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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예명을 둘러싼 해프닝 1976년 4월 29일 경향신문은 의미심장한 한줄짜리 기사를 소개한다. ‘연예인들의 국어명 전용 전용작업을 펼쳐온 MBC가 가수 김세나 양에게 순수 우리 말로 이름을 바꿔 출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만약 김세나가 본명인 김희숙이나 다른 우리말 예명을 쓰지 않는 한 MBC에 출연할 수 없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는 1970년대 연예계로까지 불똥이 튄 이른바 국어순화운동의 광풍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화순화전국연합회가 창설되고(73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어순화운동을 독려하고 나섰으니(76년 4월) 오죽했으랴.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에 “모든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를 우리 말로 다듬는 시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분야별로 시안만들어 심의기구 검토하게..
사람보다 나은 짐승, 짐승보다 못한 사람 ‘忠犬 라츠, 류머티즘 病死’ 경향신문 1969년 9월 5일자는 ‘라츠’라는 개(犬)의 부음기사를 실었다. 신문이 사람도 아닌 개의 죽음을 알린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고견(故犬)’은 바로 6년 전인 63년 사냥을 나갔다가 오발사고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주인을 구한 충견이었다. 무슨 사연일까. 라츠는 경기도 광주군에서 주인 유동근씨의 집에 살고 있었던 셰퍼드였다.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주인을 구한 충견 라츠. ■주인 구한 충견 라츠 1963년 2월28일 주인집 아들(유병주·17살)은 아버지의 사냥총을 들고 15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갔다. 라츠가 물론 동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병주군이 그만 돌뿌리에 걸려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총의 방아쇠가 당겨져 이..
평양 기생이 신라 금관을 쓴 까닭 1926년 10월 10일 경주 노서동의 고분 발굴장에서 감탄사가 터졌습니다.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황태자(재위 1950~73)의 목소리였습니다. 일제는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황태자 부부를 위해 이벤트를 펼쳤습니다. 마침 경주에서 봉황이 장식된 금관이 발견된 것에 착안한 것입니다. 일제는 유물 일체를 노출시켜 놓고 황태자 부부에게 발굴의 피날레를 장식하도록 한 것입니다. 경주를 방문한 구스타프 황태자는 일제가 반쯤 노출해놓은 금제 허리띠와 금제 장식 등을 조심스레 수습했습니다. 일제는 금관까지 황태자가 수습하도록 부탁했습니다. 황태자가 금관을 들어올리자 환성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일제는 스웨덴의 한문 명칭인 서전(瑞典)의 ‘서(瑞)’와 봉황의 ‘봉(鳳)’자를 따서 ‘서봉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
때때옷 입고 재롱 떤 선비…부모님을 생각하며 이번 주 팟 캐스트 주제는 부모님 이야기입니다. 설을 맞이해서 일년에 단 한 번이라도 부모님 생각 해보라는 뜻에서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농암 이현보 선생을 아시는지요. '어부가'로 유명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런 농암 선생은 70살이 넘은 연세에, 90이 넘은 아버지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벌였답니다. 그것도 후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랬답니다.농암 선생이 꼬까옷을 입고 춤을 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농암 선생은 80이 넘은 고향 어른들을 모두 모아 때때마다 마을잔치를 열었답니다. 그 자리에는 양반은 물론 상인, 심지어는 천민들까지 다 모였답니다. 자, 설을 맞아 농암 선생이 전해주는 이야기, 즉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 지를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잰내비, 주걱턱, 악녀…막말외교의 뿌리 ‘정치 무능아’, ‘못난이 하는 짓마다 사달’, ‘돌부처도 낯을 붉힐 노릇’, ‘역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산송장’….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이 회고록을 출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표현들이다. 하지만 이는 애교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의 미국상영을 계기로 오바마 미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발표문을 보라. “아프리카 원시림 속의 잰내비 상통(원숭이 얼굴) 그대로다. 인류가 진화되어 수백만년 흐르도록 잰내비 모양이다.” 발해인들을 무식한 놈들이라 욕한 최치원. 발해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전성기를 이루자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잰내비, 주걱턱, 살인마 악녀… 그 때 뿐이 아니다. “혈통..
'황태자 금관' '기생 금관'…서봉총 금관 “마-블러스!(경이롭구나!)” 1926년 10월 10일 경주 노서동의 고분 발굴장에서 이국(異國)의 감탄사가 터졌다.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황태자(재위 1950~73)였다. 일제는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황태자 부부를 위해 이벤트를 펼치고 있었다. 마침 경주에서 봉황이 장식된 금관이 발견된 것에 착안했다. 일제는 유물 일체를 노출시켜 놓고 황태자 부부에게 발굴의 피날레를 장식하도록 한 것이다. 구스타프 황태자는 북유럽·그리스·로마의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 있던 고고학자였다. 경주를 방문한 황태자는 일제가 반쯤 노출해놓은 금제 허리띠와 금제 장식 등을 조심스레 수습했다. 발굴단의 마지막 한마디가 황태자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이 금관을 전하께서 수습해주시옵소서.” 황태자가 금관을 들어올리자 환성과 박..
대장금, 장덕, 애종…조선의 여의사 열전 팟캐스트 15회 주제는 ‘대장금’입니다.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조선 시대 최고의 커리어 우먼들의 이야기, 즉 입니다. 조선에서 여자의사가 탄생한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태종·세종 때의 일인데, “남자 의사가 (진맥을 한다면서) 여인들의 살을 주무르게 되니 망측스럽다”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남자의사의 손길이 무서워 병을 감추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아녀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국 8도의 10~15살 관기들 가운데 영리한 여자아이들을 뽑아 서울로 유학시켰습니다. 이들은 3년간 혹독한 의학공부를 한 끝에 의녀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의녀 가운데 대장금은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사극 에도 묘사됐듯이 사실상 중종 임금의 주치의 노릇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종 임금은 남자의사들을 내치고 대장금을 비롯한 의녀..
한국축구에 꽃을 던지는 이유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지난 1월31일 밤부터 포탈사이트에는 흥미로운 검색어가 떴다. ‘차두리 고마워’였다. 네티즌들이 호주와의 결승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차두리 선수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자”면서 자발적인 검색어 운동을 벌인 것이다. 경기 하루 뒤인 2월 1일 ‘차두리 고마워’ 검색어에는 200만 이상의 클릭이 기록됐다. 연장전에서 실수한 김진수 선수에게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나왔다. ‘모든 선수들에게 꽃을 던지자’는 상찬의 릴레이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기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안컵에서 55년만의 우승을 노렸기에 준우승의 ‘결과’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은 대표팀이 보여준 ‘좋은 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축구는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