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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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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주의자' 묵자는 왜 독가스를 발명했을까. 중국이 최근 발사한 양자위성에 모쯔, 즉 묵자(墨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묵자는 바로 겸애론을 주장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입니다.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은 왜 인공위성 이름에 공자·노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철학·사상가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묵자는 철학·사상가이기도 했지만 불세출의 과학자이면서 무기개발자이기도 했습니다. 묵자는 기하학·역학·광학·수학에서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으며,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무기를 여럿 개발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독가스를 전쟁에 사용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묵자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고 외쳤던 겸애론자 아닙니까. 평화와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독가스를 만들고, 그 외에 다른 신형무기까지 개발했다니요...
'우생순' 신화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기사는 1995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공동주최한 세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제가 쓴 기사입니다. 한국선수들이 8전승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이듬해 열린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한국팀은 덴마크에 아깝게 져 은매달을 땄습니다.) 여자핸드볼이 세계최강의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강훈련의 연속, 사제 간의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11월 중순 태릉 선수촌 체력단련장, 임오경은 악에 바쳤다. 45도로 기울어진 ‘시트업’에 거꾸로 누워 윗몸 일으키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억센 두손이 위에서 임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정형균 감독은 “나를..
'하룻밤 만리장성'은 패가망신 설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 쌓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하룻밤 짧은 인연이라는 소리니 사뭇 낭만적인 설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화의 원래 내용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여자한테 잘못 걸렸다가는 죽을 고생을 하기 십상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또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하룻밤 만리장성' 이야기가 한반도에서만 전해진 설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남지방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설화랍니다. 신기합니다. 왜 중국 진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 축성의 이야기가 이역만리 영남지역에서 퍼졌을까요. 거기에는 그럴수밖에 없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역사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95회는 바로 '하룻밤 만리장성-왜 한반도에만 있는 전설일까'입니다. “몽..
만월대 금속활자와 구텐베르크 활자 문헌상 금속활자로 간행된 최초의 책은 이다. 깨달음(證道)의 뜻을 밝힌 이 책의 발문을 보면 고려 무인정권의 실세인 최이(?~1249)가 “이 책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니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판각한다. 기해년(1239년)”이라고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책의 목판본만 전해지고 있다. 또 이규보의 에는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정할 때 참고했던) 28부를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저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속활자 ‘복’자. 1913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12세기 금속활자로 짐작된다.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은 1377년(공민왕 13)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이다. ..
동이족 역사상 최강의 궁사 2016 리우올림픽이 우리 시간으로 6일 아침 개막됩니다. 아무리 금 은 동메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치열한 승부끝에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쾌감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선수단의 확실한 금맥인 양궁의 경우는 어떨까요. 오히려 국내 선발전이 더 치열할 정도로 올림픽 대표로 뽑힌 선수들의 기량은 출중합니다. 궁술의 피가 흐르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나 봅니다. 전설속 동이족 군장인 예라는 인물부터 고구려 창업주 주몽,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까지. 저마다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를 자랑했지요. 2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욱 선수가 10점 만점의 한가운데 과녁을 두번이나 정통으로 맞췄고, 1994년 한승훈 선수가 30미터 거리에서 36발 전부 10..
춤바람난 올림픽 선수단? 곧 리우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되고, 메달레이스가 펼쳐지면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4년간 선수들이 흘린 땀을 보상받는 올림픽 무대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68년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을 보거나 당시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습니다. 참가비를 마련하려고 복권을 발행한 이야기,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라고 큰소리쳤다가 줄줄이 탈락한 마라톤 선수들,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은 확실하다고 떵떵 거리다가 0-12로 참패한 축구 선수들, 경기 전날 공업용 용액을 술로 착각해서 마셨다가 밤새도록 뒹굴었던 선수와 아나운서 이야기 등등. 참으로 파란..
세종이 특별사면을 주저했던 까닭은 632년(정관 6년) 당태종(재위 626~649)이 천하의 사형수 390명을 방면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가을 사형을 집행할 때 다시 돌아오라”는 다짐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사형수가 이듬해 약속한 날짜에 돌아온 것이다. 태종은 이를 가상하게 여겨 사형수들을 모두 사면해주었다.() 당대 시인 백거이는 ‘칠덕무(七德舞)’라는 시에서 당태종의 치세에 찬사를 보냈다. “원망하는 궁녀 삼 천 명을 궁궐에서 내보내고, 사형수 사백 명이 자진해서 옥으로 돌아왔다오.(怨女三千放出宮 死囚四百來歸獄)”() ■당태종의 셀프미담 만들기 그런데 좀 미심쩍다. 뭔가 미담을 꾸며낸 듯한 냄새가 난다. 형제들을 참살한 이른바 ‘현무문의 정변’(626년) 끝에 즉위한 태종의 ‘셀프미담’일 가능성이 짙다. 굳이 사형수..
황룡사 9층목탑, 콘크리트로 복원할 뻔 한 사연 경주는 1000년을 버틴 신라 왕국의 서울이었습니다. 실로 장구한 세월이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무려 18만호에 이르는 사람들이 경주에 살고 있었으며 35채의 ‘금입택’, 즉 황금이 드나드는 저택이 있었다고 합니다. 880년 헌강왕 때는 “서울 백성들의 집은 모두 기와집이었고, 그 기와집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으며, 밥을 짓는데 장작이 아니라 숯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3년 뒤 신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경주, 특히 834년 동안이나 궁성이 자리잡고 있던 월성 지역은 금단의 땅이 되고 맙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상징건물이자 랜드마크였던 황룡사와 황룡사 9층탑는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몽골군 침략 때인 1235년 불타버리고 맙니다. 그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