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적의 역사

(365)
475년 9월 한성백제 최후의 날 '백제본기 개로왕조'는 한편이 대하드라마 같다. 전쟁과 냉전이 오가고, 스파이가 암약했으며, 간계와 반간계, 배신과 복수, 그리고 치열한 외교전까지 어우러진 숨막히는 108년의 동족상잔의 드라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니 말이다. 마치 남북한의 열·냉전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숨막혔던 475년 9월의 기록을 보자. "(백제 망명인 출신의 고구려 장수) 걸루와 만년이 말에서 내려 백제 개로왕에게 절했다. 그런 뒤 왕의 얼굴에 세번 침 뱉고 죄상을 따지고 아차성 밑으로 끌고가 왕의 목을 벴다.” 이것이 가 전한 ‘한성백제 최후의 날’이다. 백제로서는 ‘아차성의 굴욕’이었다. 이로써 기원전 18년부터 시작된 백제의 한성시대는 종막을 고한다. 이날은 고구려-백제 간 벌어진 처절한 동족상잔(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부..
난 왕씨의 혼이 될테다. 너희는 이씨의 세상에서 살아라 “산소가 도굴됐는데 그 안을 보니까 무슨 선녀그림이 있었다는 거야. 한 6~7명이 봤다지.” 1980년대 후반 동아대 박물관 자료과장 박문국은 재실관리인에게 희한한 말을 들었다. 박문국은 그 유명한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분인 송은(松隱) 박익 선생(1332~1398년)의 후손. 두문동 72현은 새로 개국한 조선에 충성하지 않은 절의신(節義臣)의 상징이다. 송은 선생의 묘는 경남 밀양시 청도면 화악산 중턱(해발 505m)에 있었는데 1987년 도굴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도굴 구덩이를 발견하고 무덤 안을 내려다본 경찰관 등 몇 명이 무슨 선녀그림 같은 것을 어렴풋 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덤 전면에 파헤친 도굴 갱을 서둘러 메웠기에 박문국으로서도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려웠다. 경남..
'빨간 마후라' 해인사 폭격을 거부하다 이런 말 들어봤는지요. 해인사와 해인사 안에 있는 고려대장경판이 한국전쟁 때 잿더미로 사라질 뻔했다가 겨우 모면했다는 소리 말입니다. 어렴풋 접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공군 조종사를 우리가 ‘빨간마후라’로 일컫고 있는데, 그 유래가 어떠했는지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두가지 사례를 공부하면서 역사를 제대로 쓰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 잘못 알려진 것을 올바로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해인사와 고려대장경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해인사와 고려대장경을 지킨 주인공임을 자처하는 일대기가 등장하고, 정부기관인 문화재청은 그 일대기를 아무런 거름장치없이 받아들여 곧이곧대로 기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진실과 다르다는 것이 한국전쟁에 ..
해상왕 장보고의 야망과 좌절이 깃든 청해진 본영 “아아, 원한으로 질투하지 않고 나라의 우환을 걱정한 이는 진(晋)의 기해가 있고, 당에는 곽분양과 장보고가 있었으니 누가 동이(東夷)에 사람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는 두목(杜牧·803~852년)이 지은 ‘번천문집(樊川文集)’의 ‘장보고·정년전’을 전재한 송기(宋祁)의 역사서 ‘신당서(新唐書)’에 적힌 내용이다. 이 평가는 장보고와 쌍벽을 이룬 정년(鄭年)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청해진 본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도. ◇나라를 위해선 원수의 손도 잡는다 장보고와 정년은 서로 힘을 자랑했던 라이벌이었다. 정년과 견줘 나이는 10년 많았으나 힘에서는 다소 밀렸던 장보고는 ‘나이’로 누르려 했고, 정년은 ‘기예’로 대들며 앙앙불락했다. 둘은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武寧軍 小將)이 됐는데 대적할 자가 ..
851년 봄 장보고 세력의 슬픈 강제이주 1996년, 발굴단은 장도의 성 내부 무너진 석축 안쪽에서 둥그런 구덩이 유구를 발견했다. 당시 발굴단 학예사 김성배의 회고. “석축이 무너져 내린 부분이 있었어요. 무슨 건물지가 있는 줄 알고 조사했는데 건물임을 입증하는 초석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너진 석축내부를 정리하다보니 둥그런 윤곽이 보였어요. 잘 들어내니까 철로 만든 유물의 끝이 보였어요.” 김성배의 말이 이어진다. 청해진 주민들은 장보고를 잃은 뒤 서둘러 제사용기 및 생활용품을 묻고 강제이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구에서 세발 달린 정(鼎·철솥)과 함께 사각형 철제 소반, 편병, 청동병, 저장용 토기 등 범상치 않은 유물들이 나왔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세발솥은 알려진 대로 고대 제사용으로 쓰인 대표유물. ‘..
애완동물은 왜 망국의 조짐인가 ‘춘추 5패’ 중 한 사람인 초 장왕(재위 기원전 614~591)에게 아끼는 말(馬)이 있었다. 장왕은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수 놓은 옷을 입히고, 화려한 집에서 기르면서, 침대에 눕게 하고, 대추와 마른 고기를 먹였다. 그런데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했던 말이 죽고 말았다. 얼마나 먹였던지 살이 쪄서 죽은 것이다. 슬픔에 빠진 장왕이 신하들에게 명한다. “대신들은 모두 상복을 입어라. 말의 시신은 대부(大夫·재상 바로 밑의 고관대작)의 예절로, 즉 속널과 바깥 널을 구비한 관곽에 안장하고 장례를 지내라.” 대신들은 “말이 죽었을 뿐인데, 무슨 대부의 예로 장사를 지내냐”며 극력 반발했다. 왕은 “누구든 반대하는 신하는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때 우맹이라는 사람이 나섰다. 본래 초나라 음악가였던..
청와대 진돗개는 왜 '의문의 1패'를 당했나 대통령이 키우는 반려견에게 ‘퍼스트도그(Firstdog)’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퍼스트도그’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고독한 최고권력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키우라”고 했을 정도였다. ‘퍼스트도그’는 대통령이 대중적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최측근 ‘정치견(犬)의 신분’으로 활약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려견인 보(7살)과 써니(4살)는 대통령 취임일에 미셸 여사 옆에서 하객들을 맞이했고, 부활절에는 계란굴리기 행사에도 나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는 1주일에 수천통의 펜레터를 받는 ‘인기견’이었다. 루즈벨트는 펜레터를 일일이 읽고, 답장을 보내주느라 집무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리처..
인조반정 쿠데타군의 비밀훈련장 최근 민통선 이북지역인 파주 덕진산성에서 고구려 시대 유물이 출토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 그러나 이곳은 조선시대 인조반정군이 반란을 꾀하며 훈련했던 역사적인 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덕진산성은 어디인가. 임진강 하류, 곡류지점에 초평도라는 섬이 있다. 초평도는 176만5000평방미터 크기의 무인도. 섬전체가 갈대밭과 수목으로 되어 있으며, 만수위 때나 비가 많이 내릴 때면 상당부분이 물에 잠기기 일쑤인 곳이다. 이 초평도 서북쪽, 즉 임진강 북안에 백제시대 때 처음 쌓은 곳으로 보이는 쇠락한 산성이 하나 있다. 그곳이 덕진산성이다. 덕진산성을 찾으려면 통일대교(문산읍 마정리) 혹은 전진교(파평면 율곡리)를 통해 민간인 통제선을 지나야 한다. 군부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길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