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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도 '비서실'의 손을 들어주다. 사정당국(사헌부)과 국왕 비서실간(승정원) 자존심 싸움을 벌이면 국왕은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 그것도 여느 임금도 아니고 세종대왕이라면? 아닌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권부의 핵심끼리 미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1424년(세종 6년) 8월26일의 일이다. 사헌부가 좌부대언(좌부승지) 이대를 탄핵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날 지신사(도승지) 곽존중을 비롯한 승정원 관리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사헌부 소속 장령(掌令·정4품) 양활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계본)을 들고 대궐 뜰에 섰다. 평소대로라면 이 상소문은 승정원이 받아 임금에게 올려야 했다. 그런데 밥을 먹고 있던 승지가 별감을 시켜 “지금 식사 ..
역사상 최강의 활쏘기 달인은?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송양)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모처에서 도읍했느니라.”(주몽) “무슨 소리! 우린 여러 대에 걸쳐 왕노릇을 했노라. 땅이 좁아 두 사람의 왕이 필요없다. 어떠냐. 내 부하가 되는 것이….”(송양) “웃기는군! 신의 자손도 아닌 당신이야 말로 천제를 계승한 내 밑에 엎드려야 하는 것이 맞다.” ■주몽과 송양의 활쏘기 결투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주몽)은 비류수로 사냥을 떠났다가 강물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냥을 겸하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주몽은 그만 비류국 국경을 넘어 비류국왕인 송양과 마주쳤다. 말이 사냥이지, 영토확장을 위한 침범이 분명했다. 송양은 주몽이 자꾸 ‘천제의 아들’ 운운하자 빈정이 상한 ..
공자의 '최후의 고백' 새삼스러운 궁금증 하나. 복숭아 나무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없애주는 상사로운 나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절대 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동이족의 ‘슬픈 전설’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전설 속 ‘동이족의 명궁’인 ‘예’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 임금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태양이 10개나 있었다.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난 자식들이었다. 10개의 태양은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즉 삼족오였다. 이들은 어머니 희화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올랐다. 그 일을 수만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2000여 년 전 경남 다호리 일대를 ..
'막말, 항명, 풍문' 탄핵도 허하라! “그의 살코기를 씹어먹고 싶습니다.(欲食其肉)” 1497년(연산군 3년) 사간원 정언(정 6품) 조순이 ‘막말’을 해댄다. 갓 서른이 된 사무관(조순)이 칠순을 넘긴 노(老) 재상 ‘노사신’을 겨냥,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것도 임금 앞에서…. 무슨 사연일까. 사건은 연산군이 신임 고양군수로 ‘채윤공’을 임명하면서 비롯됐다. 임금의 잘못을 간언하고(사간원) 관료들의 비행을 적발하는(사헌부) 대·간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글도 모르는 채윤공이 어찌 고을을 다스리겠느냐’는 것이었다. 채윤공은 노사신의 최측근이었다. 노사신은 “대간이 무슨 공자님도 아니고…. 남의 벼슬길까지 막느냐”고 적극 변호했다. “대간이라는 자들은 남을 고자질해서 명성을 얻는 자들”이라는 극언을 퍼부으며…. 그러자 조순 등이 ‘간신..
김일성의 '논개작전' 철원 동주산성(해발 360m)에 서면 철책너머 저 까마득한 북쪽에 지평선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군사분계선 너머 갈 수 없는 땅, 그곳이 바로 평강고원이다. 야트막한 봉우리 두 개가 여렴풋 하고, 그 너머엔 제법 거대한 산 하나(장암산·해발 1052m)가 버티고 있다. 산인지, 혹은 고지인지 모를 두 봉우리 중 하나는 낙타고지(432.3m)요, 또 하나는 오리산(453m)이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낙타고지는 그렇다치고, 여기서는 오리산(鴨山)을 주목하자. ■아! 평강고원 왜냐? 이 야트막한 오리산과 그 너머 검불랑(680m)은 지금도 내부에서는 끓고 있는 휴화산이다. 인류가 처음 등장했던 4기 홍적세(200만년~1만 년 전) 때 이 오리산과 검불랑에서 최소한..
18세기 한류, 조선통신사의 영욕 “임금(영조)께서 통신사로 떠나는 세 사신을 불러 친히 ‘이릉송백(二陵松柏)’의 글귀를 외웠다. 임금은 목이 메고 눈물을 머금은 듯 했다. 그러면서 친히 ‘호왕호래(好往好來)’, 즉 ‘잘 다녀오라’는 네 글자를 직접 써서 사신들에게 나눠주었다.”(조엄의 ) “임금이 사신들을 불렀다. ‘그대들에게 시 짓는 능력이 있는지 먼저 시험해보고자 하니 글을 짓고 차례로 제출토록 하여라.’”(원중거의 ) 계미년인 1763년 7~8월, 영조는 일본으로 떠나는 사신단에게 두가지 사항을 신신당부했다. 첫번째는 ‘이릉송백’의 치욕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릉’이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도굴되어 시신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선릉(성종)과 정릉(중종)을 뜻한다. 왜란 이후 조선의 사절로 일본을 방문한 윤안성은..
신라를 울린 '효녀지은' 이야기 “얘, 지은아. 예전엔 밥은 거칠었지만 맛은 좋았는데, 요즘에 먹는 밥은 좋기는 하지만 밥맛은 예전같지 않구나. 마치 칼날로 간장을 찌르는 것 같고….” 신라 진성왕(재위 887~897년)대의 일이다. 경주 분황사 동쪽 마을 살던 효녀 지은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눈이 먼 홀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32살이 되도록 시집도 가지 못했다. 지은의 삶은 고단했다. 날품팔이와 구걸로 어머니를 봉양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부잣집에 몸을 팔아 종이 되었다. 지은은 몸을 판 조건으로 쌀 10여 섬을 마련했다. 하루종일 주인집에서 일한 뒤 저녁에 밥을 지어 어머니를 주었다. 하지만 3~4일 후 어머니는 밥맛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구헌날 거친 밥만 먹다보니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뱃속이 ..
'한마디 농담'으로 세워진 나라 “얘들야, 앞의 말은 농담이었느니라.(前言戱之耳)” 공자님이 순간 진땀을 흘리면서 “내 말이 농담이었다”고 서둘러 변명한다. 제자 자유(子游)가 정색을 하며 대들었는데,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공자 ‘농담사건’의 사연을 들어보자. 공자가 어느날 제자 자유가 다스리고 있던 고을인 무성(武城)에 갔다. 마침 고을 곳곳에서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요순시대의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와 같은 태평성대의 노래소리였다. 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농을 던졌다. “어째 닭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것 같구나.(割鷄 焉用牛刀)” 춘추시대 진나라의 봉지. 춘추 5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했던 진나라는 주나라 천자의 농담 한마디 덕분에 건국됐다. (출처:인성핑의 , 시공사, 2003년) ■공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