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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3회 주제는 ‘백성 버린 선조의 피란길, 그 참담한 징비록’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1592년(선조 25년) 4월 30일 선조 임금이 피란길에 오릅니다. 임진왜란 발발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무조건 피란’을 결정한 것입니다. , 등을 보면 목불인견입니다. 선조가 벽제~혜음령을 지나자 밭을 갈던 백성이 대성 통곡합니다. “나랏님이 백성을 버리면 누굴 믿고 살라는 것입니까.”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에 닿았을 때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임진강변의 승정(丞亭·나루터 관리 청사) 건물을 헐어 불을 피웠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임진나루 건너의 동파역에 도착하자 파주 목사와 장단 부사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임금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굶었던 호위병들..
'고려 외교 좀 배우라'고 가슴을 친 광해군 이번 주 팟캐스트 22회의 주제는 ‘광해군이 부러워한 고려외교’입니다. 조선의 광해군은 조정의 공론을 한심스러워하면서 “제발 고려의 외교 좀 배우라”고 했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세도 모르면서 말로만 ‘숭명배청’이니 ‘재조지은’이니 떠들면서 주야장천 다쓰러져가던 명나라만 섬기려하는 대신들을 ‘한심한 인사들’이라 했다는 겁니다. 그런게 광해군은 왜 ‘고려의 외교를 배우라’고 했던 걸까요. 고려는 비록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피곤한 줄다리기 외교를 펼쳤답니다. 하지만 거란은 물론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원)의 애간장을 녹일만큼 능수능란한 곡예외교를 펼쳤습니다. 오죽했으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거란이 서희의 ‘세치혀’에 말려 280리나 되는 땅(강동 6주)을 떼주었겠습니까. 서희로 대표되는 고려의 외교관들..
여왕이여! 신라여! 망하리라! “이름없는 자가 당대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조정의 길목에 내걸었다.” 888년(진성여왕 2년)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서 당시의 정치를 비난하는 벽보(榜·대자보)가 붙었다. 그것도 조정의 길목, 번화가에 붙은 비방문이었다. 그런데 는 “나라 사람들이 비방문을 길 위에 던졌다(書投路上)”고 했다. 는 “벽보(혹은 대자보)를 붙였다”고 했지만, 는 “전단을 뿌렸다”고 한 것이다. 어찌됐든 글 내용은 알쏭달송했다. 다라니(밀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려는 주문 같은 것)의 은어로 쓰여 있었다. “나무망국찰니나제(南無亡國刹尼那帝) 판니판니소판니(判尼判尼蘇判尼)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 부윤사바아(鳧伊娑婆訶)”( ‘기이편·진성여왕 거타지조’) 진성여왕(재위 887∼897년)은 “당장 비방문을 써서 내..
백두산 화산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 팟 캐스트 21회는 좀 색다른 주제입니다. ‘백두산 폭발과 발해멸망의 수수께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백두산에서는 역사시대, 즉 2000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화산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기원후 79년 폼페이 최후의 날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폭발보다 무려 50배나 큰 화산폭발이었습니다. 물론 화산폭발이 과연 어제 정확하게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첨단과학의 힘을 빌자면 아마도 930~940년 사이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문제는 발해가 926년에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발해의 멸망소식을 전한 요나라(거란) 역사서인 는 “발해는 민심의 이반 때문에 별다른 저항없이 멸망했다”고 전합니다. 이상한 일 아닙니까. 해동성국으로 일컬어졌고, 고구려의 고..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중국문명 ‘중국문명의 시원(始原)을 랴오허문명[발해연안문명]으로 간주하는 선양[심양ㆍ瀋陽] 랴오닝성박물관 첫 번째 전시실에는 “도전하와학설(挑戰夏娃學說)”이라는 흥미로운 글이 내걸려 있다. 그렇다면 “도전 하와학설”이란 무엇인가? 우선 중국인들의 호기 있는 도전에 관해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하와학설”에 관해 알아보자. 흑인 아담과 이브의 출현을 그린 의 표지 ■이브 학설 “하와(夏娃)”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 “이브(Eve)”와 같은 인물로서, “하와학설”은 미토콘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구 학계의 “이브학설(The Eve of Theory)”을 말한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60억 인류의..
'올빼미'가 균형 감각의 상징이다? 올빼미란 새가 있다. 너무 귀해서 천연기념물(제324-1호)로 대접받고 있는 야행성 맹금류다. 그렇지만 고금을 통틀어 올빼미는 ‘불인(不仁)과 악인(惡人)’의 상징으로 치부돼왔다. 예로부터 어미를 잡아먹는 흉악한 새로 악명을 떨쳤다. 그 연원은 3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기원전 1043년 무렵, 주나라 창업공신인 주공(周公)은 어린 조카인 성왕을 도와 섭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공의 형제들인 관숙과 채숙이 가만있지 않았다. 주공의 독주를 질시한 것이다. 그들은 “삼촌(주공)이 조카(성왕)의 나라를 집어 삼킬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어린 성왕도 유언비어를 믿었다. 그러자 주공은 성왕에게 왕실의 위기를 경고하는 시를 전했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이미 내 자식을 잡아먹었으니 내 집까지 헐지마..
"역겨운 간디, 굶어죽었으면 좋겠다" “간디씨를 보니 놀랍고, 역겹다. 탁발승 모습으로 총독 관저의 계단 위를 반나체로 올라가는 꼴이라니….” 윈스턴 처칠은 1930년대 초 비폭력 자치·독립 운동을 펼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입버릇처럼 ‘반나체의 거렁뱅이’로 표현하며 증오했다. 그는 ‘불멸의 대영제국’을 외쳤던 제국주의자로서 ‘영국의 나치’로까지 일컬어지던 극우파였다. 이 때문에 영국이 유럽보다도 큰 대륙의 3억 인구를 통치해온 그 엄청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칠은 당시 영국 내의 ‘인도 자치’ 움직임에 분노했고,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던 간디에게 극도의 분노감을 표한 것이다. 심지어 단식투쟁을 펼치던 간디를 향해 “굶어죽었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단다. 처칠에게 간디는 ‘악의 축’이었던 것이다. 당시 인도 총독이..
'탕탕평평 평평탕탕' ‘홍재(弘齋)’ ‘탕탕평평평평탕탕(蕩蕩平平平平蕩蕩)’ ‘만기(萬機)’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가 자신의 저작물에 찍은 장서인(인장) 71종을 분석한 논문을 보라.(김영진·박철상·백승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백성을 대하는 임금의 자세가 절절이 묻어난다. 정조가 즐겨 사용한 장서인 가운데 '만기' 인장이 눈에 띈다. 정조의 만기친람은 유명했다. 심지어 "'깨알지시'를 내리지 말아달라" "건강 좀 챙기라"는 대신들의 부르짖음에 정조는 "보고서 보는게 취미인데 어떡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김영진 외의 '정조의 장서인', 45집에서 ■침실 이름이 '탕탕평평실' 우선 ‘홍재’는 “뜻을 크게(弘) 가져라”는 증자의 가르침을 새긴 것이다. "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