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175)
사라지는, 잊혀지는 과거를 그리워하다- 이호준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이호준 | 다할미디어 빈대떡과 생선구이, 낙지집이 도시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서울 종로 뒷골목을 피맛골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가보라. 이젠 포클레인이 푹푹 건물을 해체하는 살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재개발 사업을 벌인다나 어쩐다나. 다시 발길을 돌려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아보라. 박물관 앞마당에는 ‘추억의 거리’라 해서 1960~70년대 거리를 재현해놓았다. 약속다방과 소격이발소, 그리고 노라노양장점과 만화가게, 레코드점, 사진관 등 어릴 적 시절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세상 참 무슨 조화인지…. 같은 서울 도심인데 어디는 깨부수고, 또 어디는 옛것을 추억한다며 다시 세우는 꼴이라니. 오래되어 더럽고, 불편하다 해서 깨부쉈지만, ..
‘사나이 책무’에 시달리는 한국남자들- 박노자 <씩씩한 남자 만들기> ▲씩씩한 남자 만들기…박노자 | 푸른역사 대한민국 남자들은 “행정서류가 잘못됐으니 다시 입대하라”는 악몽에 이따금 시달린다. 재입대해서 ‘진짜사나이’라는 군가를 부르며 훈련 받는 꿈을 꾼다. 그러면서 꿈에서도 “이것이 정녕 꿈이기를…”하고 간절히 바라다 깨는 일도 있다. 이렇게 악몽을 꿀 정도인데도 늘 “사나이는 군대 갔다와야 철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 산다. 게다가 ‘태극전사’, ‘수출전사’라는 갑옷을 입고 나라와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이렇게 ‘애국’과 ‘효’, ‘가족부양’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던 ‘대한민국 남성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1900년대 후반을 중심으로 ‘씩씩한 남자’의 ‘계보’를 캐냈다. 그에 따르면 구한말 양반과 평민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은 사뭇 달랐다. 금욕..
자연계 질서 세운 39명 박물학자들의 분투 -<위대한 박물학자> ▲위대한 박물학자…로버트 헉슬리 | 21세기북스 새삼 ‘박물(博物)’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영어로 ‘Wide knowledge’이니 ‘폭넓은 지식’이라 표현하면 될까. 그러나 단순히 박학다식만으로는 ‘Naturalist’, 즉 진정한 의미의 박물학자가 될 수 없다. 자연계는 “모습이 다른 피조물이 관계를 맺고 닮아가면서 질서를 유지하고 다양성의 통일을 이룬 조화로운 하나”(알렉산더 폰 훔볼트)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박물학자는 이 자연계 속에서 모든 생명체를 발견하고 기술하며 분류하고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박물학자들의 넘치는 호기심과 탐구 덕분에 인류는 야만의 세상에서 탈출하여 자연계의 질서를 세웠고 문명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최초의 박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부터 19세기 찰스 다..
마오쩌둥에 맞서다 숙청 ㆍ1959년 류사오치(劉少奇) 중국 국가주석 취임 1959년 4월27일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인 류사오치가 국가주석에 올랐다. 당시 중국대륙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19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 이후 자력갱생을 도모하던 마오쩌둥은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우경 보수병에 걸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가고 있다”면서 “대약진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58년부터 시작된 대약진운동이다. 이를 위해 7만개의 인민공사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5000~6000개의 향(鄕)을 한 단위로 묶은 인민공사는 농·공·상·학·병을 집결한 집체경제의 단위였다. 하지만 이 급작스럽고 과도한 드라이브 정책은 재앙을 낳았다. 인민들은 수확철인데도 ‘영국 따라잡기’를 위한 철강생산..
마지막 영국 식민지 짐바브웨의 독립 ㆍ권력의 ‘달콤한 독’ 로버트 무가베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1924년 극소수의 영국계 백인이 절대다수 흑인을 지배했던 영국 식민지 로디지아의 두메산골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독학으로 영국 런던대를 졸업한 뒤 로디지아 소수 백인정권에 항거하는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다. 치열한 무장투쟁 끝에 승리를 쟁취한 무가베는 80년 4월18일 독립을 선포, 짐바브웨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독립의 영웅’은 실용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했다. 농지분배와 대대적인 의료사업, 그리고 무료교육 등을 실시, 문맹률을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최저인 15%까지 끌어내렸다. 또한 비동맹 외교의 중추역할을 담당, 나라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그런 그에게 ‘흑백간의 공존을 이룬 모범생’이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
1971년 중·미간 핑퐁외교 시작 ㆍ적의 적은 ‘친구’ 1971년 3월 말,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리던 일본 나고야. 장발과 꽃무늬 의상으로 ‘히피’라는 별명을 얻은 19살 미국선수 글렌 호완이 돌연 중국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5분간 동안 중국선수 좡쩌둥(莊則棟)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 만남이 불과 며칠 뒤 세계사의 물꼬를 바꿔놓는 실마리가 되었다. 좡쩌둥은 61·63·65년 세계대회 단식우승을 차지한 중국선수단의 선수 겸 부단장. 그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의 명(命)을 받아 미국선수와 접촉한 것이다. 중국은 즉시 미국선수단을 초청했다. 4월10일 미국선수단은 열렬한 환호 속에 베이징에 도착, 국빈대접을 받는다. 호완은 수만명의 인파 속에서 “나야말로 마오 주석의 말마따나 요원의 불길을 일으킨 주인공”이라며 으쓱댔다. 유명..
1982년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무력점령 ㆍ끝나지 않은 ‘영토분쟁’ 아르헨티나군이 마젤란 해협에서 500㎞ 떨어진 포클랜드(아르헨티나어로는 말비나스) 제도를 무력점령했다. 1833년 영국의 자치식민지가 된 이후 끈질기게 영유권을 주장해온 아르헨티나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갈티에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의도는 영유권 확보뿐이 아니었다.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에 따른 민심이반과 치솟는 인플레이션 등 아르헨티나 국내 위기를 전쟁으로 풀어보려는 술수였다. 1만3000여㎞ 떨어진 곳에 있는 “영국이 도대체 어쩔 것이냐”는 계산도 숨어있었다. 영국 내에서도 “거기가 우리 땅 맞냐”고 반신반의했던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국을 이끈 이는 ‘철의 여인’ 대처 총리였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영국민을 단합시키고 즉각적인 군사작전을 펼쳤다. 4월26일 영국은 대규모 기동..
1991년 남북탁구단일팀 첫 해후 ㆍ46일간의 ‘작은통일’ 어언 18년 전의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1991년 3월25일 오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한 달간의 합동전지훈련을 위해 일본에서 해후했다. 취재차 남측선수단과 같은 비행기를 탔던 기자가 입국수속을 마치자마자 역시 막 도착한 북측선수단을 만나러 무거운 짐을 끈 채 마구 뛰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분단 46년 만의 첫 만남. 한반도를 그린 ‘파란 단기’의 기치 아래 남북의 젊은이들은 전지훈련 도중 금방 ‘작은 통일’을 이뤘다.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모방했다. 북한 리분희는 저도 모르게 ‘앗싸’ 대신 ‘파이팅’을 외쳤고, 현정화는 ‘기랬지. 이 동무들’하면서 북측 말을 흉내냈다. 4월24일 개막된 대회에서 현정화·홍차옥(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