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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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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속 고려선박 건졌더니 ‘800년 된 붉은색 곶감 꾸러미’가 올라왔다 ‘이거, 배 같은데?’ 2014년 11월23일 경기 안산 대부도의 방아머리 해수욕장 인근 갯벌에서 맨손어업(낙지) 중이던 어민이 옛 선박(배) 한 척을 발견했다. 육지에서 530m 정도 떨어진 갯벌이었다. 2006년 여기서 3.5㎞ 정도 떨어진 갯벌에서도 고려시대(12~14세기) 선박(대부도선)의 조각이 확인된 바 있었다. 시화호 및 주변의 해변도로 건설로 깎여나간 갯벌에서 옛 선박이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2015) 6월부터 시작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정식발굴에서 고려시대 선박 1척이 노출됐다. 이것이 ‘대부도 2호선’이다. 선체에서는 접시와 주발 등 청자 21점과 청동숫가락 및 그릇 등 선상용기가 확인됐다. ■800년전 곶감의 향이 났다 6월26일이었다. 갯벌에 박힌 선체를 인양하려고 배의..
40년만에 공개된 몽촌토성 '곰발바닥'…백제판 '강남개발'의 증거? 가지런히 놓인 말머리뼈, 사람 손과 너무 닮은 발톱 잘린 곰발바닥뼈의 정체는 무얼까. 1983~89년 조사된 몽촌토성의 미정리유물 일부가 40년 만에 공개됐다. 서울대박물관은 ‘왕도한성:몽촌토성 1983~2023’ 특별전(5월23~8월31일)에서 나무상자 속에 보관해왔던 동물유체 등 유물 일부를 꺼내 정리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최초로 정리·공개되는 제사의 흔적 유구와 유물이 특히 눈길을 끈다. 특히 40년 동안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동·식물유체 400여점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즉 소·사슴과·멧돼지·말·곰·개·꿩 등 포유류 및 조류와 대구, 숭어·백합 등의 어·패류 등으로 분류됐다. ■사람 손뼈와 똑같은 곰발바닥뼈 이중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인 치아가 보이는 말의 머리뼈가 도드라진다. 대략..
'이순신 최후' 메모한 류성룡 다이어리서 세종의 '불멸 업적' 찾았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 중인 유물 하나가 눈에 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지니고 다녔다는 ‘경자년 대통력’이다. 요즘으로 치면 ‘1600년판 다이어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류성룡 대통력’은 8권이나 남아있었다.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류성룡의 종택)에 1594·1596·1597·1598·1604·1605·1606·1607년판 대통력이 소장되어 있었다. 지난해 일본 소장자로부터 구입한 ‘1600년 대통력’은 류성룡의 9번째 다이어리라 할 수 있다. ■“대장은 몸을 가벼이 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9번째 ‘류성룡 다이어리’에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의미가 첫장부터 담겨 있었다. 임시로 철해 놓은 표지에 빼곡한 글씨 덕분에 단박에 유명세를 탔다. “전투(노량해전·1598년 ..
일본 국보 2호에 찍힌 '사마'(무령왕) 명문…누구를 위해 만든 거울일까 “사마(斯麻)가 오래 받들 것(장수)를 생각하며…청동거울을 만들었다.” 일본 와키야마현(和歌山縣) 하시모토시(橋本市)에 스다하치만(隅田八幡)이라는 조그마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신사에는 언젠가부터 심상치않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인물화상경’이다. 지름 19.8㎝ 정도인 인물화상경에는 9명의 인물상과 기마상이 그려져 있다. 거울의 둘레에 빙 둘러서 48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국립도쿄(東京)박물관이 소장중인 ‘인물화상경’은 일본 국보(고고자료 2호·1951)로 등재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명문 해석은 심상치 않다. ‘계미년 8월…대왕의 치세에 남제왕이 오시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가 오래 섬길 것(장수)를 생각하며…최고급 구리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게(취하게) 했다.(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男..
딸기코에 여드름 자국까지…임금 사마귀점도 그렸던 조선 초상화 “신의 나이 66세이고, 지병이 있는데다, 코에 혹이 생겨 모양이 보기 흉한데, 세월이 갈수록 더하니….” 1606년(선조 39) 9월1일자 기사이다. 당흥부원군 홍진(1541~1616)이 지병 때문에 선조 임금에게 사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실록의 기자가 홍진 스스로 밝힌 사직 이유를 기술하면서 달아놓은 각주가 ‘TMI’ 그 자체다, “홍진은 키가 다섯자(150㎝)도 안되는데, 코는 주먹만큼 커서 당시 보는 사람마다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마침내 콧병이 나서 출입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다.” 실록의 기자가 좀 심했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홍진의 용모에 ‘팩폭’을 가하면서까지 소개했을까. 굳이? 지금 같으면 남의 신체적 약점을 드러내며 저격한 ‘기레기’ 소리를 들을 법하다. ■놀림감이 된 주먹코 공신 ..
“청와대는 남경 궁궐터”…서울은 고려국왕의 '성지순례코스'였다 인근 사찰(장의사·승가사)에 다녀가던 임금이 잠깐 쉬어갔던 ‘고려판 카페’인가, 혹은 ‘별서’인가, 아니면…. 얼마 전 서울 종로 신영동의 도시형 생활주택 부지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건물터(1382㎡)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현재까지 건물터 3기를 비롯해 석축과 진입시설(계단), 담장,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중심 건물터는 파괴됐다. 그러나 두번째 건물터도 잔존 면적(길이 20.1×너비 5.5m)만 33.44평에 달한다. 건물의 입지조건과 배치 또한 심상치 않다. 땅을 깎지 않고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조성한 고려 궁궐(만월대)을 빼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유물의 위상 또한 만만치 않다. 건물 기초부에서 확인된 진단구(액막이용 공양물) 중에는 상급품의 고려자기가 확인됐다. 또 염주로 추정되는 수정 구슬을..
'독서휴가'는 세종의 또다른 업적…"죽어라 책만 읽으라" 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에 ‘셰익스피어 휴가(Shakespeare Vacation)’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관리들에게 3년에 한번씩 유급휴가를 주는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이끈 군주가 독서를 나랏일의 으뜸으로 쳤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빅토리아 시대보다 무려 400년 이상 앞선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와 같은 제도를 시행했으니 말이다. 1426년(세종 8) 세종이 집현전 관리인 권채(1399~1438)·신석견(1407~1459)·남수문(1408~1442) 등에게 특명을 내린다. “나이가 젊고 전도양양한 너희를 집현관에 임명한 이유는 글을 익혀서 실제 효과를 나타내라고…. 하지만 직무 때..
'n분의1', 형제자매 평등상속은 고려 때부터의 전통이었다 ‘장남=1.5, 아들=1, 딸(출가)=0.25, 딸(미혼)=0.5, 부인=0.5’(1960~1978) ‘장남=1.5, 아들=1, 딸(출가)=0.25, 딸(미혼)=1, 부인=1.5’(1979~1990) ‘장남=1, 아들=1, 딸=1, 처(생존)=1.5’(1991~현재) 이것은 대한민국 민법에 정한 시기별 재산상속비율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1991년 개정된 민법 1009조 1항에 따라 모든 자녀가 1/n, 어머니(생존)는 0.5가 더 많은 비율로 상속된다. 그러나 1990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장남과 어머니는 각 1.5씩을, 두번째 자녀(남녀)부터는 각 1씩을 받았다. 그러나 출가한 딸의 경우 홀대를 받았다. 다른 자녀의 4분의 1인 0.25를 상속받는데 그쳤다. 이때는 그래도 개선된 상속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