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적의 역사

(341)
'만능 뮤지션' 공자의 음악 철학 옛 사람들은 악기 하나, 노래 하나에도 심원한 뜻을 새겼다. 삼국사기 잡지 ‘악(樂)’편에서 현금(玄琴·거문고)을 설명한 내용을 보자. “금의 길이 석자 여섯 치 여섯 푼은 366일을 상징하는 것이고, 너비 여섯 치는 천지와 사방을 뜻하며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난 것은 하늘과 땅을 본받은 것이다.” 가야금도 마찬가지.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떠 만들었는데, 열두 줄은 사시(四時), 기둥의 높이 3촌은 삼재(三才), 즉 天·地·人을 뜻하는 것이다.” 가야국 악사인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12곡을 지었다. 그 후 우륵은 가야가 어지럽게 되자 신라(진흥왕)에 투항했다.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된 현악기를 복원한 모습. 진흥왕은 주지·계고·만덕을 보내 우륵의 업을 전수받게 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얼음창고에 27개월간 안치된 백제왕비 1996년 여름, 공주 정지산 유적을 발굴 중이던 이한상(당시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사)은 몇가지 의문이 들었다. 해발 67m 구릉인 이 산의 정상부가 왜 이리 평탄할까. 약 800여 평이었는데 마치 학교운동장 같았다. 이런 가운데 유독 돌출돼있는 중심건물의 존재 또한 이상했다. 기와를 얹은 이 건물엔 적심도, 초석도 없었으며 무려 45개의 기둥들이 3열로 박혀있었다. 내부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이걸 건물이라고 세웠나, 무슨 조화인가. 정지산 유적의 건물터. 어름창고와 빈전의 흔적이 보인다. 무령왕비의 시신도 이곳에서 27개월동안 안치된 뒤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던 이한상의 뇌리를 스친 게 있었으니 바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그리고 왕비의 묘지(墓誌)이었다. 이에 따르면 무령..
무령왕릉 발굴,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지만… 1971년 7월 공주에서는 한국 고고학사에 길이남을 발굴이 있었습니다. 공주 무령왕릉 발굴이었습니다.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현현한 무령왕은 '내가 무덤의 주인공'임을 선언하고 나선 첫번째 임금이었습니다. 특히 무덤벽이 완전히 밀봉된채 발견되었기 때문에 도굴의 화를 입지않았다는 점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뿌렸습니다. 무덤벽을 메웠던 벽돌을 들어내자 '1500년동안 밀폐된 공간의 기운'이 바깥 공기와 만나 '쏴아아'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무덤에는 '사마왕(무령왕)이 62세를 일기로 돌아가셔서 이 자리에 묻혔다'는 내용을 담은 지석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 발굴은 고고학 발굴사에 길이남을 흑역사였기 때문입니다. 하루밤에 유물 수습을 끝내고, 빗질까지 해서 말끔히 정리해버린, 아 이..
'밀정' 속 독립투사 김시현의 이승만 암살미수 사건 2015년 5월 최근 매우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미국 뉴저지에 사는 수집가(김태진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한국대표)가 미군 첩보부대(CIC)의 사진첩에 수록된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것이다. 1952년 6월25일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 암살시도 장면을 포착한 찰나 사진이다. 6·25 2주기 행사에서 연설 중이던 대통령의 바로 뒤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권총을 겨누기 직전의 극적인 순간이 담겨 있다. 범인은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원으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출신의 호호백발 노인 유시태(당시 62)였다. 하지만 이 저격사건은 미수에 그쳤다. 유 노인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발사되지 않은 것이다. 63년 만에 공개된 사진과 관련된 뉴스는 이렇게 과거의 가십거리 쯤으로 거론된 뒤 마무리됐다. 의열..
'박애주의자' 묵자는 왜 독가스를 발명했을까. 중국이 최근 발사한 양자위성에 모쯔, 즉 묵자(墨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묵자는 바로 겸애론을 주장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입니다.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은 왜 인공위성 이름에 공자·노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철학·사상가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묵자는 철학·사상가이기도 했지만 불세출의 과학자이면서 무기개발자이기도 했습니다. 묵자는 기하학·역학·광학·수학에서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으며,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무기를 여럿 개발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전쟁에 사용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묵자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고 외쳤던 겸애론자 아닙니까. 평화와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독가스를 만들고, 그 외에 다른 신형무기까지 개발했다니요...
'우생순' 신화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기사는 1995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공동주최한 세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제가 쓴 기사입니다. 한국선수들이 8전승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이듬해 열린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한국팀은 덴마크에 아깝게 져 은매달을 땄습니다.) 여자핸드볼이 세계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강훈련의 연속, 사제 간의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11월 중순 태릉 선수촌 체력단련장, 임오경은 악에 바쳤다. 45도로 기울어진 ‘시트업’에 거꾸로 누워 윗몸 일으키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억센 두손이 위에서 임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정형균 감독은 “나를..
'하룻밤 만리장성'은 패가망신 설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 쌓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하룻밤 짧은 인연이라는 소리니 사뭇 낭만적인 설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화의 원래 내용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여자한테 잘못 걸렸다가는 죽을 고생을 하기 십상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또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하룻밤 만리장성' 이야기가 한반도에서만 전해진 설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남지방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설화랍니다. 신기합니다. 왜 중국 진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 축성의 이야기가 이역만리 영남지역에서 퍼졌을까요. 거기에는 그럴수밖에 없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역사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5회는 바로 '하룻밤 만리장성-왜 한반도에만 있는 전설일까'입니다. “몽..
만월대 금속활자와 구텐베르크 활자 문헌상 금속활자로 간행된 최초의 책은 이다. 깨달음(證道)의 뜻을 밝힌 이 책의 발문을 보면 고려 무인정권의 실세인 최이(?~1249)가 “이 책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니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판각한다. 기해년(1239년)”이라고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책의 목판본만 전해지고 있다. 또 이규보의 에는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정할 때 참고했던) 28부를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저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속활자 ‘복’자. 1913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12세기 금속활자로 짐작된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은 1377년(공민왕 13)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