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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의 경고, "운석은 하늘의 재앙" 1492년(성종 23년),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이 “운석이 떨어졌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극돈은 매우 신기한듯 운석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빛깔은 뇌설(겉이 검고 속이 흰 버섯의 일종) 같고, 모양은 복령(주름이 많은 공모양의 흑갈색 버섯) 같은데…. 손톱으로 긁으니 가루가 떨어졌습니다.” 요즘 같은 첨단의 세상에서도 운석이 떨어지니 한바탕 난리굿을 떠는데 하물며 예전에는 어땠으랴. 2013년 2월 러이사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주 체바르쿨 호숫가에 떨어진 운석. 운석은 세 조각으로 부서졌으며, 전체 무게가 60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석이 비처럼 쏟아졌다.’ “104년(신라 파사왕 25년) 운석이 비처럼 쏟아졌다.”() “1057년(문종 11년) 황주에 운석이 우레 같은 소..
고려 조선을 뒤흔든 사교육 열풍 “학교의 흥폐가 스승의 도(道)에 있는데…. 심지어 ‘해(亥)와 시(豕)’, ‘노(魯)와 어(魚)’의 글자를 구별할 줄 모르는 자들이 선생이라 합니다.” 1429년(세종 11년) 사간 유맹문의 상소를 보면 성균관과 향교 선생들의 질이 형편없음을 고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갈 곳 없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성균관 교관(선생)으로 발령내는 일이 다반사이며, 그마저 자주 바뀌는 형국”(중종의 언급)이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1527년(중종 22년) 지사 김극핍의 상소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한다. “유생들이 선생 한사람의 기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형들은 ‘관학(성균관) 공부가 안된다’며 유명 과외선생에게 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공교육의 선생들은 믿을 수 없으니 실력있는 과외선생을 찾는 것이 ..
단군신화와 닮은 일본 축제 “백제마을의 시와스마츠리는 단군신화와도 흡사하다.” 난고손(南鄕村) 백제마을에 조성된 ‘니시쇼소인(서정창원)’ 전시실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전시장 패널마다 ‘시와스마츠리와 한국의 각종 의식에 흡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시와스마츠리를 부여의 은산별신굿과 비교한다. 시와스마츠리가 정가·복지왕을 위한 제사라면, 은산별신굿은 백제부흥군을 이끌었던 복신과 도침 장군을 모신 제사로 알려져 있다. 둘 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찬물에 목욕재계하는 계율이 있고, 무녀들의 굿(은산별신굿)과 요카구라(夜神樂·시와스마츠리)가 신명나게 펼쳐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정가왕과 복지왕의 신주를 모시는 시와스마츠리 행렬과, 승마전장을 한 대장군 등 6명과 깃발 30여기가 동원되는 은산별신..
백제왕의 수수께끼, 일본열도에서 숨쉬다 골프 여행으로는 가벼운 발걸음이리라. 비행기로 불과 1시간30분 거리인 ‘따뜻한 남쪽나라’여서 그럴까. 친구끼리, 부부끼리…. 1월24일, 한 겨울 금요일 낮 인천발 미야자키행 비행기는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만원사례였다. 미야자키 공항 한편에 산더미처럼 쌓인 수 십 개의 골프가방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북새통을 뚫고 백제왕의 전설이 숨쉬는 난고손(南鄕村)의 ‘구다라노사토(百濟の里)’, 즉 백제마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렸지만, 체감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규슈 산맥 끝자락의 심산유곡을 휘감는 산길을 돌고 돌아가는 여정…. 굽이굽이 흐르는 고마루(小丸) 강을 따라 한 1시간30분 정도 갔을까. 저만치에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걷고 있는 마츠리(お祭り) 행렬이 보였다. ‘미카..
백정놈의 '춘추필법' 1)“의 법은 ‘무군(無君)’, 즉 임금을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도전·남은의 관을 베고, 저택(저澤·대역죄인의 집을 헐어 연못을 조성하는 일)하소서.” 1411년(태종 11년), 대사헌 박경 등은 이미 처단된 정도전 일파를 부관참시하고, 그들의 집을 파헤쳐 연못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청을 올렸다. 태종 이방원이 ‘백성의 나라’를 꿈꿨던 삼봉 정도전을 주살한 지(1398년) 13년이나 흘렀는 데도 ‘정도전을 한번 더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 친 것이다. 공자가 제자를 시켜 길을 묻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 공자는 일생의 역작이라는 를 지은 뒤 "훗날 나를 칭찬하는 것도, 나를 비난하는 것도 모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역심을 품은 죄 2)“의 법은 ‘난신을 죽이고 역적을 칠..
장애인 외교특사까지…. 조선의 선진적 장애정책 “이덕수는 적임이 아닐 듯 하옵니다. (귀가 어두워) 돌발발언이 튀어나오면 어쩝니까.” 1738년(영조 14년), 영조 임금은 청나라로 파견할 외교사절(동지정사)로 도승지 이덕수를 임명했다. 그러자 사헌부는 반대의 뜻을 전했다. 이덕수의 문학과 지조는 견줄 자가 없지만, 외교사절로서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덕수는 귀가 들리지 않은 증세, 즉 ‘중청(重聽)’을 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직상소를 여러번 올렸지만 번번이 반려됐다. 대신 영조는 옆사람을 시켜 큰소리로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웃음(目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이덕수를 청나라 외교사절 단장으로 보낸다니…. 아닌게 아니라 걱정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영조 임금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중국어에..
끔찍했던 1968년 1968년 10월말 울진 삼척에 북한 124군 부대 소속 유겨대원 120여 명이 침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68년은 끔찍했다. 미증유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이틀 후(1월23일)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납치됐다. 미국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원산만 근처에 급파하고 핵폭탄 사용까지 불사하겠다고 압박했다. 구정인 1월30일에는 북베트남 게릴라들의 이른바 ‘구정공세(Tet Offensive)’가 펼쳐졌다. 그해 10월30일부터는 울진·삼척에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120여명이 연속침투했다. 이들은 15명씩 모두 8개조로 산간농촌마을에 나타나 위조지폐를 나눠주고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서 떨었던 한 해였다. 이 세 사건은..
'침묵의 절규', 1.12사태 무장공비 무덤 경기 파주 적성면 답곡리 37번 국도변에 조성돼 있는 ‘북한군/중공군 묘지’. 이곳에는 1·21사태 때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남파됐던 124군 특수부대원들이 묻혀 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명인 유해 8구와 ‘북한군 중위 나정길’ ‘상위 김시웅’ ‘소위 김수윤’ ‘상위 김춘식’ ‘중위 김길수’ ‘중위 임용택’ ‘소위 조명환’ ‘소위 현수제’ ‘소위 박양조’ ‘소위 방양진’ ‘소위 최준일’ ‘소위 김달신’ ‘소위 김창국’ ‘소위 박기철’ ‘소위 김순국’ ‘소위 권호신’ ‘소위 김일태’ ‘소위 김을식’ ‘소위 한수군’ ‘소위 유형호’ 등 사살자와 자폭자 이름이 보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따따따따~” 1968년 1월10일 새벽, 황해남도 사리원의 인민위원회 건물에 정체불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