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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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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었을 뿐인데…말 탄 가야 신라인이 '국보' 대접을 받는 이유 전국의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가장 흔한 유물은 뭘까. 역시 점토로 빚어 구운 도기(질그릇 혹은 토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중 국가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된 도기는 단 9건에 불과하다. 왜일까. ‘문화재보호법 제23조’가 규정한 국보·보물의 자격을 보자. ‘중요한 유형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할 수 있으며(1항), 보물 가운데 인류 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2항)’고 했다. 짐작이 간다. 질그릇의 경우 너무 흔한 유물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유물 중에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야 겨우 국가지정문화재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질그릇 중에 ‘국가지정문화재’, 그것도 ‘인류 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유물’로 평가..
부부가 아니네…'신라의 명품 귀고리'는 두 여성의 합장분에서 나왔다 ‘신라 최고의 명품 귀고리가 출토된 고분은 부부총이 아니었다.’ 9월 29~30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국립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의 공개와 활용’ 학술대회가 열렸다. 우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한 고적 조사 사업에서 발굴·수집한 관련 자료(1912~1945년)가 603책 26만쪽이나 된다는 발표(양성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가 있었다. 또한 해방 후 이 자료를 인수한 국립중앙박물관이 2013년부터 ‘일제강점기 자료 공개사업’을 본격 시작하면서 10년째 검토하고 연구 조사한 뒤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발표문 가운데 필자의 시선을 유독 잡아 끈 대목이 있었다. ■부부가 아닌가봐 1915년 조사된 ‘경주 보문리 부부총’이 실은 ‘부부 무덤이 아니’..
월대가 무엇이기에 광화문 앞을 파헤치고 도로 선형까지 바꿀까 광화문 광장에서 탁 트인 가을 하늘 아래 북악산과 어우러지는 광화문·경복궁의 조화를 보는 맛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랜만에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법 하다. 사직동에서 안국동으로 이어지는 광화문 앞 도로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고, 또 최근에는 그마저 높은 울타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이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올 연말까지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월대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불편함을 무릅쓰면서까지 복원한다는 것일까. 문화재청 궁릉유적본부는 ‘광화문 앞 월대의 전면 복원’은 1990년부터 30년 넘게 진행된 경복궁 복원 공사 중 ‘경복궁 중심축 복원에서 찍는 마지막 획’이라고 평가하고 있..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1억년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후기 백악기(6800만~6600만년 전)에 살았던 ‘트리케라톱스’라는 초식 공룡이 있다. 뿔 3개 달린 독특한 외모 덕분에 ‘쥬라기(쥐라기) 공원’을 비롯한 각종 영화나 게임, 다큐멘터리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먹잇감(혹은 라이벌)로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이 트리케라톱스의 조상격인 공룡화석을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천연기념물이 될 ‘쥐라기 공원’ 공룡의 먼 조상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뿔공룡 골격화석)’이다. 2008년 경기 화성 전곡항 방조제 주변 청소작업을 벌이던 화성시청 공무원이 발견했다는 공룡화석이다. 엉덩이와 꼬리, 양쪽 아래 다리와 발 등 하반신 뼈가 제자리에 있는 형태로 발견됐다. 이 화석에 ‘화성’ 명칭이 붙은 이유가 있다. 한반도에서..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고색창연한 절터가 버티고 있다. 회암사터이다. 산의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 그대로 노출된 70여기의 건물터와 함께 그곳에서 활약한 고승들의 기념물까지….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만 1만여평(3만3391㎡)에 이르는 절터에 서면 600년의 시공을 초월한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회암사 하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일화가 떠오른다. 양녕대군의 ‘살아서는 임금의 형, 죽어서는 부처의 형’ 이야기다. 1446년(세종 28) 4월23일 효령대군(1395~1486)이 회암사에서 법회를 열고 있었다. 그때 양녕대군(1394~1462)이 들판에서 사냥해온 짐승으로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형이 신성한 절간에서 고기를 굽자 효령대군은 못마땅한 표정으..
선덕여왕이 '신이 노니는 신유림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그곳은?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산으로는 토함산(해발 745m)과 남산(468m)이 먼저 떠오른다. 토함산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안고 있는 산이니 말할 것도 없다. 남산은 어떨까. 남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하강해서 머무는 ‘영산(靈山)’으로 알려져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에 150여 곳의 절터, 120여 구의 석불, 10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있으니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다. ■남산의 오자가 아니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9월15일까지 ‘낭산, 도리천 가는 길’ 특별전을 열고 있다. 특별전에는 낭산의 주변인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금제여래입상’ 등 국보 2점을 포함해 총 389점이 전시되고 있다. 특..
사찰의 정원석에서 '신라국 김공순' 글자가…"'명필' 김생의 글씨였다" “우리 절에 정원석이 서있는데 거기서 글자가 보입니다. 한번 봐주시면….” 지난 5월20일 박홍국 위덕대 연구교수는 지인(김은하 전 선덕여중 교사)을 통해 경주 남산사 선오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찰 정원석에서 ‘김(金)’ 등의 글씨가 보이는데, 이것이 어떤 명문 비석인지, 어느 시대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발품 파는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박교수는 마침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화를 받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일단 선오 스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18년 전 쯤 절의 조경을 위해 나무를 심으려고 땅을 팠을 때 한 2m 밑에서 나온 돌을 정원석으로 썼다”는 것이었다. “근자에 어느 불자님이 천리향이라는 나무를 심으려고 이 정원석을 비켜놓았는데, 그 돌에 ‘김(金)’을 ..
도굴꾼은 상상도 못했다…목관 밑 '보물상자'에 담긴 2100년전의 삶 “다호리 일대의 도굴이 말도 못합니다. 심각합니다.” 1988년 1월 국립진주박물관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심상치않은 제보 한 건을 올린다. 급보를 받고 달려간 이는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전 문화재청장·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다. 과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현장이었다. 도굴꾼의 탐침봉 흔적이 사방팔방에서 확인됐다. 봉분이나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아닌 논밭이었는데도 그랬다. 실제 도굴이 자행된 구덩이가 논밭 일대에서만 40~50곳이나 보였다. 구릉 위까지 범위를 넓히면 100곳에 넘을 것으로 판단됐다. 한 곳 한 곳 확인해가던 조사단의 눈에 밟히는 도굴 구덩이가 있었다. 마을을 지나는 도로 남쪽에 붙어있는 논이었다. ■도굴범은 상상도 못했던… 깊이 1m 남짓한 구덩이에 도굴꾼이 채워놓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