녔고, 잘 때도 배개속에 넣었다. 이렇게 극적으로 .. 조선판 쇼생크탈출…광해군 일가의 비극 “폐위된 광해군이 이틀 동안이나 대궐안에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속히 대궐 밖으로 끌어내 안치하라.” 인조반정이 일어난지 이틀 뒤인 1623년 3월 14일 인목대비가 앙앙불락했다. 철천지 원수인 광해군이 대궐에 있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다고 새 임금(인조)과 반정공신들을 다그친 것이다. 심지어 인목대비는 “내가 두 번 절하고 청한다”고까지 했다. “역괴 혼(琿·광해군의 이름)이 아직도 대궐에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한 시각도 용납 못할 대역죄인을 어찌 편히 앉혀놓고 있느냐. 경들은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도 빨리 안치시키도록 하라. 그런 후에야 (서궁에 유폐된) 내가 대궐로 옮겨갈 것이다. 절대 소홀하게 처리하지 말라. 내 경들에게 두 번 절하며 청하노라.”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있는 광해군과 .. 비빔밥 외교와 양푼 비빔밥 비빔밥의 레시피는 1800년대 말엽의 음식조리서인 에서 처음 등장한다. “밥에 고기를 부쳐 썰고, 각색의 채소와 다시마 튀각을 부셔 놓고…깨소금·기름을 넣어 비벼서…위에는 계란을 부쳐…넣는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비빔밥의 유래가 뿌리가 깊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이런저런 재료를 다 넣어 비비기만 하는데 번듯한 레시피를 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과,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아야 할 섣달 그믐날에 부엌 찬간에 남은 반찬을 어떻게 처리했겠는가. 농사철 아낙들이 이고간 새참을 어떻게 먹었겠는가. 아마도 큰 그릇에 밥(잿메)과 갖가지 반찬(혹은 제사음식)을 넣고 그냥 썩썩 비벼먹었을 것이다. 비빔밥은 얼마 전까지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이.. 이전 1 ··· 83 84 85 86 87 88 89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