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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골인과 날 들이밀기 신공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 출전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꿈은 신기루 같았다. 결승선 직전까지 중국의 리자쥔(李佳軍)에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리자쥔이 환호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뒤에서 파고들던 김동성 선수가 사력을 다해 왼발을 쭉 뻗었다. 사진판독결과 김동성의 스케이트날이 간발의 차로 먼저 결승선을 지났다. 우승을 확신했던 리자쥔의 그 황망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골인 직전까지 펠릭스에게 뒤져있다가 다이빙 하는 바람에 역전 우승한 샤우내 밀러. 몸통(가슴)이 먼저 결승선에 닿으면 된다는 육상 규정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특유의 필살기였던 ‘스케이트 날 들이밀기’는 이후 쇼트트랙 피니시 전법의 기본이 되었다. 한가지 ‘들이밀기’에서 주의할 점은 날을 들지 않아야..
남북선수 셀카? 그것이 무슨 뉴스인가 “(조)남풍이 형하고 나란히 소변을 보면서 감독(윤상문)을 세게 뒷담화했어요. 감독이 화장실 안에 있는 지도 모르고….”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코리아’ 단일팀으로 참가했던 당시 이유성 코치의 회고담이다. 북측 조남풍 코치와 ‘짝짜궁’이 되어 남측 윤상문 감독을 험담하다가 혼쭐이 났다는 것이다. 리우 올림픽에서 남측 이은주(오른쪽)와 북측 홍은정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있다. 정치학자인 이안 브레머는 트위터에 “이것이 바로 올림픽을 하는 이유”라 했다. 이후 두 사람이 ‘우리 남풍이형’, ‘우리 유성이’하는 통에 얼굴도 모르는 양쪽 코치의 부인들도 마치 친동서간처럼 지냈다. “통일되면 내가 남풍이 형 노후를 책임진다고 했는데….”(이유성씨) 1991년 3~4월은 남북 탁구선수들이 ‘46일간..
작은 공(탁구공)이 큰 공(지구)를 흔들었다 올림픽 탁구경기를 관전하다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니폼은 분명 유럽선수이고, 아메리카 대륙 선수인데 얼굴은 동양인 일색인 것입니다. 선수 대부분이 중국계이기 때문이다. 그도그럴 것이 중국대륙에는 등록선수만 5000만명에 달합니다. 중국에서 대표선수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겟지요. 그러니 다른 대륙, 다른 나라의 대표선수가 되겠다는 겁니다. 한국 대표선수 가운데도 전지희가 중국계 귀화선수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중국에서 탁구가 국기의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왜 핑퐁외교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정리하자면 탁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닙니다. 탁구공의 무게는 불과 2.5g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은 공이 지구라는 엄청난 큰 공을 뒤흔들었습니다. 탁구가 바꿔놓..
4등은 없다. 그대는 세계 4강이다. 이규혁·남수일·김해남·유인호·이종섭(이상 역도), 최윤칠·이창훈(이상 마라톤), 이상균·원봉욱(이상 레슬링)….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64년 도쿄 올림픽까지 뛰었던 선수들이다. 이 분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선수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동계올림픽까지 통틀어 73개 세부종목 선수들이 올림픽 4위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평안도 영변 출신이었던 김해남 선수의 경우는 성적에 관한 한 특히 한스러웠다 할 수 있다. 1950~60년대를 주름잡은 역도스타였던 김해남은 헬싱키(52년)~도쿄(64년)까지 무려 4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던 임정화 선수. 그러나 당시 은메달을 땄던 터키 선수의 금지약..
‘백제계’ 아키히토 일왕의 '양위' 승부수 “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것 같다…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느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속삭인 말이다. 일왕이 “내 조상은 한국계”라고 직접 인정한 폭탄발언이었지만 당시엔 부각되지 않았다. 통역을 맡았던 김상배씨는 2010년 아사이신문에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일왕의 사죄발언에 묻혔다”고 전한바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살펴보고 있다. 2001년 68회 생일을 맞이한 일왕은 공개 기자회견장에서 “간무(桓武) 천황(재위 781~806년)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에 기록돼있다”면서 “한국과 깊은 연을 느낀다”고 선..
양궁의 비결은 역시 '피와 땀' 4500년 전 태양이 10개나 한꺼번에 떠올랐다. 산천초목이 불타기 시작하자 동이족의 군장인 예가 나섰다. 동방의 신궁이던 예는 시위를 당겨 태양 9개를 차례로 떨어뜨렸다. 떨어진 태양은 세발달린 까마귀, 즉 여자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이후 32년간 단체전 금메달 행진을 이었다.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 선수 역시 리우올림픽에서 단체금메달을 땄다. 삼족오로 변한다. 하나 남은 태양은 비로소 지상세계를 정상으로 운행한다. 2500년 후 고구려 창업주 주몽이 등장한다. 주몽은 비류국 임금(송양)과 영토를 걸고 활쏘기 경쟁을 펼친다. 주몽은 100보(70~100m) 앞에서 화살을 쏘아 지름 3㎝의 옥반지를 산산조각낸다. 신궁의 전통은 조선 창업주 이성계로 이어진다. 이성계는 100m 앞에 둔 은거울 10..
동이족 역사상 최강의 궁사 2016 리우올림픽이 우리 시간으로 6일 아침 개막됩니다. 아무리 금 은 동메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치열한 승부끝에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쾌감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선수단의 확실한 금맥인 양궁의 경우는 어떨까요. 오히려 국내 선발전이 더 치열할 정도로 올림픽 대표로 뽑힌 선수들의 기량은 출중합니다. 궁술의 피가 흐르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나 봅니다. 전설속 동이족 군장인 예라는 인물부터 고구려 창업주 주몽,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까지. 저마다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를 자랑했지요. 2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욱 선수가 10점 만점의 한가운데 과녁을 두번이나 정통으로 맞췄고, 1994년 한승훈 선수가 30미터 거리에서 36발 전부 10..
춤바람난 올림픽 선수단? 곧 리우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되고, 메달레이스가 펼쳐지면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4년간 선수들이 흘린 땀을 보상받는 올림픽 무대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68년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을 보거나 당시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습니다. 참가비를 마련하려고 복권을 발행한 이야기,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라고 큰소리쳤다가 줄줄이 탈락한 마라톤 선수들,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은 확실하다고 떵떵 거리다가 0-12로 참패한 축구 선수들, 경기 전날 공업용 용액을 술로 착각해서 마셨다가 밤새도록 뒹굴었던 선수와 아나운서 이야기 등등. 참으로 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