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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는 진시황의 죄상이 아니다. “진나라는 분서를 자행했다. 그러나 육경(六經)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나라는 갱유를 저질렀다. 그러나 유생들이 끊어지지 않았다.” 청말 민국 초의 사상가인 캉유웨이(康有爲·1858~1927)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이렇게 평했다. 캉유웨이는 과연 유교 경전(육경)을 포함, 천하의 모든 서적들을 깡그리 불태우고, 모든 유생들을 산채로 묻어버린 진시황의 폭군 이미지를 ‘세탁’하려 했던 것일까. 중국 CCTV 프로그램에서 를 강의한 왕리췬(王立群) 교수(허난대)의 (김영사)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를 펼쳐 들었다. 진시황이 죽은 때가 기원전 210년이고, 사마천이 를 쓴 중심연대를 대략 기원전 110년 언저리로 본다면…. 약 100년의 차이라면, 사실상 동시대의 역사인 셈이 아닐까. 바로 그 시대의..
"남자 의사가 여인의 살을 주무르니…" “산증(疝症·생식기와 고환이 붓고 아픈 병증)과 복통이 있었는데…. 어제부터 대소변이 보통 때와 같지 않구나. 의녀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써야 할 약을 의논하여라.”(1544년) 에 나오는 임금의 지시사항들이다. 중종임금이 의녀, 즉 여자의사를 무한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의녀들이 임금의 비뇨기 질환도 돌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 등장하는 여의는 아마도 ‘의녀 장금’일 가능성이 크다. 중종이 얼마나 장금을 신뢰했는지는 곳곳에 등장하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장금이 에 처음 등장하는 때는 1515년(중종 10년)이다. “의녀 장금은 왕후 출산에 공이 커서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했는데, 대고(大故·왕후의 죽음)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그에게 상을 베풀지는 못할만정 형..
'소나무 양병설'의 현장 연미정(燕尾亭).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서 한 줄기는 서해로, 다른 한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 모습이 ‘제비꼬리’ 같다 해서 ‘연미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삼포왜란 때 전공을 세운 황형 장군(1459~1520년)에게 하사한 정자이다. 황형 장군의 전설은 신비롭기만 하다. 낙향 후 연미정에서 바둑으로 소일하던 장군은 동네 아이들에게 볶은 콩을 나눠 주면서 소나무 묘목을 옮겨오라고 시켰다. 아이들이 싫증을 느끼면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하면서 소나무를 계속 심었다. 동네사람들이 물으면 ‘그저 나랏일에 쓰일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강화 3경인 연미정의 절경. 제비꼬리 처럼 닮은 지형에 놓인 정자라 해서 이름붙었다. 황형 장군의 ‘소나무 양병설’과 ‘정묘조약 체결’, ‘유도 송아지 구출작전’ 등 갖가지 사연들을..
'임금이시여! 백성을 버리시나이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1637년 1월30일은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로 기록돼있다. 임금(인조)이 오랑캐인 청태종의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이나 무릎을 꿇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용포를 벗고 청의(靑衣)로 갈아입은 뒤 백마를 타고 (남한산성) 서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항복의식을 펼쳤다. 신하된 주제에 용포를 입을 수 없었고, 죄를 지었으니 정문으로 나올 수 없으며, 항복했으니 백마를 타고 나온 것이다. 청태종은 항복 의식 도중에 고기를 베어 개(犬)에게 던져주었다. 항복한 조선(개)에게 은전(고기)을 베푸는 꼴이었다. 조선의 상징인 임금이 굴욕을 당했던 그 날을 ‘삼전도의 굴욕’이라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못난 임금이 무릎을 꿇은 것이 뭣이 그리 굴욕이란 말인가. 강화 갑곶진. ..
장성택, 주공 단, 여불위 … '후견인의 운명' 역사상 ‘후견인’의 전범은 역시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공(周公) 단(旦)’이라 할 수 있다. 주공 단이 누구인가. 그는 상나라를 무찌르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었다.(기원전 1046년)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창업에 성공한 무왕은 불과 2년 만에 중병에 시달린다. 여전히 상나라 유민들의 반발이 거셌던 시점이어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 때 무왕의 첫째 동생인 주공이 목욕재계하고 제단에 올랐다. 진시황릉 근처 병마용에서 확인된 청동마차. 진시황은 이런 마차를 타고 현장지도를 벌이다 객사하고 말았다. ■후견인의 전범 “천지신명이시어! 형(무왕)의 병을 제가 대신 가져가겠나이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주공은 “형님 대신 저를 죽여달라”고 기도한 축문을 ‘금색 실로 묶은 나무궤짝’에 감춰두..
동이족, 그 슬픈 전설 새삼스러운 궁금증 하나. 복숭아 나무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없애주는 상서로운 나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절대 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동이족의 ‘슬픈 전설’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전설 속 ‘동이족의 명궁’인 ‘예’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 임금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태양이 10개나 있었다.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난 자식들이었다. 10개의 태양은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즉 삼족오였다. 이들은 어머니 희화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올랐다. 그 일을 수만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부여의 제기. 동이족은 하늘신, 동이의..
"조선인은 일본의 스파이다"? “자본주의 적들에게 포위돼있는 소련에는 외국의 스파이들로 가득차 있다.” 1937년 3월3일 스탈린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심상찮은 연설을 했다. 그러자 공산당 기관지 는 기다렸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쏟아낸다. ‘일본의 간첩망’(3월16일), ‘소비에트 원동에서 스파이 행위’(4월23일)’ 등등…. 일본이 밀파한 조선 스파이들이 소련 내의 군대집결 및 이동 등 각종 정보들을 수집해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왜 일본을 경계한다면서 조선인들을 스파이로 지목했을까. 그것이 바로 망국의 설움이었다. 러시아 연해주 체르냐치노 마을유적 옆을 흐르는 라즈돌라야강(솔빈강). 이 마을에는 옥저-발해-고려인들이 시차를 두고 터전을 잡고 살았음을 알려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개를 든 황화론 ..
조선의 어느 재야사학자 '분투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