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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마음대로 탄생한 국보 11점…화순 대곡리 청동세트 발굴담 2400년 전 어느날. 전남 화순 대곡리에 큰 일이 터졌다. 이 일대를 다스리던 소국의 왕이 서거한 것이다. 제정일치의 시대, 즉 세상을 다스리면서 천지를 농단하여 사람과 하늘을 이어준 일인독존의 왕이 거한 것이다. 제사장이자 왕이 돌아가시자 나라 사람들이 장례를 의논한다. 왕은 본향, 즉 천신이 되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슬픔보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돌로 파서 무덤을 만드는 한편 그 안에는 굴피나무로 통나무관을 만들기로 한다. ■제사장 겸 임금이 서거하시다 우선 통나무 관 밑에는 청동으로 만든 칼 두 자루를 깐다. 액막이용이다. 그런 다음 통나무관에 시신을 누이고 청동신기(神器)들 즉, 청동검과 거울, 방울, 도끼, 새기개 등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이 모두 생전에..
추사 김정희는 왜 '요사스런 자식'이란 쌍욕을 들었을까 요즘 다른 이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함으로써 관심을 끄는, 이른바 ‘관종’들이 출몰하고 있더군요. 그나마 품위있는(?) 단어를 쓴다면 ‘독설가’ 정도는 되겠는데요. 하지만 남을 매섭게 비판할 자격을 갖출만큼 독보적인 학식과 재능을 갖추고 있는 분이라면 몰라도 단지 ‘관종’ 수준의 인간들이 짓껄이는 ‘디스’ 쯤이야 그냥 무시해버리는게 낫겠죠. ■‘요사스런 자식’ 하지만 만약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같은 분에게 인정사정 없는 독설을 들었다면 어떨까요. 그 분은 글씨 뿐 아니라 그림, 시와 문장, 그리고 고증학과 금석학, 다도(茶道)와 불교학 등 섭렵하지 않은 분야가 없는 천재가 아닙니까.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 분만의 장기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감상과 평론’ 이었습니다. 그런 분한테 ..
발굴자도 울었던 동래성 전투현장…1592년 4월15일 무슨 일이? 햇수로 35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저의 뇌리에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기사가 있습니다. 400여년전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상을 기사로 작성할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2005년 4월 15일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안동 전철역사 예정지를 지나던 당시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학예실장(현 한국문물연구원장)이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동래읍성과 불과 50m 떨어진 곳이었기에 전문가의 입회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선 겁니다. 조사결과 과연 수상한 유구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된 유구의 정체는 당시 발굴실무를 담당한 안성현 경남문화재연구원 조사팀장(현 중부고고학연구소 근무)는 “처음엔 이 유구가 해자(성을 보호하려고 조성한 도랑 혹은 연못)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
이것이 1400년전 신라인의 ‘지문’, 1800년전 백제인의 ‘족적’이다. 범죄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요원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지문과 족적입니다. 지문은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다르다고 하며, 같은 지문을 가질 확률이 640억분의 1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라고 했답니다. 신발 발자국인 족적 또한 신원을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됩니다. 신발의 크기와 보폭으로 키와 연령대를 가늠하고 신발의 종류와 찍힌 족적의 방향, 걸음걸이 등을 파악해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역사 고고학 이야기 하면서 왜 뜬금없이 지문과 족적을 들먹이냐구요 ■남근처럼 보였던 흙인형이… 이유가 있습니다. 1800년 전과, 1300~1400년 전의 지문과 족적이 실제로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 이야..
'전하, 바다귀신 소개합니다'…임진왜란 참전한 '흑귀노' 용병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전시회가 개최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는데요.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는 27일부터 6월27일까지 ‘효공과 하멜 이야기’ 기획전시를 연다고 합니다. 전시는 ‘북벌 의지를 다졌던 효종과 조선에 억류된 네덜란드인 하멜이 무기개량 등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덕분이겠지만 조선 땅에 표류한 외국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네덜란드인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인끼리 목놓아 울었다 하지만 하멜 말고도 상당수 외국인이 낯선 땅 조선에 표착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1653년(효종 4) 8월6일자 을 볼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예전에 조선에 온 박연이 금방 표류한 자들(하멜 일행)을 만나보..
"'이릉 송백'의 치욕을 절대 잊지마라"…일본에 사신단을 보내는 영조가 눈물로 신신당부했다 최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조선통신사 재현선을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선상박물관 문화기행’을 4월 28일부터 10월 20일까지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선상박물관 문화기행’은 전남 목포를 중심으로 문화유산 소개, 옛 뱃길 산책, 수중발굴유적지 탐방, 문화예술 공연, 체험 등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특히 옛 뱃길을 따라가는 운항경로는 연구소에서 출발하여 천연기념물 갓바위, 삼학도, 목포항구, 고하도, 달리도 수중발굴현장, 시하바다를 둘러보는 여정이다. 조선통신사선은 지난 2018년 실물크기인 길이 34.5m, 너비 9.3m, 깊이 3.0m, 총 137t수로 재현했다. 이런 배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4년간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들을 태웠다. 한번에 3..
책 1억번 읽은 '조선의 둔재'…세종도 울고 갈 '독서왕'이 됐다 최근 충북 증평군에서 색다른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독서왕김득신문학관’이 준비한 ‘느리지만 끝내 이루었던 길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인데요. 김득신의 유물인 과 이 충북도지정문화재가 된 것을 기념해서 7월11일까지 열립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김득신은 ‘야묘도추’ 등을 그린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이 아닙니다. 그 분과 동명이인이자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곡 김득신(1604~1684)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백곡 김득신은 천하의 책벌레로 알려진 세종대왕(재위 1418~1450)도 울고 갈 지독한 독서왕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더욱이 김득신은 어려서부터 둔재로 소문났던 사람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세종을 능가하는’ 독서왕이 됐을까요. ■세종의 ‘자뻑’…나..
벽돌에 새겨진 신라 전성기의 기와집…으리으리한 팔작지붕이었다 요즘엔 합금(구리+주석)이 워낙 좋아서 사라진 관행이지만 예전 설 명절마다 익숙한 풍경이 있었다. 곱게 빻은 기왓장 가루를 지푸라기 수세미에 묻혀 하루종일 놋그릇을 빡빡 문질러 닦는 풍습이었다. 그렇게 닦으면 놋그릇이 반들반들하게 되는데 어쩌랴. 한데 이게 보존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잘못된 관행이었다. “곱게 간 기와 가루로 빡빡 문질러대면 번쩍거리며 윤이 나죠. 그러나 결국은 그릇의 표면을 깎아내는 것이죠. 그러니 계속 문질러대면 그릇이 얇아지겠죠.”(홍원희 안성맞춤박물관 학예연구사) 놋그릇도 얇아진다지만 기왓장은 또 무슨 죄인가. 과거의 으뜸 건축자재였던 기와는 그렇게 ‘놋그릇 닦기용’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니 무슨 문화재 대우를 받았겠는가.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의 경험담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