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적의 역사

(329)
'조선판' 4대강 공사…태안 운하 “암초 때문에 격렬한 파도와 세찬 여울이 휘몰아친다. 안흥정 아래 물길이 열 물과 충돌하고, 암초 때문에 위험하므로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다.”() 송나라 서긍은 충남 태안 마도 인근 해역의 험난한 물길을 두고 “매우 기괴한 모습이라 뭐라 표현할 수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뿐인가. “옛날엔 난행량(難行梁)이라 했다. 바닷물이 험해 조운선이 누차 침몰했으므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싫어해서 안흥량(安興梁)으로 고쳤다.”() 얼마나 험했으면, 배가 지나기(行) 어려운(難) 해역이라 ‘난행량’이라 했다가 편(安)하고 흥(興)하라는 염원을 담아 ‘안흥량’으로 고쳤다는 것인가. 안흥량의 암초지대. 나라곳간을 채울 조운선은 반드시 태안반도 인근 해역인 안흥량을 통과해야 했지만 배가 침몰되는 해난사고가 잇따랐다..
금동대향로에 숨겨진 백제 멸망의 비화 1993년 10월 26일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일본 규슈지방의 미야자키현 난가손(南鄕村) 사람들이 백제왕을 상징하는 신체를 모셔와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일본인들이 왜 백제왕의 신체를 모셔온 것일까. 사연은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3년 뒤 백제 부흥군과 왜 연합군이 나·당연합군과 백강(금강)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1000척에 분승한 2만7000여 백제 부흥군·왜 연합군은 4차례 접전 끝에 완패하고 만다. 백제부흥군은 완전히 멸망한다. 이 전투 후 백제왕·귀족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나라를 거쳐 규슈로 망명한다. 이 망명 대열에 백제 마지막왕인 의자왕의 서(庶) 왕자 41명 가운데 한사람인 정가왕 일족이 포함돼 있었다. 정가왕 일가가 ..
한국인의 조상은 서양인이다? “이건 제가 한번 해볼게요.” 1962년 3월 하순,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기원전 6세기) 발굴현장. 28살 신참 고고학자였던 이난영(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은 선배인 김정기 학예연구관을 졸랐다. 그 때까지 계획된 12기를 모두 발굴한 상황. 단 하나 남은 게 바로 상석부분이 파괴된 채 흙에 파묻혀있던 고인돌 1기(13호)였다. 너무도 빈약한 고인돌이었기에 신참 고고학자가 한번 욕심을 내본 것이었다. “깨진 것 같은데 한번 해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흙을 파던 신참 고고학자의 손 끝에 뭔가가 걸렸다. 석관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석관을 파헤치자 놀랄 만한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의 뼈였다. 오른팔은 배에, 왼팔은 가슴에 대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사진을 ..
'욕실 속' 마릴린 먼로의 자태-광고로 본 50년 전 그 날 ‘장0자(18) 속히 돌아오라. 모든 것 해결됐다. 그이와 언니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경향신문 1964년 11월 7일에 ‘한 줄 광고’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개구쟁이 시절 이런 광고를 패러디 해서 “000야, 빨리 돌아오라. 아버지 바지(혹은 빤쓰) 줄여놨다”는 등의 농지거리를 나누며 실없이 낄낄 댔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보면 유치찬란한 농담인데,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참…. ‘한 줄 광고’를 더 살펴보니 30대 여인의 구혼광고가 눈에 띈다. ‘재혼, 가옥 고급 둘, 건실 남 원함.’ 1964년 11월 6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마릴린 몬로 주연의 영화 '나이아가라' 영화광고. "바스-룸 속에서의 몬로-염자(艶姿)!', 즉 목욕탕 속에서 빛나는 몬로의 농염한 자태를 선전하고 있다. '미성년자..
금관의 수난사, '도난에서 기생의 면류관까지' 1921년 9월, 경주 봉황대 바로 아래서 운영하던 박문환의 주막집은 장사가 무척 잘됐다. 사세확장’을 해야 했다. 그는 주막을 늘리기로 하고 뒤뜰의 조그마한 언덕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9월 23일 이상한 유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소문이 삽시간에 경주 전역에 퍼졌다. 당시 경찰서 순경(미야케 요산·三宅與三)이 이 풍문을 듣고 곧바로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노서리 일대를 순시 중이던 미야케의 눈에 심상찮은 장면이 목격됐다. 어린아이 3~4명이 매립된 흙 속을 열시히 찾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들의 손에 청색 유리옥들이 들려 있었다. 1926년 10월10일 서봉총 발굴 현장에 온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 부처가 노출된 황금유물들을 쳐다보고 있다. 황태자는 이날 황금허리띠와 황금관을 ..
잘못 출제된 입시문제 '흑역사' 최근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 파동을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1964년 12월 7일 서울시 전기중학 입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도 수능일이면 전국이 들썩거리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치른 다음날, 각 신문에는 전날 치른 문제가 이른바 ‘가리방으로 긁은 글씨체’ 그대로 전제되었다. 당시만 해도 코흘리개 국민학생(초등학생)들까지 입시지옥을 겪었으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큰 사단이 일어났다.. 1964년 12월 7일 벌어진 전기중학 입시 자연문제 17번과 18번 문제,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재료를 고르는 문제이다. 전기중학 시험문제는 도하 각 신문에도 그대로 전제됐다. |경향신문 자료..
포석정의 비밀…경애왕은 '놀자판'이 아니었다. “옛날 견씨(견훤)이 왔을 때는 승냥이나 범을 보는 것 같더니 지금 왕공(왕건)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 하구나.”( ‘신라본기·경순왕조’ 931년 3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이 경주를 방문하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감읍한다. 는 이어 “왕건의 부하 군병들은 엄숙하고 조용했으며 어떤 조그만 물건에도 손대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경순왕이 ‘승냥이나 범’으로 치부한 견훤 때는 어땠는가. “견훤이 927년 겨울 11월에 경주에 들이닥쳤다. 견훤은 후궁에 숨어있던 경애왕을 핍박하여 자결케 하고 왕비를 강음(强淫)했다. 부하들은 경애왕의 비첩들을 난통(亂通)했으며 공사의 재물을 노략질했다.”( ‘신라본기·경애왕조’) 경주 포석정. 경애왕이 견훤이 침략하는 사실도 모르고 술판을 벌이다가 비참한..
1974년의 '김수현', 최불암의 CF 모델료 “지난 몇해동안 우리나라 TV 수상기 보급 증가율은 파천황적이다.” 경향신문 1974년 10월 12일자는 ‘부쩍 는 TV수상기 보급-전국 150만대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TV수상기 증가율을 ‘파천황적(破天荒的)’이라는 표현을 쓰며 놀라워했다. 파천황은 혼돈의 상태(天荒)을 깨뜨리는(破) 천지개벽의 상황을 일컫는다. 기사는 “KBS에 등록된 TV 수상기 대수가 150만대를 돌파했다”면서 “등록되지 않은 음성대수를 포함하면 200만대가 보급됐을 것”이라 전하고 있다. 당시 기사는 “TV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모나코(1위)이며. 미국(2위), 캐나다(3위), 쉬든(스웨덴·4위)이 뒤를 잇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대략 25위로 추산된다”고 추정했다. 기사를 보면 ‘파천황’이 그렇게 과장된 표현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