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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를 외친 임금들-지도자들의 '재난' 대처법 6번째 팟 캐스트 내용을 요약정리합니다 1403년(태종 3년) 선원 등 1000여 명과 쌀 1만석이 수장된 대형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거센 풍랑 중에 배를 띄운 관리들이 부른 인재였다. 하지만 태종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 ‘내탓이오’를 외쳤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성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은 628년 메뚜기 떼가 창궐하자 들판에 나가 메뚜기 두 마리를 생으로 삼켰습니다. “차라리 내 심장을 갉아먹으라”면서…. 중국 상나라 창업주 탕왕은 7년간이나 가뭄이 계속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톱을 깎은뒤 뽕나무밭에 들어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면서 ‘6가지 자책’을 하늘에 고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상림육책(桑林六責)’이라 했다. 송나라 태종은 메꾸기 떼가 ..
'어떻게 살아갈까'…비참한 해방공간의 삶 “못살겠다 못살겠다 하면서도 죽지못해 사는 것이 살림이요.~내일 일이 어찌될지 모르면서 살아가지요.”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 27일자부터 ‘어떻게 살아갈까?’를 주제로 원고지 4~5장 분량의 시리즈를 시작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 해방은 됐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미군정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각 직업별로 한 사람씩 등장시켜 해방공간의 비참한 삶을 생중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 27일자부터 '어떻게 살어갈까'랄 주제로 미군정체제 하의 비참한 생활상을 시리즈로 전했다. ■‘어떻게 살아갈까’ 11월27일 첫번째로 나선 사람은 ‘차부편(車夫篇)’의 길삼룡씨(37)였다. 차부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당시엔 ‘구르마꾼’이라도 했다. 이날 길씨..
사형장 풍경…인간백정의 역사 “옛날 요임금은 천하를 다스릴 때 한 사람 죽이고 두 사람에게만 형벌을 내렸는 데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서(書)’) “순임금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삼가야한다. 삼가야한다. 형벌을 행할 때는 가엾게 여겨야 한다.(欽哉欽哉 惟刑之恤哉)’”( ‘오제본기’) 백성들이 고복격양가를 불렀다는 요순시대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형벌을 가볍게 해야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후대의 군주들도 요순을 따르려 무진 애를 썼다. 예컨대 한나라 효문제는 사람의 몸을 훼손하는 이른바 육형(肉刑)을 없애면서(기원전 168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윤보의 에 묘사된 조선시대 참형 모습.참형은 사지를 찢어죽이는 능지처참에 이어 두번째로 혹독한 형벌이었다. “육형이 있어도 간악함이 멈추지 않으니 그 잘못은 어디에 있는..
조선시대 이혼, 패가망신의 지름길 이번주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조선시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처첩을 마음대로 들이고 내칠 수 있는 시대였으니….’ 그럴 리 없겠지만 혹 이렇게 상상하는 남자들이 있다면 한마디 하겠습니다. “꿈깨세요.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터이니…” 조강지처를 버릴 수 있는 7가지 죄악, 즉 칠거지악으로 걸어 쫓아냈다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었겠느냐고 항변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칠거지악을 무색케 만드는 삼불거(三不去), 즉 아내를 쫓아낼 수 없는 3가지 조건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지요. ‘삼불거’란 ‘돌아갈 곳이 없는 아내는 쫓아내지 못하고,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지냈다면 역시 쫓아내지 못하며, 처음에 가난하게 지냈다가 후에 부자가 됐을 경우에도 쫓아내지 못한다’는 조항입니다. 한마디로..
팟 캐스트(4회) 조선판 '바바리맨', 어떤 처벌 받았나 요즘 성(性) 관련 추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는 물론이고, 사회지도층까지 줄줄이 성 추문에 연루되고 있습니다. 그래놓고는 ‘딸 같아서 그랬다’는 둥, ‘귀여워서 그랬다’는 둥 흰소리를 남발했답니다. 며칠전에는 15살짜리 알바생을 껴안고 입을 맞춘 음식점 주인이 항소심에서 실형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고 합니다. ‘(음식점 주인에게) 부양해야 할 두 자녀가 있다’는 점이 감안됐답니다. 이 대목에서 한숨이 나옵니다. 두 자녀가 있다는 사람이 딸 같은 아이에게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성범죄에 어떤 처벌을 내렸을까. 놀라웠습니다. 상습범들은 요즘처럼 전자발찌를 차는 정도로 처벌이 끝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조선시대 성폭행범은 ..
광해군의 절규…나랏일이 한심하다 “요즘 조선인들은 큰소리만 치고 있다. 반드시 그 큰소리 때문에 나랏일을 망칠 것이다.” 1621년, 광해군이 장탄식한다. 국제정세는 급박했다. 명나라는 요동 전투에서 신흥강국 후금에 의해 줄줄이 패해 존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공론은 후금을 오랑캐 나라로 폄훼하면서 다쓰러져 가는 명나라 편이었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절묘한 등거리 외교로 균형을 잡아온 광해군으로서는 이같은 공론이 한심했다. “명나라 장수들이 줄줄이 적(후금)에게 항복하고 있다. 심지어 요동사람들이 명나라 장수를 포박해서 후금군에 넘겼다고 한다. 중국의 형세가 이처럼 급급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인심은 큰소리만 치고….” 화가 김윤겸이 그린 청나라 병사 그림인 '호병도'. 광해군은 다 쓰러져가던 명나라를 맹목적으로..
'조선판' 4대강 공사…태안 운하 “암초 때문에 격렬한 파도와 세찬 여울이 휘몰아친다. 안흥정 아래 물길이 열 물과 충돌하고, 암초 때문에 위험하므로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다.”() 송나라 서긍은 충남 태안 마도 인근 해역의 험난한 물길을 두고 “매우 기괴한 모습이라 뭐라 표현할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뿐인가. “옛날엔 난행량(難行梁)이라 했다. 바닷물이 험해 조운선이 누차 침몰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싫어해서 안흥량(安興梁)으로 고쳤다.”() 얼마나 험했으면, 배가 지나기(行) 어려운(難) 해역이라 ‘난행량’이라 했다가 편(安)하고 흥(興)하라는 염원을 담아 ‘안흥량’으로 고쳤다는 것인가. 안흥량의 암초지대. 나라곳간을 채울 조운선은 반드시 태안반도 인근 해역인 안흥량을 통과해야 했지만 배가 침몰되는 해난사고가 잇따랐다..
금동대향로에 숨겨진 백제 멸망의 비화 1993년 10월 26일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일본 규슈지방의 미야자키현 난가손(南鄕村) 사람들이 백제왕을 상징하는 신체를 모셔와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일본인들이 왜 백제왕의 신체를 모셔온 것일까. 사연은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3년 뒤 백제 부흥군과 왜 연합군이 나·당연합군과 백강(금강)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1000척에 분승한 2만7000여 백제 부흥군·왜 연합군은 4차례 접전 끝에 완패하고 만다. 백제부흥군은 완전히 멸망한다. 이 전투 후 백제왕·귀족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나라를 거쳐 규슈로 망명한다. 이 망명 대열에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서(庶) 왕자 41명 가운데 한사람인 정가왕 일족이 포함돼 있었다. 정가왕 일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