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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굶겨죽인 태조 왕건의 숨은 뜻 얼마전 온라인 상에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거란이 보낸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이유’를 역사 문제에 어느 학생이 ‘메르스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별의별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냥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942년(태조 25년) 일어난 ‘낙타 굶겨죽인 사건’, 즉 만부교 사건은 고려 475년 역사 가운데서도 최대 미스터리로 꼽힙니다. 물론 에는 ‘고려가 거란이 보낸 사신 30명을 절도로 유배시키고, 낙타 50필을 만부교 밑에 묶어 굶겨죽인 것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상당수 연구자들은 이 대목에서 고구려·발해의 계승자로서 고토 회복을 염두에 둔 태조 왕건의 북진정책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개고기'입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성질이 흉악한 사람을 ‘개고기’라 일컬은 때가 있었다. 살아서는 한없이 충성스럽고, 죽어서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사랑받아온 개와 개고기가 왜 망나니를 뜻하는 나쁜 말로 변했을까. 어릴 적 악몽이 떠오른다. 해마다 복날이면 마을 한복판에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매질을 가해 천천히 죽였던 그 끔찍한 기억 말이다. 온 동네 개들은 비명 속에 죽어가던 ‘동족’을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보내주었다. 개가 고통을 느껴야 호르몬이 분비돼 육질이 부드러워진다나 어쩐다나. 그 잔인한 의식이 끝나고 팔팔 끓는 개고기를 땀 흘려가며 먹었던 바로 그 사람들…. 망나니 같은 그들의 잔인함에서 비롯된 말이 ‘개고기’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김준근의 '기산풍속도'. 개도살자가 복날 개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태조 왕건이 낙타를 굶겨죽인 이유 942년(태조 25년) 일어난 만부교 사건은 고려 475년 역사 가운데서도 최대 미스터리로 꼽힌다. “고려는 거란이 보낸 사신 30명을 유배시키고, 낙타 50필을 만부교 밑에 매달아 굶어죽게 했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하루아침에 멸망시켰으니 무도함이 심하다”는 이유를 꼽았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 연구자들은 고구려·발해의 계승자로서 고토 회복을 염두에 둔 태조 왕건의 북진정책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만부교(낙타교) 상상도. 태조 왕건이 거란이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굶겨 죽인 사건은 지금도 수수께끼 같은 외교분쟁으로 운위된다. 실제로 태조 왕건은 거란을 공존해서는 안될 나라로 여겼다. 태조는 이른바 ‘훈요 10조’를 남기면서 특히 거란을 겨냥한 조목을 2개나..
"여왕이여! 제발 망해라!" 이번 팟캐스트 주제는 ‘여왕이여! 제발 망해라!’입니다. 지금부터 1200년 전 신라 서울 서라벌에 진성여왕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는 길에 비방문을 던졌다고 했으니, 전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자보는 암호문처럼 알 수 없는 주문으로 일관됐는데 한마디로 “진성여왕이여! 위홍(여왕의 숙부 혹은 정부)과 같은 간신 때문에 망하리라!”는 저주문이었습니다. 신라는 대자보가 붙은 지 47년 만에 망하고 맙니다. 조선 시대 명종 때도 양재역에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여주(女主)’라 칭하면서 ‘그 여주와 여주를 따르는 간신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자보가 붙은 지 12년 만에 임꺽정이라는 도적이 출현, 3년간이나 황해도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이복형을 ..
세작인가 X맨인가 간첩질이나 스파이 노릇을 뜻하는 말 중에 ‘세작(細作)’이라는 어려운 말이 있다. 당나라 육덕명이 “첩자(諜者)의 첩은 간첩의 첩이며, 지금으로 치면 세작이다”라 풀었으니 첩자·간첩·세작은 다 같은 말이다. 세작은 절대 비겁한 전략이 아니다. ‘용간(用間)’편은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서 승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첩자를 통해 적정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법이니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략이라 할 수 있다. 4만근의 황금을 첩자들에게 풀어 초나라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갈라놓은 한나라 진평의 계책은 세작의 전범으로 꼽힌다. 세작인들은 초나라로 들어가 책사 범증이 항우를 배신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 의심에 빠진 항우가 적정도 살필 겸 사신을 보낸다. 그러자 유방이 ‘몰래카메라’..
파란만장한 창의문 옛길 어릴 적 창의문(서울 종로) 근처에서 자랐던 필자에게 지금도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이 몇 편 있다. 늘 굳게 잠겨 있던 자하문(紫霞門·창의문의 별칭)과, 수확철이면 어머니가 문밖 과수원에서 한 대야씩 사왔던 능금, 소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송충이, 그리고 끔찍한 1968년 1월21일의 밤…. 그런데 필자의 어릴 적 기억들이 창의문의 심상찮은 역사와 맞닿아 있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창의문은 소의문·광희문·혜화문과 함께 조선의 4소문으로 건립됐지만 초창기부터 출입이 통제되는 비운을 맛봤다. “창의문이 경복궁을 위에서 찍어누르는 형국이니 소나무를 심어 출입을 금해야 한다”는 풍수가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창의문은 인조반정의 현장이기도 하다. 1623년 3월13일 장단부사 이서 등이 이끄는 인조반정군은 창의문..
'사무사(思無邪)'와 아베 정권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위정편’) 유명한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발언이다. 공자는 민간에서 전승됐던 시 300여편을 모은 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칭송했다. ‘사무사’는 공자의 창작 용어가 아니다. 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경篇)’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무라야마 전 일본총리는 9일 열린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 앞서'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를 적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왜곡을 꾸짖는 것이었다.|연합뉴스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馬)을 생각함에 이에 미치는구나(思無邪 思馬斯조)”라는 대목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
정도전이 꿈꾼 세상은? 이번 주 팟캐스트는 편입니다. 지난 주엔 정도전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도전이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성계라는 군주를 택했음을 술김에 왕왕 발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도전이 꿈꿨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정도전 자신과 같은 똘똘한 재상이 다스리는 유교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군주란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군주란 바로 똘똘한 재상을 잘 뽑아서 그 재상과 더불어 정사를 논하는 존재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격한 사상이 아니었을까요. 너무 앞서간 정도전은 그만 왕권 중심의 이방원 세력에게 칼침을 맞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됐지만 조선은 그의 밑그림대로 그려졌습니다. 정도전, 그는 조선왕조의 설계자였습니다. 새왕조 개창을 향한 정도전의 정력은 저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