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역사 (341) 썸네일형 리스트형 연예인 예명을 둘러싼 해프닝 1976년 4월 29일 경향신문은 의미심장한 한줄짜리 기사를 소개한다. ‘연예인들의 국어명 전용 전용작업을 펼쳐온 MBC가 가수 김세나 양에게 순수 우리 말로 이름을 바꿔 출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만약 김세나가 본명인 김희숙이나 다른 우리말 예명을 쓰지 않는 한 MBC에 출연할 수 없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는 1970년대 연예계로까지 불똥이 튄 이른바 국어순화운동의 광풍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화순화전국연합회가 창설되고(73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어순화운동을 독려하고 나섰으니(76년 4월) 오죽했으랴.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에 “모든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를 우리 말로 다듬는 시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분야별로 시안만들어 심의기구 검토하게.. 사람보다 나은 짐승, 짐승보다 못한 사람 ‘忠犬 라츠, 류머티즘 病死’ 경향신문 1969년 9월 5일자는 ‘라츠’라는 개(犬)의 부음기사를 실었다. 신문이 사람도 아닌 개의 죽음을 알린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고견(故犬)’은 바로 6년 전인 63년 사냥을 나갔다가 오발사고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주인을 구한 충견이었다. 무슨 사연일까. 라츠는 경기도 광주군에서 주인 유동근씨의 집에 살고 있었던 셰퍼드였다.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주인을 구한 충견 라츠. ■주인 구한 충견 라츠 1963년 2월28일 주인집 아들(유병주·17살)은 아버지의 사냥총을 들고 15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갔다. 라츠가 물론 동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병주군이 그만 돌뿌리에 걸려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총의 방아쇠가 당겨져 이.. 때때옷 입고 재롱 떤 선비…부모님을 생각하며 이번 주 팟 캐스트 주제는 부모님 이야기입니다. 설을 맞이해서 일년에 단 한 번이라도 부모님 생각 해보라는 뜻에서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농암 이현보 선생을 아시는지요. '어부가'로 유명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런 농암 선생은 70살이 넘은 연세에, 90이 넘은 아버지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벌였답니다. 그것도 후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랬답니다.농암 선생이 꼬까옷을 입고 춤을 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농암 선생은 80이 넘은 고향 어른들을 모두 모아 때때마다 마을잔치를 열었답니다. 그 자리에는 양반은 물론 상인, 심지어는 천민들까지 다 모였답니다. 자, 설을 맞아 농암 선생이 전해주는 이야기, 즉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 지를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황태자 금관' '기생 금관'…서봉총 금관 “마-블러스!(경이롭구나!)” 1926년 10월 10일 경주 노서동의 고분 발굴장에서 이국(異國)의 감탄사가 터졌다.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황태자(재위 1950~73)였다. 일제는 당시 일본을 방문 중이던 황태자 부부를 위해 이벤트를 펼치고 있었다. 마침 경주에서 봉황이 장식된 금관이 발견된 것에 착안했다. 일제는 유물 일체를 노출시켜 놓고 황태자 부부에게 발굴의 피날레를 장식하도록 한 것이다. 구스타프 황태자는 북유럽·그리스·로마의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 있던 고고학자였다. 경주를 방문한 황태자는 일제가 반쯤 노출해놓은 금제 허리띠와 금제 장식 등을 조심스레 수습했다. 발굴단의 마지막 한마디가 황태자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이 금관을 전하께서 수습해주시옵소서.” 황태자가 금관을 들어올리자 환성과 박.. '황희 스캔들'에 얽힌 내막 “사람들이 우러러 ‘어진 재상(賢宰相)’이라 했다. 관후하고 침중했으며, 집을 다스림에도 검소하고….”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해서 제가(齊家)에 단점이 있었다. 청렴결백한 지조가 모자랐다. 정권(政權)을 오랫동안 잡고 있어서 자못 청렴하지 못하다(頗有보궤之초)는 비난을 받았다.” 둘 다 1452년(문종 2년) 2월 8일 에 등장하는 황희 정승의 졸기(卒記·부음기사)이다.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보통의 부음기사(obituary)를 보면 그 사람의 생애를 잔뜩 상찬해놓고는 말미에 ‘그러나’라는 토를 달아 아쉬운 행적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졸기와는 경우가 다르다. 황희 정승의 초상화. 황희는 어진 재상이라는 찬사와 함께 몇가지 흠결을 함께 지적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황희는 태종.. 금지된 사랑, 궁녀와 내시의 '슬픈언약식' 사춘기 소년·소녀의 3대3 미팅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해서는 안되고, 절대 이뤄질 수도 없는 ‘금지된 사랑’이었다. 소년 소녀들은 꽃피는 춘사월의 풋사랑에 젖은 대가로 목이 잘릴 위기에 빠졌다. 죽음을 무릅 쓴 풋사랑의 잔인한 역사를 을 토대로 각색해보자. 때는 바야흐로 1453년(단종 1년) 4월 14일이었다. 말기의 제조상궁. 제조상궁은 궁녀조직의 최고권력자였다. 당상관 이상의 월급을 받았고, 심부름하는 하녀와 옷 짓는 침모까지 배정받았다. ■궁중 소년 소녀들의 3대 3미팅 방자(房子·심부름 궁녀)인 중비가 소천시(어린 별감) 부귀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다. 중비나 부귀는 아마도 15~16세가 될 듯 말 듯한 소년·소녀들이었음이 틀림없다. 궁녀와 내시, 별감은 주지하다시피 액정서(왕과 왕족의 .. 세종대왕이 성병에 걸렸다? “소갈증(당뇨)와 부종의 뿌리가 근절되지 않았는데, 이제 또 임질(淋疾)을 얻은 지 11일이 되었다. 번다한 정무를 처리하면 기운이 노곤하다.” 은 1438년(세종 20년) 4월 28일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기록해놓는다. 세종대왕이 ‘임질’에 걸려 고생하고 있음을. 그것도 세종 본인의 입으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창덕궁에 있는 내의원. 임금의 질병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당뇨와 두통, 이질 등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던 세종은 임질에 걸려 정무를 볼 수 없는 통증이 발작하는 등 약 4년 동안 고생했다. 임질이 무슨 병인가. ‘임질은 임균이 일으키는 성병이다. 주로 성교로 옮아 요도 점막에 침입하며, 오줌을 눌 때 요도가 몹시 가렵거나 따끔거리고 고름이 심하게 난다.’(국립국어원의 ) 한마디로 임질은 .. 뒤바뀐 무덤의 수수께끼 “민통선 이북, 어느 무덤에서 호리꾼(도굴꾼)이 무덤 하나를 하나를 파헤쳤는데요….” 1989년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흥미로운 제보 하나가 접수됐다. 어느 도굴꾼이 민간인 통제선 이북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그 무덤의 벽면과 천정에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져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양모 박물관 학예실장의 귀가 번쩍 띄였다. 무덤의 벽가 천정에 그림이라? 그것은 바로 벽화라는 것이 아닌가. 사실이라면 대단한 뉴스였다. 특히 한반도 남부에 벽화묘는 극히 드문 것이어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민통선 이북 파주 서곡리의 도굴된 무덤에서 확인된 고려말 벽화그림. 무덤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민통선 고분벽화의 비밀 알다시피 고분벽화의 전통은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