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유인의 땅' 카자흐스탄과 신라는 대체 무슨 관계였을까 1928년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의 공사장에서 정체불명의 유물편이 출토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장신구의 한 부분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뿐이었다. 그로부터 65년 후인 1973년 이역만리 경주 계림로에서 벌인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 도중 성인 남자 2명이 나란히 묻힌 무덤(14호분)이 확인됐다. 오른쪽 남자는 큰 칼을 차고 있었는데, 왼쪽 남자는 길이 36㎝의 황금보검을 달고 있었다. 경주 계림로에서 확인된 황금보검 장식과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에서 출토된 보검 장식. 세부 문양은 다소 다르지만 기본 모티브는 흡사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그런데 일본학자들인 아나자와 와코우(穴擇和光)와 마노메 슌이치(馬目順一) 등으로부터 계림로 출토 황금 보검의 사진을 받아본 러시아 학자인 A.K. 암브로즈는 무릎을.. '해동의 요순' 세종은 왜 짜증과 불통의 대마왕이 되었나 (가)“너희는 설총은 옳다 하면서 내가 한 일은 그르다 하는 이유가 뭐냐.” “이 따위가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저속한 선비다.” “내가 너희에게 처음부터 죄주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보자보자 하니 안되겠다. 죄를 벗기 힘들겠구나.” 감정적인 언사로 일관하고 있는 발언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것은 새발의 피다. (나)“대소신료들이 떼지어 날 겁박하는 것이냐” “난 어진 임금이 아니다. 부덕한 임금이라 마음대로 한다” “내가 세 살 먹은 아이들을 달래는 것 같구나.” “너희가 정승이냐” “친형제 같은 원로대신도 날 친견하지 않는다. 너희가 무슨 물건이기에 날 보려고 하는가.” “정승 1000명이 나와 말해봐라. 그래도 난 굽히지 않는다.” “분명한 일은 임금 독단으로.. 백제판 '포스코' 제철소, 충주 칠금동에서 확인됐다 충북 충주 칠금동이 백제시대 ‘포스코’였음을 입증해주는 제련로가 9기나 쏟아져 나왔다.칠금동 제철유적을 조사중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21일 올해 3차발굴에서 3~4세기에 제작된 제련로 9기를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충주 칠금동 제철유적에서 확인된 제련로 중 하나. 이곳에서는 총 20기의 제련로가 발견됐다. 3~4세기 백제시대 '포스코'라 할 수 있는 제철공장이 확인된 것이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제공 한지선 중원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칠금동 유적이 명실상부 국내에서 단위면적당 최대 유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밀집도로 보면 칠금동은 요즘의 포스코를 연상시킬만큼 대단위 제련공장이 있었던 곳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제련로는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이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비격진천뢰, 일본군을 '공포'에 빠뜨린 비밀병기 개발자 이장손을 아시나요 “1592년(선조 25년) 9월1일 박진이 비격진천뢰를 성안으로 발사했다. 왜적은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앞다퉈 구경하다가 포탄이 터졌다. 소리가 진동했고, 별처럼 퍼진 쇠조각에 맞은 20여명에 즉사했다. 놀란 왜군이 이튿날 경주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경상좌병사 박진(?~1597)이 비격진천뢰를 써서 경주성을 탈환했다는 실록기사다. 비격진천뢰가 임진왜란 때 왜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조선의 비밀병기였음을 알려주는 기사다. 그러나 현전하는 실물자료는 5점 안팎에 불과했다.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의 무기고에서 11발의 비격진천뢰가 발굴됐다. 비격진천뢰는 1591년(선조 24년)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한 최첨단 무기였다.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11발이나 쏟아진 비격진천뢰 그러던 차에 이번에 전북 무.. 1600년전 부부묘에서 확인하는 다자간 교류의 흔적 지난 9월 전북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에서 1600년 전 부부가 나란히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석곽묘 2기가 확인됐다. 부장유물과 무덤배치로 보아 봉분 하나에 남녀의 무덤을 함께 조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이좋게 조성된 석곽묘 2기(5세기 무렵) 중 1기에는 완형의 금귀고리 1점과 목걸이로 추정되는 곡옥과 채색옥이 보였다. 또 피장자의 왼팔에 착용한 팔찌로 추정되는 소옥류가 출토됐다. 다른 1기에는 다양한 토기류와 함께 철기류와 마구류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환두도(둥근 고리칼)가 눈에 띄었다. 전북 장수 삼고리에서 확인된 1600년전 부부묘. 부부묘에서는 가야뿐 아니라 백제, 신라, 마한 등과 역동적인 교류를 했다는 증거들이 나왔다.|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이 고분군을 발굴한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의 전.. 단돈 100원에 '엿바꿔 먹은' 범학리 삼층석탑의 '77년 걸린 귀환' 국립진주박물관은 요즘 아주 희귀한 국보 석탑의 전시를 위해 터파기 공사에 여념이 없다. 주인공은 국보 제105호인 경남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다. 통일 신라 양식을 계승한 범학리 석탑은 탑 외면에 부조상이 새겨져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층 기단에는 신장상(神將像·무력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8구, 탑신에는 보살상 4구가 정교한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당대의 뛰어난 조각기술과 경남 지역의 불교 미술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이어서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1946년 미군공병대가 경복궁내에 복원한 범학리 삼층석탑(국보 제105호). |국립진주박물관 제공그러나 이 석탑 만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섬장암을 깎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찬희 공주대 교수(문화재보존학과)에 따르면 한국 석탑의 .. 애써 <택리지>를 쓴 이중환의 결론, "18세기는 헬조선이었다" “택리(擇里), 즉 사는 곳을 택하는 책은 이중환이 썼는데 사람들이 그 책에 엄청 현혹되어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擇里之書李重煥創著 人多被惑 其弊無窮)”(이규경의 ‘택리변증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1788~?)은 이중환(1690~1756)의 가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염려하는 평론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는 사대부가 조선 팔도에서 살만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어느 지역에 아파트와 땅을 사놓으면 돈을 번다는 식의 이야기를 역사와 경제, 유통, 명승의 관점에서 ‘족집게’처럼 콕 찍어 정리했으니 ‘혹’할 만 했다. 1723년(경종 3년) 9월 이중환이 임청각의 고성 이씨에게 보낸 편지다. 목호룡의 배후 세력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가 9월2일 풀려난 뒤.. 수덕사 불상에서 찾아낸 보물급 불경 8점 충남 예산 수덕사 무이당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 내부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급 불경 8점이나 쏟아져나왔다. 문화재위원인 정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높이 90㎝ 소조불상 안에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권79∼81, 권91∼93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다라니 등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정각 스님은 3일 충남 홍성 충남도서관 강당에서 수덕사와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가 공동 개최하는 ‘덕숭산 수덕사 본말사의 성보문화재’ 학술대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수덕사 무이당 소조여래좌상 안에서 발견된 권91. 수덕사 가 대각국사 의천이 수입한 송나라 경판이 아니라 고려가 자체 제작한 경판에서 인출했음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다.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제공이번에 발견된 불.. 이전 1 ··· 62 63 64 65 66 67 68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