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무도 눈치 못챈 세종의 '숨겨진 업적’…그걸 지켜낸 조선의 민초들 “지금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충주에만 있으니 염려스럽습니다.”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대왕의 업적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훈민정음 창제와 해시계·물시계·측우기 등 과학기술 장려, 대마도 정벌과 4군6진 개척, 그리고 편찬 등 손으로 꼽을 수 없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숨겨진 업적’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다.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책을 보관할 사고(史庫)를 확충한 것이다. 조선 건국 후 사고는 내사고(서울 춘추관)와 외사고(충북 충주) 등 2곳 뿐이었다. 이중 과 , 등이 보관된 곳은 외사고인 충주사고 뿐이었다. 그러니 내내 불안했다. 민가와 섞여있는 사고에 불이라도 나면 끝장이었다. 급기야 1439년(세종 21년) 사헌부가 상소문을 올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사고에서 실록을, 경기.. 후설, 견마지치…인공지능은 승정원일기를 어떻게 번역했나 2005년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Advocaat)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네덜란드어로 된 아드보카트 관련기사를 검색해서 번역기를 돌렸더니 ‘Lawyer(변호사)’라는 주어가 계속 보였다.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드보카트’ 단어에 네덜란드어로 변호사라는 뜻이 있고, 영어에도 ‘Advocate(변호사)’가 있으니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견마지치’를 ‘미천한 신의 나이’로 정확하게 번역한 인공지능 번역기. 승정원의 별칭인 후설(喉舌)도 목구멍(喉)과 혀(舌)로 번역하지 않고 ‘승정원’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66살을 60살로 기록한다던가 ‘거의 쉬는 날도 없이’를 ‘거의 한 달도 지나지 않아’로 표현한다든가 한 것은 전문가의 다듬질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뼈대있는 마한출신 가문 5대가 묻힌 백제시대 선산 2003년 12월 충남 공주 수촌리에서 백제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불과 300평 남짓한 구릉 한편에서 백제 무덤 6기가 확인됐는데 그 속에서 금동관모 2점과, 금동신발 3켤레, 중국제 흑갈유도자기 3점, 중국제 청자 2점, 금동허리띠 2점, 환두대도 및 대도 2점 등 백제사를 구명할 수 있는 찬란한 유물들이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백제의 금동제 유물이 쏟아진 것은 무령왕릉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동기 세트의 현현 대체 어찌된 일인가. 시계를 두달 전인 2003년 10월로 돌려보자. 수촌리 현장은 동편 뒤로는 산을 등졌고, 서편 앞쪽으로는 드넓은 정안 뜰이 펼쳐져있는 명당이었다. 예부터 홍수가 나면 정안뜰까지 물이 들었다고 해서 수촌리(水.. 똥!덩!어!리!의 역습 “아줌마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구제불능, 민폐, 걸림돌, 많은 이름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렇게 불러주고 싶어요. 똥!덩!어!리!” 2008년 드라마 에서 천재 지휘자 강마에(김명민)가 첼로 연주자 희연(송옥숙)에게 내뱉은 대사이다. “아무리 연기였지만 ‘똥덩어리’ 소리에 기분이 엄청 나빴다”는 송옥숙씨의 토로처럼 ‘똥’과 관련된 욕설을 들으면 이성을 잃게 된다. 2007년 5월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 똥’을 어린이 발레로 공연할 때의 삽화.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1932년)에도 주인공 허숭이 ‘에라이 똥물에 튀길 녀석!’이라는 욕설을 듣는 대목이 나온다. ‘똥물이나 맞을 지지리도 재수없는 놈’이라는 소리다. 에도 “(순종하지 않은 제사장들에게) 희생 제물의 똥을 너희 얼..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조문'과 손편지 조문 “상주를 알면 조문하고 죽은 사람을 알면 애도한다.” 동양의 예법서인 는 조문(弔問)과 애도(哀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원나라 시대의 학자 진호는 “조문은 “조문은 예의를 갖추어 위문하는 것이고, 애도는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따지고보면 법도를 갖추어 망자와 망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은 쉽지않다. “조문은 원래 단순히 상주를 위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망자가 흙에 묻힐 때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동양의 조문절차가 매우 엄격한 것 같다. 하지만 진호의 언급대로 ‘예의와 진심’을 담는다면 그리 번거로울 것도 없는 예법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1680~1746)의 관혼상제 참고서인 은 “상가에서 전(奠·장례 때 올리는 음식)은 슬픔과 정성을 귀하게 여기므로.. 무령왕비 빈전을 찾아 조문하다 1995년 충남 공주에서는 금강을 따라 공주~부여를 연결하는 백제큰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발 67m인 야트막한 산(정지산)을 절단할 참이었다. 이미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백제큰다리)의 교각공사는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웅진백제의 고도가 아닌가. 시 전체가 유적·유물밭이므로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문화재지표조사가 선행되어야 했다. 지표조사는 국립공주박물관이 맡았다. 만약 정지산의 지표에서 유물·유구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면 절단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지산 주변에서 백제시대 유물이 채집되었다.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듬해인 1996년 2월부터 정식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발굴은 박물관에서 가장 젊은 학예사(이한상 현 대전대 교수)가 맡았다. 발굴이 진행될.. 핵실험-길주 지진, 백두산 화산폭발 방아쇠 당기나 거란은 925년 12월 독한 마음을 품고 발해 침공에 나섰지만 싱거운 승리를 거둔다. 보름도 지나지 않은 926년 1월 발해 임금 대인선(재위 906~926)이 무조건 항복했다. 가 전하는 항복의 순간은 치욕적이다. 대인선은 ‘흰옷을 입고 양을 끌고 또 신하 300여 명과 함께’ 항복한다. 발해(698~926년)는 15대 229년 만에 멸망했다. 이상한 일이다. 해동성국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던 발해로서는 너무도 허망한 멸망이다. 고구려의 광활한 고토를 거의 대부분 차지했던 발해제국이 보름도 되지 않아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는 “발해의 민심이 멀어진 틈을 무혈입성했다”고 전했다. 10세기 화산폭발로 타버린 나무(탄화목). 이 탄화목 나이테의 중심연대는 933~934년 사이이다. 의문점이 생긴다.. '또 하나의 궁궐' 회암사는 왜 폭삭 무너졌을까 “천보산중(天寶山中) 회암사(檜岩寺) 보광명전(普光明殿) 사교각(四校角)~현금탁(縣琴鐸)~” 2000년 5월 어느 날 점심 무렵. 양주 회암사 6단지를 조사 중이던 경기도 박물관 발굴단원의 눈에 이상한 유물이 걸려들었다. 보광전 건물지 앞쪽에서 글자가 새겨진 청동유물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채 발견된 것이다. 현장책임자인 송만영(당시 경기도박물관 학예사)을 비롯한 발굴단은 명문 청동기의 출현에 아연 긴장했다. ‘천보산 중턱의 회암사 보광전 네 모서리에 달린 금탁’으로 시작된 명문 청동기에는 무려 13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명문은 “功德主 嘉靖大夫 判內侍府事 李得芬”으로 끝나는 공덕주 이득분의 발원문(發願文)이었던 것이다. 1997년 첫 발굴이후 처음으로 나온 ‘회암사’라는 이름이었으므로 눈이 번쩍.. 이전 1 ··· 76 77 78 79 80 81 82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