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역사 (341) 썸네일형 리스트형 연산군에게 직언한 신하도 있었다 통칭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는 신하를 일컬어 ‘간신(姦臣)’이라 한다. 하지만 간신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간신이 아니다. 전한의 대학자인 유향(기원전 77~6)은 간신 및 아첨꾼의 특징을 6가지로 일컬었다. 이것이 유향의 육사론(六邪論)이다. “녹봉만 기다리고 사사로운 이익만 취하며 자리만 채우는 신하는 구신(具臣)이다.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과 행동이 다 옳다고 하면서 영합하는 신하는 유신(諛臣)이다. 음흉하지만 겉으로 근면한 척 좋은 말과 표정을 지어 임금의 임용기준을 흐리게 만들고 신상필벌의 명령도 실행되지 않게 하는 자는 간신(姦臣)이다. 지혜와 말재주는 뛰어나지만 안으로는 골육의 정을 이간질하고, 밖으로 조정을 어지럽히는 자는 참신(讒臣)이다. 권세를 갖고 당파를 지어 자기 세력을 더욱 쌓아.. 설탕, 인간의 살이 녹은 하얀 유혹 세종대왕과 엘비스 프레슬리…. 시대를 초월한 두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뇨병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하루에 물을 한동이씩 들이킬 정도였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땅콩버터와 꿀, 바나나, 베이컨을 얹은 샌드위치를 한 번에 4개씩이나 먹는 등 탄수화물 중독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설탕…. 그것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6~7세기 벵골지방에서 처음 정제된 이후 인류전체를 단맛으로 물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역사가 바로 이 설탕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바로 이 설탕 때문에 아프리카는 지금도 기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토록 달콤한 설탕 한덩어리에 바로 흑인, 즉 인간의 피와 살이 녹아있습니다. 그 설탕은 지금 이 순간엔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전세계 4억200.. 교태전, 사정전, 그리고 청와대 경복궁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궁전이 교태전이다. 왕비의 침전이다. 이름이 얄궂다보니 임금의 사랑을 얻으려는 왕비가 교태(嬌態)를 부리는 침실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교태(交泰)’는 에서 하늘과 땅의 사귐, 즉 양과 음의 조화를 상징한다. 임금과 왕비가 사랑을 나누고 후사를 생산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교태전(사진)이라 한 것이다. 창덕궁의 왕비 침전 이름은 대조전(大造殿)이다. 임금과 왕비가 만나 ‘큰 인물을 낳는다’(大造)는 뜻을 지니고 있다. 1395년 태조 이성계는 서울에 새 궁궐을 짓고 대대적인 잔치를 베풀었다. 태조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정도전에게 “새 궁궐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이때 정도전은 “(임금의) 술대접에 취하고 임금의 덕에 배부르니 후왕의 앞날.. 청주에도 '풍납토성'이 있었다.(하) “속이 확 트이네.” 햇살이 따가웠던 2008년 9월. 청주 신봉동 유적을 떠난 고고학자 조유전 선생과 기자는 차용걸 교수(충북대)와 함께 북쪽 평야지대를 달렸다. 한 3㎞쯤 시원한 바람을 맞고 달렸을까.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차 교수가 외친다. “저기가 바로 정북동 토성입니다.” 이런 곳에 토성이라니. 금강 최대의 지류인 미호천과 무심천이 합류하는 이른바 까치내의 상류 너른 평야지대에 조금은 생뚱맞은 자세, 즉 사각형 형태로 조성된 평지토성이다. 강(미호천)과 접해 있고, 조성된 해자(垓子)와 입지조건…. 신봉동 유적에서 확인된 갑옷 조각. 세모꼴과 긴 네모꼴 철판을 대가리가 둥근 못으로 짜 맞춘 것이다. -청주에 있는 풍납토성 성을 둘러보던 기자는 왠지 소름이 돋았다. “이거 풍납토성, 육계토.. 도굴로 짓밟힌 ‘철강강국 백제’(상) “허허, 술 덕분이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조유전 관장(토지박물관)과 차용걸 교수(충북대)가 껄껄 웃는다. 두 사람은 1982년의 일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해, 그러니까 1982년 3월21일 일요일 아침. 차용걸 교수의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속도 영 메스꺼웠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깼기 때문이었다. 대학(충남대 사학과) 동창생인 심정보(한밭대 교수)·성하규(대전여상 교사) 등과 청주지역 답사에 나서기로 한 날. “원래는 청주 상당산성(백제시대 때 초축한 것으로 알려진 산성)에 오르기로 약속했었죠. 그런데 속이 울렁거려서 살 수가 있어야지. 도저히 산에 오르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상당산성 답사를 포기하고 (청주) 신봉동·봉명동·운천동의 낮은 야산을 산책 겸해서 둘러보기로 했어요.”(차용걸 교수.. 재야사학자 안정복, "저울대로 역사를 쓰라" “는 내용이 소략해서 수많은 오류를 지니고 있다. 는 내용이 번잡하지만 요점이 적다. 은 의례가 크게 벗어났고….” 순암 안정복(1712~1791)이 평생이 역작인 을 쓴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그런데 이런 오류와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은 여러 역사서가 비슷하다. ~대저 역사가가 반드시 다뤄야 할 것은 계통을 밝히고(明統系), 찬역을 엄하게 하며(嚴簒逆), 시비를 바르게 하고(正是非), 충절을 포양하며(褒忠節) 전장(국가의 통치제도)을 자세히 하는 것(詳典章)이다.”( ‘자서(自序)’) 순암 안정복의 . 순암은 와 를 보완하려고 주희의 의 필법에 따라 을 저술했다. ■‘평생 재야사학자’ 돌이켜보면 ‘순암’이라는 이는 지금의 기준이라면 평생 ‘재야 사학자’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무려 35살.. 천세, 구천세, 만세…김정은의 만세12창 얼마전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만세’가 연호됐다고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12번이나 만세를 불렀다네요. 그만 하라는 손짓을 해도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세 삼창’이 아니라 ‘만세 12창’이라 할까요. 그래서 제가 이 만세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군주라고 해서 다 ‘만세’라 할 수 없었다는군요. 황제에게만 ‘만세’라 할 수 있었다네요. 제후국의 임금에게는 ‘천세’라 했답니다. 내심 황제국을 자처한 고려의 경우 강화도 천도시절엔 ‘만세’라 했답니다. 물론 조선시대 들어서는 ‘천세’라 했다고 하고…. 그런데 중국에서는 천세도, 만세도 아닌 ‘구천세’의 칭호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왜 천세도, 만세도 아닌 구천세의 구호를 들았을까요... 정조 임금이 '안(평대군)빠'가 된 사연 최근 도난 당한 ‘기이편’을 갖고 있던 문화재 사범이 적발됐습니다. 이 사람은 1999년 도난된 ‘기이편’을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입수해서 보관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올해 1월 경매시장에 내놨다가 잡혔습니다. 범인을 잡고, 문화재까지 찾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난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01년 도난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행방이 묘연한 문화재인데, 바로 안평대군이 직접 쓴 입니다. 1987년 국보 238호로 지정된 문화재인데요. 크기가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인데 안평대군의 낙관과 도장이 찍힌 진적이어서 국보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직 오리무중인 이 안평대군의 글씨를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번 주는 의 출현을 갈망하면서 안평대..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