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리 조상들은 왜 탯줄에 목숨을 걸었을까 요즘 제대혈(탯줄 속 혈액)을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15년 제대혈 보관건수가 60만건에 달했다지요. 제대혈에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 세포가 풍부하고 연골·근육·뼈·신경 등을 만들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있어서 백혈병 같은 혈액질환과 뇌성마비 및 발달장애 치료에 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대혈 보관은 신라시대부터 면면이 이어온 안태의식, 즉 태를 묻는 의식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태를 묻는 의식은 중국에는 없었던 우리 고유의 풍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왜 그렇게 태를 묻는데 정성을 쏟았던 걸까요. 태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신주 단지 모시듯 했을까요. 한가지 더. 조선조 영조 임금은 왜 도승지(비.. 치명적인 커피의 유혹 교황 클레멘트 8세(재위 1592~1605)는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를 엄금해달라”는 사제들의 아우성에 시달렸다. 견디다못한 교황은 “그럼 한번 맛이나 보자”고 커피를 마셔봤다. 교황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니. 이렇게 맛좋은 사탄의 음료를 이교도(이슬람교도)만 마시게 한단 말입니까. 여기에 세례를 베풀어 정식 기독교 음료로 만듭시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우롱합시다.” 교황마저 커피의 짜릿한 맛에 반해 아예 커피에 세례를 베푼 것이다. 여러 커피의 기원설 가운데 염소치기 소년 이야기가 재미있다. 즉 고대 아비시니아(에피오피아)의 염소치기 소년인 칼디는 어느 날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한다. 어떤 나무에서 맨질맨질한 녹색 잎과 빨간 열매를 뜯어먹은 염소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흥분한채 춤을 추고 있지 않은..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 쓴 진짜 이유 지난 1991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이북 파주시 장단에서 두동강 난 비석이 발견됐습니다. 동양의 의성 허준 선생의 무덤이었습니다. 서지학자가 10년 가까이 신분을 숨겨가며 찾아낸 것입니다. 도굴꾼에 의해 파헤쳐졌지만 두동강난 비석에는 ‘陽平○ ○聖功臣 ○浚’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었습니다. 허준 선생이 누구입니까.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독학을 의술을 공부한 분입니다. 정치색이 없었으며 오로지 임금과 백성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천생 의사였던 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허준 선생의 특등 공적은 저술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637개의 향약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서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 '영조, 당신이 범인이야'-경종 죽음의 전모(상) 드라마 '대박' 방영을 계기로 영조와 영조의 이복형 경종, 그리고 이인좌의 난 등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리바이벌합니다. 경종과 영조 시대의 갖가지 이야기들을 담아놓은 글입니다. (글이 길어 상 하로 나눴습니다.) “김일경은 자기 자신을 일컬을 때마다 ‘저(矣身)’라 하지 않고 ‘나(吾)’라 했다.” 1724년(영조 즉위년) 12월 8일이었다. 영조는 즉위하자 마자 소론의 핵심인물 김일경을 국문장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마땅히 고개를 숙여야 할 ‘죄인’ 김일경은 고개를 뻣뻣히 세우고 임금이 당도해 있는 친국장에 들어섰다. 영조가 소리쳤다. “보기싫다. 저 자의 머리를 덮어 씌우라.” 김일경은 대단했다. 피와 살이 튀는 고문에도 ‘말할 때마다 반드시 선왕(경종)의 충신’이라 했다. 더구나 자신을 일컬을 때.. 영조, "나는 게장을 올리지 않았네."-경종 죽음의 전모(하) 그 뿐이 아니었다. 더욱 구체적인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1722년 4월 20일자를 보라. 조흡이라는 인물의 진술인데, 상당히 구체적이다. (왕세자의 처조카인) 서덕수가 동궁(왕세제의 처소)의 별실에서 궁녀를 상대로 독약을 시험했는데, 그 궁녀가 죽어나갔다는 것이다. 서덕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궁녀가 죽어나간 소문을 듣지 못했는가.” '영조왕세제수책시 책례도감의궤'. 우여곡절 끝에 왕세제에 오른 연잉군과 부인인 달성군 서씨의 책봉과정을 적은 의궤이다.|서울대 규장각 소장 ■시험삼아 궁녀와 종5품 내명부 여인을 독살시키다 그러면서 서덕수가 “이 약이 신통한 효험이 있으니 다른 곳에 쓰려고 한다”면서 “그 약을 구하려면 천 여 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10여 일 후인 5월.. '낮퇴계 밤토끼' 퇴계의 부부관계론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을 대표하는 도학자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며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存天理 滅人慾) 학자라는 소리죠. 그래서 퇴계 선생을 두고 공자와 주자의 맥을 잇는 성인이라는 뜻에서 이자(李子)라 높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민간에 전승된 구비설화를 보면 퇴계는 음담패설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니 말입니다. 뭐 ‘낮퇴계, 밤토끼’니 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퇴계 선생은 심지어 “부부관계란 너무 점잖게 하면 안되는거야. 비바람 치듯 요란하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퇴계를 둘러싼 요절복통의 음담패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참으로 반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퇴계 선생에게 이런 음담패설이 집중되는 걸까요. 평소 “부부란 .. "차라리 XX를 잘라버리자"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치르는구나!” 1803년 전남 강진의 갈밭에 살던 백성이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男根)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남근을 들고 관아 문을 두드렸다. 아내가 울며불며, 하소연 했지만 소용없었다. 문지기가 가로막고선 관아의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었을까. 자해한 남성은 사흘 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러자 마을 이장이 이 핏덩이를 사흘만에 군적에 편입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백성의 소(牛)를 토색질해갔다. 그렇게 되자 아이의 아비는 자신이 남근을 잘못 놀린 탓에 아이를 낳았다고 자책하고는 자해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 고발한 ‘군정 문란’의 생생한 현장이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이 1808년부터 10.. 승리한 패배자 경순왕, 왜 임진강변에 묻혔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무덤은 경주에 없습니다. 경순왕릉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임진강변에 있습니다. 그것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경순왕은 왜 고향땅을 두고 머나먼 임진강변에 묻혔을까요.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답니다. 경순왕을 흔히 신라의 천년사직을 고려에 고스란히 바친 무능한 군주로 치부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우선 망국 후에도 43년을 더 살았고, 고려 태조 왕건보다 34년을 더 장수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의 후손들이 고려왕조를 지탱했습니다. 그래서 사가들은 경순왕을 두고 '승리한 패배자'라는 소리를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84회 주제는 '승리한 패배자 경순.. 이전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