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립스틱 짙게 바른' 석굴암 부처님과 창령사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국립춘천박물관이 8월28~11월25일 사이에 개최하는 ‘창령사터 오백나한’ 특별전의 제목이다. 무엇이 나의 마음과 닮았다는건지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전시실에 일렬로 전시해놓은 나한상들을 바라보는 순간 무장해제된다. 어디선가 보았던 친척이나 친구, 이웃집 사람의 얼굴 같은 느낌…. 나한상을 볼 때마다 이 나한상과 꼭 닮은 누군가를 찾게된다. 그 뿐인가.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조금’ 못생긴 것 같은 나한상과 꼭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전시회가 끝날 무렵엔 각 나한상과 찍은 수십장의 사진 파일이 남았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을 붙잡은 모델이 있었으니 바로 ‘립스틱 짙게 바른’ 나한상이었다. 김상태 국립춘천박물관장에게 물어보니 ‘립스틱’ 바른 나.. 피부 조직까지 붙은 머리띠 두른 인골의 정체 몽골 북서쪽 알타이 산악 지역 고분에서 아직까지도 피부조직이 남아있는 1700~2000년전 인골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15일부터 7월24일까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고고학연구소와 몽골 시베트 하이르한(해발 2500m) 유적 파지릭 고분을 공동발굴한 결과 선비시기 무덤 4기 중 1기에서 신장 165~170cm 가량으로 반듯이 누운 미라가 의복과 함께 발견됐다고 밝혔다. 파지릭 고분에서 확인된 선비 시기(기원후 1~3세기) 인골. 머리에 띠를 두른 모습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미라는 몸통과 얼굴 피부조직 일부가 남아있었으며, 머리는 끈을 두르고 있었다. 연대측정 결과 미라는 기원후 1세기로 확인되었다. 상의가 그대로 남아있는 의복은 앞섶이 교차한 형태의 긴소매이다. 짧은 상의 형태로 보.. '금속활자를 찾아라!' 남북한 공동의 ‘황성옛터 만월대’ 프로젝트 ‘깨달음(證道)의 뜻을 밝힌다는 뜻의 라는 책이 있다. 문헌상 금속활자로 간행된 최초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발문을 보면 고려 무인정권의 실세인 최이(?~1249)가 “이 책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니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판각한다. 기해년(1239년)”이라고 기록했다. 2015년 11월 남북한 공동발굴단이 개성 만월대에서 찾아낸 고려 금속활자. 만월대 서부건축군 최남단 지역 신봉문터 서쪽 255m 지점에서 출토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의 목판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라는 책도 있었다. 나라의 제도와 법규를 정할 때 참고했던 책이다. 이규보의 에 “(1234~1241년 사이) 강화도에서 28부를 금속활자로 찍었다”고 했다. 그러나 은 그저 기록만 존재할 뿐이다. 현전하는 세계 .. '무덤의 주인공'을 덧붙인 조선왕릉 조선왕릉 중에 정릉과 온릉·희릉·태릉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의 제11대 임금인 중종(재위 1506∼1544)의 무덤이 정릉(靖陵)이고, 온릉·희릉·태릉은 중종의 세 부인인 단경왕후(온릉)와 장경왕후(희릉), 문정왕후(태릉)의 무덤이다. 중종이 세 부인 중 어느 한 분과도 합장되지 않은 사연이 있다. 중종 반정에 반대하던 아버지(신수근)이 피살되어 중종 즉위후 단 8일만에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와는 무덤을 같이 쓸 수 없었다. 중종의 무덤은 2번째 부인인 장경왕후의 무덤(서삼릉 희릉)에 조성됐다. 그러나 정권을 틀어쥔 제3부인 문정왕후는 남편을 독차지하려고 중종릉을 강남의 봉은사 곁(정릉)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능으로 낙점된 곳이 낮은 침수지대였던 탓에 정작 자신은 남편 곁을 .. 양복점 주인이 찾아낸 대한제국 최후의 문관대례복 그동안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던 대한제국 마지막 서구식 문관대례복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근대복식사 전공자인 이경미 한경대 교수(의류산업학과)는 10일 “1980년대부터 한국맞춤양복협회에 전시된 복식을 조사한 결과, 대한제국이 1906년 12월 칙령 개정 이후 제작한 문관대례복(국가의 의식 때 착용한 옷)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06년 12월12일 고종황제의 칙령 제75호 ‘문관대례복 제식’의 개정에 따라 제작된 대한제국 마지막 대례복. 이전에 비해 앞면의 금색표장이 사라졌지만 뒷면의 칼라와 어깨, 등, 호주머니, 소매 등에 무궁화를 장식했다.|한국맞춤양복협회 제공 대한제국은 국제외교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1900년 4월 17일 서양식 문관대례복에 대한 규정을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04∼1905년 칙.. ‘천재’ 세종 vs ‘둔재’ 김득신의 독서왕 대결 “(세종은) 책을 100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과 같은 책들은 200번 읽었다. 몸이 아파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아버지(태종)가 환관을 시켜 책을 다 거두어갔다. 그런데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다. 세종은 이 책을 1100번 읽었다.”( ‘세종조고사본말’) ■세종의 ‘자뻑’, ‘나보다 책 많이 읽은 자 나오라그래!’ 역대로 가장 많은 독서량을 자랑한 군주는 역시 만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을 꼽을 수 있다. 서거정(1420~1488)의 수필집인 를 인용한 은 ‘독서계의 레전드=세종’의 일화를 전한다. 백곡 김득신이 78살 때 쓴 글씨. 당나라 이백의 한시다. ‘9월9일 중양절 용산에 올라 술을 마시니 산 국화가 쫓겨난 신하를 비웃는 듯하네. 취기에 얼핏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보고 춤추며 달을 보노.. 화려한 색채의 공주 대통사…백제 장인이 묻힌 '아차' 실수 단청 흔적 백제 최고(最古)의 사찰인 대통사터로 지목된 충남 공주 반죽동 한옥부지에서 사찰을 화려한 단청으로 칠한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지난 3~4월 이곳에서 ‘대통(大通)’이라는 명문기와 등 2만 여 편의 유물을 발굴한 조원창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수습된 지두문(손가락으로 그린 무늬) 암막새의 뒷면에서 가로 방향의 붉은 칠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대통사터에서 확인된 암막새. 뒷면에 백제의 단청기술자가 실수로 묻힌 붉은 칠의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한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 원장은 오는 7일 열리는 ‘공주 대통사지 성격규명과 향후 조사 및 활용방안’ 학술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한다. 조 원장은 이것이 “암막새가 시설되는 연함(連含)을 단청하는 과정에서 묻은 흔적으로 추정된다..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vs 예겸' 한 중 시문배틀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명나라 사신) 예겸이 정인지에게 ‘그대와 나누는 하룻밤 대화가 10년 동안 글을 읽어서 얻는 소득보다 낫습니다’라 했다.”() “예겸이 두 선비(신숙주·성삼문)을 사랑하여 형제의 의를 맺고 시를 계속 주고받았다. 예겸이 귀국할 때는 눈물을 닦으며 이별했다.”() “(안평대군의) 글씨는 보통 솜씨가 아니다.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1450년(세종 32년) 윤 1월1일 명나라 사신 예겸(1415~1479)이 조선을 방문했다. 막 즉위한 명나라 경태제(재위 1449~1457)의 등극조서를 조선에 반포하기 위함이었다. 조선땅을 밟은 예겸은 당대 세종대왕이 직접 키운 집현전 학사들인 정인지·신숙주·성삼문 등과 치열한 ‘시문 배틀’을 벌였고, 그렇게 겨룬 시문 37편을 골라 두루마리 시권으로 엮었다. 길..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