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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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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투서' … 한글창제 후 생긴 일 “내가 늘그막에 할 일이 없어 글자를 만들었겠냐.”1443년(세종 25년) 12월30일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은 이듬해 2월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1445) 등과 논쟁을 벌인다. 최만리는 “언문(한글)은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문자”라며 “설총(655~?)의 이두는 비속하지만 중국 글자를 빌려 어조(語助)에 사용해서 학문을 일으키는 데는 일조했다”고 나름 평가했다. 그러면서 “언문으로 입신출세한다면 무엇 때문에 어려운 성리학을 공부하겠느냐”며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보물 제951호).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와중에 평안도 의주로 줄행랑친 선조는 포로가 되어 왜적에 협조하는 백성들에게 한글교서를 내려 “백성들이여! 돌아오라!”고 권했다. 당시..
"누가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했나. 철의 나라는 신라였다" 언젠가부터 ‘가야=철의 왕국’이라는 등식은 공리처럼 여겨졌다.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다. 즉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모두 이곳의 철을 가져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다.그러나 ‘동이전’의 내용을 뜯어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울산박물관이 진시중인 ‘달천철광(광산)’ 코너 전시품. 기원전 1~기원후 3세기 토기들이 발굴됐고, 이중에는 왜와의 교역사실을 일러주는 야요이 토기편이 조사됐다.|이도학 교수 촬영 제공■헷갈리는 는 알려지다시피 중국 서진의..
'통일의 유전자'를고려에서 찾는다-고려건국 1100주년 특별전 “태조가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했다. 즉위 조서에서 ‘임금과 신하는 물과 물고기처럼 즐거워하고(魚水之歡)이며 태평시대의 경사(晏淸之慶)를 도우리니 나라의 뭇 백성은 마땅히 내 뜻을 알도록 하라’고 했다.”( )은제 주전자와 그릇받침.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인다. 1935년 미국 보스턴 박물관이 구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918년 6월(음력) 태조 왕건이 고려의 건국을 만천하에 알렸다. 동북아는 당나라가 멸망하고(907년) 이른바 5대10국 시대(907~960)라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 고려는 외세의 지원없이 자력으로 후삼국을 합쳤고, 곧 멸망한(926년) 발해의 유민까지 받아들인 진정한 통일을 이뤘다. 태조 왕건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뜻..
'출처불명' 국보, 'k-93호' 대동여지도, 뒤바뀐 보물…박물관 수장고를 발굴하라 “좋은 유물 찾고 싶으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를 발굴하라”는 말이 있다. 객쩍은 아니다. 현재 박물관 수장고에는 41만 여 점의 문화유산이 소장돼있다. 물론 절대 다수의 유물이 제대로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 한강 범람에 대비하여 한강의 수위보다 높게 조성했고, 철통 보안 속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보물창고’란 명성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문화재 사연 그러나 40만점이 넘는 문화재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간수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유물의 상당수가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을 고스란히 인수받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 발굴조사가 오죽했겠는가. 전문가의 식견이 부족했던 졸속발굴이 적지않았고, 조사보고서도 제대로 작성되지 않은 예가 허다했다. 보고서에 누..
지뢰지대에서 찾아낸 고려 불상 판문점 선언에 따라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예전에 답사한 뒤 기록했던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찾아낸 문화유산을 재조명해보겠습니다. 관할부대 주임원사가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발견한 거대불상. 지뢰지대 속에 겨우 좁은 길을 내어 불상까지 접근했다. 「미확인 지뢰지대」라는 빨간 딱지의 표지를 스치듯 지나가노라니 왠지 꺼림칙하다. 수풀을 헤치며 다가가는 발걸음이 섬뜩하다.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학산 고지(해발 229미터ㆍ파주시 군내면 읍내리). 군사분계선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남방한계선에 접한 곳이다. 사방 「미확인 지뢰지대」임을 경고하는 간이철책 사이에 아슬아슬 나있는 교통호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2005년 2월8일, 구정 전날 아침. 당시 1사단 00연대 0..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공간에서 소개한 가 2쇄를 찍었습니다 차후에 제2권 제3권이 나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를 생각하고자 한 것입니다.(述往事 思來者)”( ‘태사공자서’ ‘사마천전·보임안서’) 사마천이 불후의 역사서인 를 쓴 까닭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E) 핼릿(H) 카(1892∼1982) 역시 (1961년)에서 유명한 말을 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그러고 보면 사마천이나 E H 카나, 두 사람의 뜻은 2000년의 시공을 초월했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즉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며, 과거(역사)를 배우는 것은 바로 현..
후설, 견마지치…인공지능은 승정원일기를 어떻게 번역했나 2005년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Advocaat)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네덜란드어로 된 아드보카트 관련기사를 검색해서 번역기를 돌렸더니 ‘Lawyer(변호사)’라는 주어가 계속 보였다.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드보카트’ 단어에 네덜란드어로 변호사라는 뜻이 있고, 영어에도 ‘Advocate(변호사)’가 있으니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견마지치’를 ‘미천한 신의 나이’로 정확하게 번역한 인공지능 번역기. 승정원의 별칭인 후설(喉舌)도 목구멍(喉)과 혀(舌)로 번역하지 않고 ‘승정원’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66살을 60살로 기록한다던가 ‘거의 쉬는 날도 없이’를 ‘거의 한 달도 지나지 않아’로 표현한다든가 한 것은 전문가의 다듬질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데라우치꽃과 청와대 미남석불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금강국수나무, 미선나무, 새양버들…. 1922년 식민지 조선에서 자라는 식물을 샅샅이 조사해서 펴낸 일본어 식물서적 부록에 등장하는 식물 5종의 이름이다. 그런데 뒤의 세 가지 식물은 뭔가 한반도 고유종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앞의 두 식물 즉 사내초와 화방초는 어쩐지 좀 수상하다. ■조선의 꽃으로 거듭난 조선총독 데라우치 ‘화방초’는 지금은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한국 고유종이다. 전 세계에 2종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 자생한다. 8~9월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데, 청사초롱 모양으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다면 ‘화방초’ 이름은 또 무엇인가. 이 꽃의 학명인 ‘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