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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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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 사랑나무' 너머로 읽은 백제 독립운동사 부여 하면 떠오르는 답사코스가 있다. 부여왕릉원(능산리고분군), 부소산성, 관북리, 궁남지, 정림사터, 낙화암, 백마강…. 사비백제(538~660) 123년 역사의 숨결이 담겨있는 곳이 아닌가. 결코 백제의 이미지를 벗어난 부여는 생각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최근 ‘백제와 MZ 세대’를 아우르는 답사코스가 생겼다. ‘가림성 사랑나무’이다. 이름에서부터 역사성이 물씬 풍기는 ‘가림성’과, MZ 세대의 ‘인생사진 핫플’이 된 ‘사랑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니 안성맞춤이 아닌가. 지난해(2021년) 10월 부여의 ‘루틴 코스’를 답사하다가 온라인상 ‘부여의 가볼만한 곳’에서 ‘가림성 사랑나무’를 발견했다. 새로움을 좇는 기분으로 성흥산(해발 260m)에 조성된 가림성(성흥산성) 정상부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어..
거대사찰 황룡사에 우뚝 선 '80m 랜드마크'와 '서라벌판 광화문 광장' “서라벌에 절이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가 전한 전성기 서라벌 시내 모습이다.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된 불교가 어느덧 ‘절과 절이 별처럼, 탑과 탑이 기러기 행렬처럼 늘어서 있을 정도’로 성행했던 것이다. 553년(진흥왕 14) 짓기 시작한 황룡사는 본래 사찰(寺)로 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는 “월성의 동쪽에 새 궁궐을 지으려 했는데, 황룡이 나타나는 바람에 사찰(‘황룡사’) 조영으로 계획을 수정했다”(‘신라본기’)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황룡사 조영공사는 13년 만인 566년 1차 가람이 마무리됐다. 진흥왕은 8년 뒤(574년) 구리 3만5007근(약 7.6t 추정)과, 도금 1만98푼(약 100냥)을 사용하여 5m에 달하는 불상(..
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포인트가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산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전통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100여 년 전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도심 지척의 산’이 그렇게 신기했나보다. “경성에서 서양인의 피크닉이라 하면 대개 북한산이 통념으로 되어 있었다…지게꾼들을 데려와서 말과 대나무 가마로 간다.”(, 1934) 1894년 7월 관립법어(프랑스어)학교 교장으로 내한한 에밀 마르텔(1874~1949)의 회고이다. 대한제국 시절 궁내부 찬의관을 지낸 윌리엄 샌즈(1874~1946)는 한술 더 뜬다. “한국땅을 벗어나 휴일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의 옛 궁궐..
'744살 청와대 주목', 가소롭게 바라봤을 영욕의 역사 대통령경호처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그 가족의 경호업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틈을 내어 펴낸 책이 두 권이 있으니 그것이 (2007년 초판·2019년 증보판)과 (2019년)이다. 청와대와 그 주변이 어떤 곳인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습격사건(1·21사태) 이후 청와대 앞길을 물론 인왕산과 북악산의 통행도 철저히 통제됐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 등의 통행이 허용되고, 개방의 폭도 점차 확대됐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금요일, 둘째·넷째 주 토요일(공휴일 제외)에 청와대 내부관람(총 1시간 30분)까지 가능해졌다. 북악산도 2006년 성곽로에 이어, 2020년 북측 둘레길까지 개방되더니 이 기사가 신문지면을 탄 5일 오후 청와대 뒤쪽 북악산 남측..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청구영언>의 19금 노래가 보물 됐네 “○○○는 노래로 당세에 이름이 났지만 속되지 않았다. 얼굴빛이 희고 수염은 창처럼 뾰족했다. 어릴 때부터 300편을 줄줄 외었다.”() ○○○는 과연 누구이기에 ‘꽃미남’이고, 시 300편을 줄줄 외울 정도로 ‘뇌섹남’이었으며, 수준 높은 노래를 불렀을까. “남파 김백함은 노래로 나라 안에 이름이 났다. 성률(리듬)에 정통하고 문예도 닦아 새로운 노랫말을 지어 여항인(중인)들에게 익히게 했다. (보컬)김백함과 (거문고 연주자) 전만제가 찾아와 음악을 들려주니 내 가슴 속에 맺힌 마음의 병까지 모두 치유됐다. 그 음악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화기(和氣)를 일으킨다.”( ‘서문’) 남파 김백함은 또 누구인가. 이 언급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이자 ‘국민가수’이면서 ‘힐링뮤지션’이 아닌가. ■꽃미남, 뇌섹남, ..
1500년전 몽촌토성 '로터리' 연못…'고구려 남침'의 블랙박스 열리나 “이건 로타리(회전교차로) 같은데….” 지난 2016년 몽촌토성의 북문터를 발굴하던 조사단(한성백제박물관)은 재미있는 도로유구를 확인하게 된다. ‘평평한’ 대지를 가운데 두고 삼국시대에 조성된 포장도로(노면 폭 10m)가 빙 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이 도로는 북쪽으로 700m 떨어진 풍납토성과 이어지고 있었다. 는 “475년,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백제의 도성(북성)을 7일 만에 빼앗고 (개로왕이 몸을 피한) ‘남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에 등장하는 북성이 풍납토성이고, 남성이 몽촌토성임을 암시하는 자료가 바로 몽촌-풍납을 잇는 도로였던 것이다. ■1500년전 회전교차로(로터리) 확인 조사단은 처음 보는 로터리형 도로가 신기했다. 한가운데 조성된 평탄지는 요즘 로터리에 조성해놓은 잔디밭 ..
설날 광화문에 황금갑옷 장군 그림을 붙인 이유는? 설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문배도가 걸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 26일 광화문에서 2022년 경복궁 광화문 문배도 공개행사를 열었다. “황금 갑옷의 두 장군의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하나는 도끼를 들었고, 하나는 절을 들었다. 그것을 궁문의 양쪽에 붙인다. 이것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이 문배도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881~82년(고종 18~19년) 무렵 경복궁 대문인 광화문에 붙였던 ‘황금 갑옷 장군(금갑장군) 문배도’를 찍은 사진을 토대로 미국에서 발굴했다. 140년 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내부를 찍은 사진 속 사진을 단서로 끈질기에 추적한 결과 찾아낸 것이다. ‘문배’(門排)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의미로 그림을 붙이는 ..
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감옥은 왜 원형으로 지었을까 지금까지의 발굴과 고지도, 사진 등을 통해 분석한 조선시대 감옥은 모두 원형 감옥이었다. 조선시대 원형 감옥이 표시된 고지도는 109곳 146매에 달한다. 1914년까지 유지된 공주옥의 옛사진을 봐도 원형감옥이다. 또 1997년 발굴된 경주옥도, 2003~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