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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계’ 아키히토 일왕의 '양위' 승부수 “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것 같다…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음을 느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속삭인 말이다. 일왕이 “내 조상은 한국계”라고 직접 인정한 폭탄발언이었지만 당시엔 부각되지 않았다. 통역을 맡았던 김상배씨는 2010년 아사이신문에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일왕의 사죄발언에 묻혔다”고 전한바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살펴보고 있다. 2001년 68회 생일을 맞이한 일왕은 공개 기자회견장에서 “간무(桓武) 천황(재위 781~806년)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에 기록돼있다”면서 “한국과 깊은 연을 느낀다”고 선..
양궁의 비결은 역시 '피와 땀' 4500년 전 태양이 10개나 한꺼번에 떠올랐다. 산천초목이 불타기 시작하자 동이족의 군장인 예가 나섰다. 동방의 신궁이던 예는 시위를 당겨 태양 9개를 차례로 떨어뜨렸다. 떨어진 태양은 세발달린 까마귀, 즉 여자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이후 32년간 단체전 금메달 행진을 이었다.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 선수 역시 리우올림픽에서 단체금메달을 땄다. 삼족오로 변한다. 하나 남은 태양은 비로소 지상세계를 정상으로 운행한다. 2500년 후 고구려 창업주 주몽이 등장한다. 주몽은 비류국 임금(송양)과 영토를 걸고 활쏘기 경쟁을 펼친다. 주몽은 100보(70~100m) 앞에서 화살을 쏘아 지름 3㎝의 옥반지를 산산조각낸다. 신궁의 전통은 조선 창업주 이성계로 이어진다. 이성계는 100m 앞에 둔 은거울 10..
동이족 역사상 최강의 궁사 2016 리우올림픽이 우리 시간으로 6일 아침 개막됩니다. 아무리 금 은 동메달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치열한 승부끝에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쾌감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선수단의 확실한 금맥인 양궁의 경우는 어떨까요. 오히려 국내 선발전이 더 치열할 정도로 올림픽 대표로 뽑힌 선수들의 기량은 출중합니다. 궁술의 피가 흐르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나 봅니다. 전설속 동이족 군장인 예라는 인물부터 고구려 창업주 주몽,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까지. 저마다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를 자랑했지요. 2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욱 선수가 10점 만점의 한가운데 과녁을 두번이나 정통으로 맞췄고, 1994년 한승훈 선수가 30미터 거리에서 36발 전부 10..
춤바람난 올림픽 선수단? 곧 리우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열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되고, 메달레이스가 펼쳐지면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4년간 선수들이 흘린 땀을 보상받는 올림픽 무대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68년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을 보거나 당시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습니다. 참가비를 마련하려고 복권을 발행한 이야기,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라고 큰소리쳤다가 줄줄이 탈락한 마라톤 선수들,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은 확실하다고 떵떵 거리다가 0-12로 참패한 축구 선수들, 경기 전날 공업용 용액을 술로 착각해서 마셨다가 밤새도록 뒹굴었던 선수와 아나운서 이야기 등등. 참으로 파란..
부여의 남진 혹은 신라의 간접지배? ㆍ4세기 국내산 갑주 대거 출토 ‘임나일본부설’ 허구를 밝히다 흥분한 조합원이 휘두른 호미는 조합과 부산시의 창구역을 맡은 박유성의 귀 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쳤다. “모골이 송연했어요. 주민들도 흥분할 만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대한 애착이 어지간하잖아요. 새 연립주택을 지으면 집값이 올라갈 것이 뻔했는데, 문화재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니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박유성씨)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은 부산시의 대안마련으로 극적인 타협점을 찾는다. 현장의 토지매입에 적극 나서는 한편, 집을 지을 수 없게 된 조합원들에게 다른 곳(연산동·구서동 등)에 집을 우선 마련해주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지금 보면 배울 점이 많아요. 부산시가 발빠르게 시민들의 재산권도 보장해주고 문화유산도 지키는 윈윈 전략을 ..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찾은 처녀분의 실체 ㆍ가야고분 속 신라 금동관의 사연을 더듬다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무허가 판자촌. 지상의 가난한 이들의 삶터 밑엔 부유하고 강력했던 1500년전 선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지만 말머리장식 뿔잔·철덩어리·금관은 그들이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터전을 잡았던 부산 동래 복천동 구릉. 그러나 이곳은 자연구릉이 아니라 AD 2~AD 7세기 사이 500년간이나 조성된 옛 선인들의 공동묘지였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 찬 흥남 부두에~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으로 피란길에 오른 이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다. 노래가사에서 절절이 담겨있듯 부산은 전쟁의 참화를 피해 내려온 ..
'전하!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오, 군자의 불행이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맞습니다. 대통령은 헌법 79조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면권은 대통령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일까요. 아닙니다. 헌법 11조를 보면 대통령의 사면권 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조시대에도 사면권은 임금의 절대권한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역대 군주들은 사면권을 되도록이면 신중하게 처리하려 했습니다. 물론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용서해주고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역대 군주와 신하들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잘못된 사면은 임금과 백성 모두를 해치는 행위’라는 구양수의 지적과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며, 군자의 불행’이라는..
졸지에 사기꾼이 된 파스칼 블라즈 파스칼(1623~1662)하면 명상록 와, “인간은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파스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수학천재였다. 르네 데카르트(1595~1650)는 1639년 블레즈 파스칼이 불과 16살의 나이에 발표한 ‘원추곡선의 기하학’ 논문을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건 걔(파스칼)가 쓴 게 아니야. 아버지가 쓴 게 분명해.” 데카르트조차 미처 깨닫지못할 정도의 수학신동이었던 것이다. 판사 출신 세무감독관인 아버지(에티엔)는 오로지 독학으로 아들을 가르쳤다. 특히 수학은 15살 이후에나 배우라고 했다. 블레즈 파스칼은 희대의 신동이었다. 철학과 신학, 심리학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수학에 관한한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