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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태자는 주색잡기에 빠졌다?”…‘태자궁’ 출현에 풀린 ‘50년 오해’ 경주 시내에 아주 매력적인 핫플레이스가 있다. ‘동궁과 월지’이다.야경,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연못(월지) 위의 데칼코마니 뷰’는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그런데 이 ‘동궁과 월지’ 명칭은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오랫동안 ‘안압지’ 명칭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안압지’는 기러기(안·雁)와 오리(압·鴨)가 뛰노는 연못(지·池)이라는 뜻이다.그런데 꼭 50년 전인 1975년 이 연못에서 ‘주색잡기에 빠진 신라 태자’를 상징하는 유물 2건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그것이 오해였다는 고고학 방증자료가 발표되었다. ‘동궁과 월지’에 담겨있었던 ‘오해와 진실’을 한번 풀어보자.최근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결과 ‘월지’ 동편에서 신라 태자가 거처한 ‘동궁’임을 추정케하는 ‘대형건물+..
피 토한 고종, 통곡한 총리, 폭발한 민심…‘을씨년스러웠던’ 1905년 을사년 ‘을씨년스럽다’는 ‘2025년 을사년’을 맞아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표현이다.은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이 말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피를 토한 고종1905년 11월18일 새벽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일본 경찰은 “고종이 몇시간째 통곡했고, 급기야 피를 토하기까지 했으며, 전국 각지에 사자를 파견, ‘조약은 불법으로 맺어졌으니 짐의 백성들은 궐기하라’는 밀명을 내렸다”는 정보보고를 올렸다.| 제24권 ‘한일협약’(1905년11월18일 경찰보고)■을사년, 을씨년하지만 1855년 편찬된 조재삼(1806~1866)의 에 다른 설명이 등장한다.“을사년=세간에 을사년을 흉하게 여겨..
‘돼지코’ 집터로 유명한 ‘송국리’ 유적…택지 개발로 탄생한 청동기시대 도시? “큰일났습니다. 지금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고분에 도굴꾼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1974년 4월 어느 날 안승주 공주대 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부여 초촌면 송국리 주민 최영보씨였다.최씨는 공주 남산리 유적 조사 때 잡역을 도와준 인연으로 안교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4월19일 안교수는 김영배 국립공주박물관장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소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어 현지 주민의 안내 없이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도굴의 화를 피했다1974년 4월 충남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모습을 드러낸 청동기 시대 유물. 도굴의 화를 피해 기적적으로 간직되어 있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최씨가 지목한 지점에서 소나무 일부를 파 옮기고, 흙을 약 20㎝ 걷어내자 덮개돌의 윤곽이 드러났다. ..
‘일기’ 없어 악인된 원균?…실록 ‘어전회의 회의록’ 등에 기록된 진면목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가 있어요. 이순신은 일기(난중일기)를 남겼고, 원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측근들에게 남긴 말의 요지란다. 물론 승장(이순신)과 패장(원균)이라는 점에서 찬사(이순신)와 비판(원균)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이순신에 비해 원균이 ‘만고의 역적’으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가 ‘이순신’처럼 기록을 남기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선조가 원균에게 내린 선무공신교서(보물). 원균은 임진왜란 때 무공을 떨친 1등공신 명단에 이순신·권율과 함께 1등 공신에 포함됐다.|경기도박물관 위탁관리■이순신의 원균 뒷담화한번 살펴보자. 먼저 이순신(1545~1598)은 에서 원균(1540~1597)을 80~12..
경주 ‘봉황알 고분’은 1524년전 정변의 기록…5살 왕자, 이사지왕은 누구? 경주에서는 예부터 ‘봉황 알’ 전설이 구전되었다. 즉 누란의 위기에 선 10세기초였다.풍수가가 고려 태조(918~943)에게 “배 모양으로 생긴 경주는 언젠가 좋은 바람을 타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침몰시켜야 한다”고 꼬드겼다. 풍수가는 이번에는 신라 임금을 찾아가 세치혀를 놀렸다.“봉황의 둥우리처럼 생긴 서울(경주)는 천년 동안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젠 봉황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합니다. 서울에 봉황의 알을 많이 만들어 두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할 겁니다.”풍수가의 말에 혹한 신라 왕은 경주 한 복판에 둥글둥글 흙을 쌓아 산더미 같은 알을 수없이 만들었다. 그런 뒤 미추왕릉 부근의 숲속에 우물을 파놓고 고려로 도망갔다. 짐을 잔뜩 실은 배의 밑 바닥을 뚫어 놓은 격이었다. 이 때문에 ‘신라..
경주 ‘봉황알 고분’은 1524년전 정변의 기록…5살 왕자, 이사지왕은 누구? 경주에서는 예부터 ‘봉황 알’ 전설이 구전되었다. 즉 누란의 위기에 선 10세기초였다.풍수가가 고려 태조(918~943)에게 “배 모양으로 생긴 경주는 언젠가 좋은 바람을 타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침몰시켜야 한다”고 꼬드겼다. 풍수가는 이번에는 신라 임금을 찾아가 세치혀를 놀렸다.“봉황의 둥우리처럼 생긴 서울(경주)는 천년 동안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젠 봉황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합니다. 서울에 봉황의 알을 많이 만들어 두면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할 겁니다.”풍수가의 말에 혹한 신라 왕은 경주 한 복판에 둥글둥글 흙을 쌓아 산더미 같은 알을 수없이 만들었다. 그런 뒤 미추왕릉 부근의 숲속에 우물을 파놓고 고려로 도망갔다. 짐을 잔뜩 실은 배의 밑 바닥을 뚫어 놓은 격이었다. 이 때문에 ‘신라..
혼군? 용군? 폭군? …‘대통령 윤석열’은 역사에 어떤 지도자로 기록될까 혼군, 폭군, 용군역사적으로 잘못된 정치를 펼친 군주를 지칭할 때, 혼군(昏君·혹은 암군), 용군(庸君), 혹은 폭군(暴君)이라는 용어를 쓴다. 율곡 이이가 1569년 독서휴가 중 문답체로 선조임금에게 올린 ‘동호문답’에서 그 의미를 명쾌하게 구분해놓았다.|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어떤 이가 혼군(昏君·혹은 암군·暗君)이고, 또 어떤 이가 용군(庸君), 또 어떤 이가 폭군(暴君)인가.잘못된 정치로 악명을 떨친 군주에 관한 평가도 구분된다. 율곡 이이(1536~1584)가 1569년(선조 2) 독서휴가(사가독서·賜暇讀書) 도중 임금(선조)에게 지어 올린 글(‘동호문답’)에서 명확하게 밝혔다.‘동호독서당’(서울 옥수동)에서 왕도 정치의 경륜을 문답체로 서술해 올렸다고 해서 붙인 글제목이다.■폭군, 혼군, 용군..
“총독 잡아와라!” 호통친 65세 독립투사…사형판결에 하늘이 노했다 “원산 세관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을 텐데, 어떻게 폭탄을 숨겨왔나?”(다치가와·立川 재판장) “수건에 싸서 개짐(생리대) 차듯 아래에 차고 상륙했다. 세관원들은 폭탄인지도 모르고 내 불알이 그렇게 큰 줄 알았겠지.”(강우규 의사)강우규 의사(1855~1920)의 ‘사이토(齋藤) 총독 폭탄 투척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1920년 2월14일 경성지방법원의 풍경이다.매일신보는 강의사의 농섞인 진술에 “법정에 운집한 100여명의 방청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2월15일자)고 전했다.1920년 2월14일 경성지방법원 7호법정에서 난데없는 폭소가 터졌다. 이날 열린 사이토 총독 저격 사건 1차공판에서 강우규 의사가 “어떻게 폭탄을 숨겨왔냐”는 질문에 “수건에 싸서 개짐(생리대) 차듯 아래에 차고 상륙했는데, 세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