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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게놈과 ‘멜팅포트’ 한국의 건국신화는 천손신화와 난생신화로 나눌 수 있다. 백성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온 고조선 단군의 아버지 환웅과,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북부여왕 해모수는 대표적인 천손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락국의 김수로왕 등 6가야 임금은 모두 알(卵)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천손신화와 난생신화의 교묘한 융합이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면 천전리에 있는 고인돌. 남방계 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시대의 산물이다. 주몽은 천손신화의 주인공인 해모수와 정을 통한 어머니(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늘의 빛이 자꾸만 유화부인에게 비치면서 주몽(알)을 임신했다. 또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의 옆에서 기다리던 천마는 사람들이 다가오자 ..
조작된 영웅과 심일 소령의 무용담 데이비드 크로켓(1786~1836)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이끈 전쟁영웅이다. 크로켓은 1836년 벌어진 멕시코군과의 알라모 요새 전투에서 일약 미국의 레전드로 발돋움했다. 멕시코군 7000명의 포위 공격에 텍사스군 187명이 13일간이나 저항했는데, 최후의 1인으로 버티다 쓰러진 영웅이 바로 크로켓이었다는 것이다. 크로켓의 이야기는 존 웨인의 ‘알라모’(1960) 등 6번이나 영화로 제작됐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1968년 “나의 고조할아버지가 알라모 요새에서 전사했으며, 베트남 전쟁에서 꼭 필요한 모범적인 군인상은 바로 크로켓 같은 영웅”이라고 추앙했다. 그러나 ‘고조 할아버지 운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고, 크로켓의 영웅담 또한 ‘조작’이었다. 존슨 대통 멕시코와의 알라모 전투에서 최후까지..
미국의 77대성인 '김씨'와 9848위 성인 '트럼프'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전체 성씨는 5582개 정도다. 그 중 4075개가 한자 성씨가 아니니 단일 민족이니 뭐니 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성씨와 비교해보면 새발의 피다. 지난해 말 미 연방 센서스국이 분석한 미국인의 전체 성씨(2010년 기준)는 무려 630만개였다. 이 가운데 390만개의 성씨는 단 한 사람씩이다. 작성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성씨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부동의 최대 성씨인 스미스(244만명)의 비율이 전체인구(2억9500만명)의 0.82%에 불과하다. 미국의 전체 성씨 중 김씨는 콕스와 워드, 리처드슨을 제치고 77위에 올랐다. 박씨는 289위에 랭크됐다. 2~4위인 존슨(193만명)과 윌리엄스(163만명), 브라운(144만명..
고려 조선의 '덕후', 그 기묘한 '덕질' 요즘 ‘덕후’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우리 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라는데요. 원래는 집이나 댁의 높임말인데 그 뜻이 바뀌어 집안에 틀어박혀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사람을 지칭했답니다. 요즘엔 특정 분야에 몰두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덕후’들은 왕조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괴상한 취미라는 의미에서 ‘벽(癖)’이라 했습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땅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을 ‘전벽(田癖)’ ‘지벽(地癖)’이라 했고, 남을 고소 고발하는 게 취미인 자를 ‘소벽(疏癖)’ 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하면 ‘전벽(傳癖)’ 혹은 ‘서음(書淫)’ 이라 했으며, 술과 시에 탐익하는 사람을 ‘주벽’ ‘시마(詩魔)’라 했습니다. 물론..
천년수가 담긴 요술 황금 사리병의 정체 왕흥사 출토 사리기 명문을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을 볼 수 있다. 즉, 백제왕 창이 죽은 아들을 위해 절을 짓고, 원래 사리 2매를 봉안했는데, 나중에 신의 조화(신령스럽게)로 3매로 변했다.(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는 내용이다. 그런데 괴상한 것은 그렇다면 금제 사리병 안에 존재했어야 할 사리는 2매나 3매는커녕 단 1매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금제사리병엔 1400년된 물이 담겨있었고, 사리 또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리병 안에는 맑은 액체가 가득 들어차 있었을 뿐. 금제사리병을 품에 안고 있는 은제사리병과 사리함에서도 한 알의 사리도 확인되지 않았다. 어찌된 것일까. 그렇다면 명문은 거짓이란 말인가.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누가 사리를 꺼냈을까? 하지만 조사단에 따르면 사리함..
백제 창왕은 왜 왕흥사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을까 2007년 10월10일, 부여 왕흥사 목탑지를 조사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은 숨이 멎는듯 했다. 이미 노출된 목탑지 초석의 남쪽 중앙 끝단에서 다른 석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단면 사다리꼴의 화강암제 뚜껑이었다. 석재는 사리구멍을 조성한 뒤 이를 막아낸 뚜껑역할을 한 것이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뚜껑(25센티미터×15센티미터×7센티미터) 표면앤 붉은 주사(朱砂)로 칠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주칠은 익산 왕궁리 오층탑에서 발견된 사리외함이나 남원 출토 사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었다. 주칠을 한 이유는 벽사, 즉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왕흥사 목탑지에서 수습된 명문 사리장엄구. ■'백-제-창-왕!' 조사단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뚜껑을 열었다. 내부구멍(20센티미터×10센..
걸그룹의 비조는 '저고리시스터즈'였다 흔히 걸그룹의 원조라면 1997년 결성한 베이비복스나 SES 등을 꼽는다. 하지만 그보다 60여년 전에 활약한 걸그룹의 비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저고리 시스터즈’다. 비조(鼻祖)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이나 사물의 시초를 일컫는다. 동양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는 코부터 그 형태를 갖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코 비(鼻), 조상 조(祖)를 써서 비조라 한다. 그런 의미라면 걸그룹의 비조는 저고리시스터즈라는 이야기다. 저고리시스터즈를 만든 이는 당시 OK레코드사를 설립한 이철(1904~1944)이란 인물이다. 악극단에서 김정구(왼쪽에서 세번째)와 함께 노래 부르는 걸그룹의 비조 ‘저고리시스터즈’. 왼쪽부터 이준희, 김능자, 이난영, 장세정, 박향림, 서봉희. |동아일보..
백제인이 백주대로에 '남근'을 세운 까닭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