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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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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꾸라진채 발견된 '5cm' 기적의 신라 불상…굳이 일으켜야 할까 “땅과 불상의 공간은 단 5㎝ 차이(lls’en est fallu de cinq centimetres)…(불교계 인사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 했다.” 2007년 9월 13일자 프랑스 ‘르 몽드’지는 ‘1300년 전 넘어진 경주 마애석불, 원형 그대로 보존…’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대문짝만한 불상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이 불상이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엎어진채 발견된 대형 마애불’이다. 마애불의 규모는 엄청나다. 불상을 새긴 바위는 폭 4.0m, 높이 6.8m, 두께 2.9m나 되고, 무게는 무려 80t에 이른다. 그런 바위가 40도 가까운 경사면에 거꾸로 박힌 것도, 불상의 코가 지면에서 불과 5㎝이 거리를 둔채 떨어진 것도 불가사의하다. 그런 거대한 몸이 속절없이 고꾸라지면서도 코 끝 하나 다..
아파트 재건축 현장 파보니 근초고왕의 한성백제 도시가 켜켜이... “나는 마땅히 사직을 위해 죽겠지만 너는 피하여 나라의 계통을 잇도록 하라.” 475년(개로왕 21) 9월, 고구려 장수왕(413~491)의 대대적인 침공에 백제 수도 한성이 함락된다. 개로왕(455~475)은 아들(문주·475~477)에게 “반드시 살아남아 후일을 기약하라”는 유언을 남긴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한성백제 493년의 역사(기원전 18~기원후 475)는 그렇게 종막을 고한다. 비운의 왕국이어서 그런가. ‘패배자’라는 낙인 속에 1500년 이상 꽁꽁 묻혀있던 한성백제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연히, 극적으로 발견된다. 1996년 말 풍납동 현대 아파트 터파기 공사장에 잠입한 이형구 교수(당시 선문대)가 무수히 박힌 한성백제 문화층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이 이후 발굴조사 끝에 모습을 드러낸 풍납토..
통째로 폐기된 250㎝ 백제 대작, 1400년전 장인은 왜 실패했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됐다.” ‘창세기 2장 7절’의 내용이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백골이 진토(塵土·먼지와 흙)된다’는 오래된 표현이 있다. ‘사람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이 창조한 모든 문명의 이기나 예술품도 마찬가지다. 다른 예를 들 것도 없다. 백제예술의 정수라는 금동대향로를 보자. 무슨 객쩍은 소리냐 할 것 같다. 금속(구리)으로 제작된 향로를 두고 흙 운운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 향로의 모체가 ‘흙’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왜냐. 향로의 틀(거푸집)을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굳은 밀랍(꿀벌 분비물)에 향로의 모형을 ..
흙으로 빚었을 뿐인데…말 탄 가야 신라인이 '국보' 대접을 받는 이유 전국의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가장 흔한 유물은 뭘까. 역시 점토로 빚어 구운 도기(질그릇 혹은 토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중 국가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된 도기는 단 9건에 불과하다. 왜일까. ‘문화재보호법 제23조’가 규정한 국보·보물의 자격을 보자. ‘중요한 유형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할 수 있으며(1항), 보물 가운데 인류 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2항)’고 했다. 짐작이 간다. 질그릇의 경우 너무 흔한 유물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유물 중에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야 겨우 국가지정문화재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질그릇 중에 ‘국가지정문화재’, 그것도 ‘인류 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유물’로 평가..
부부가 아니네…'신라의 명품 귀고리'는 두 여성의 합장분에서 나왔다 ‘신라 최고의 명품 귀고리가 출토된 고분은 부부총이 아니었다.’ 9월 29~30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국립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의 공개와 활용’ 학술대회가 열렸다. 우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한 고적 조사 사업에서 발굴·수집한 관련 자료(1912~1945년)가 603책 26만쪽이나 된다는 발표(양성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가 있었다. 또한 해방 후 이 자료를 인수한 국립중앙박물관이 2013년부터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을 본격 시작하면서 10년째 검토하고 연구 조사한 뒤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발표문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유독 잡아 끈 대목이 있었다. ■부부가 아닌가봐 1915년 조사된 ‘경주 보문리 부부총’이 실은 ‘부부 무덤이 아니’..
월대가 무엇이기에 광화문 앞을 파헤치고 도로 선형까지 바꿀까 광화문 광장에서 탁 트인 가을 하늘 아래 북악산과 어우러지는 광화문·경복궁의 조화를 보는 맛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랜만에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법 하다. 사직동에서 안국동으로 이어지는 광화문 앞 도로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고, 또 최근에는 그마저 높은 울타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이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올 연말까지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월대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불편함을 무릅쓰면서까지 복원한다는 것일까. 문화재청 궁릉유적본부는 ‘광화문 앞 월대의 전면 복원’은 1990년부터 30년 넘게 진행된 경복궁 복원 공사 중 ‘경복궁 중심축 복원에서 찍는 마지막 획’이라고 평가하고 있..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1억년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후기 백악기(6800만~6600만년 전)에 살았던 ‘트리케라톱스’라는 초식 공룡이 있다. 뿔 3개 달린 독특한 외모 덕분에 ‘쥬라기(쥐라기) 공원’을 비롯한 각종 영화나 게임, 다큐멘터리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먹잇감(혹은 라이벌)로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이 트리케라톱스의 조상격인 공룡화석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천연기념물이 될 ‘쥐라기 공원’ 공룡의 먼 조상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뿔공룡 골격화석)’이다. 2008년 경기 화성 전곡항 방조제 주변 청소작업을 벌이던 화성시청 공무원이 발견했다는 공룡화석이다. 엉덩이와 꼬리, 양쪽 아래 다리와 발 등 하반신 뼈가 제자리에 있는 형태로 발견됐다. 이 화석에 ‘화성’ 명칭이 붙은 이유가 있다. 한반도에서..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고색창연한 절터가 버티고 있다. 회암사터이다. 산의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 그대로 노출된 70여기의 건물터와 함께 그곳에서 활약한 고승들의 기념물까지….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만 1만여평(3만3391㎡)에 이르는 절터에 서면 600년의 시공을 초월한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회암사 하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일화가 떠오른다. 양녕대군의 ‘살아서는 임금의 형, 죽어서는 부처의 형’ 이야기다. 1446년(세종 28) 4월23일 효령대군(1395~1486)이 회암사에서 법회를 열고 있었다. 그때 양녕대군(1394~1462)이 들판에서 사냥해온 짐승으로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형이 신성한 절간에서 고기를 굽자 효령대군은 못마땅한 표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