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3)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린이 무덤서 찾아낸 '대가야 버전' 가락국 신화... 사실일까 억측일까 지난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사적 제79호)에서 발굴된 어린아이 무덤에서 아주 희한한 유물이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학게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질 것 같네요. 어떤 유물이냐면요. 지난 3월8일 고분군 내 탐방로를 정비하거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앞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여러 기의 무덤이 확인됐는데요. 그중 5세기 무렵의 석곽묘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어린아이의 두개골편과 치아가 나왔고, 무엇보다 흙으로 만든 방울을 하나 수습했는데요. 직경이 약 5㎝ 정도되는 아주 작은 방울이어서 심드렁 하고 넘길 수 있는 그저 그런 유물이겠지 했다네요. 대가야 왕릉급 고분이 즐비한 지산동에서 뭐 이 정도의 유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고령지산동 고분군 석곽묘에서 발견된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들. ‘가락국 신화’에 묘.. "미륵사지 탑 복원, 절차가 잘못됐다고?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싶었을 뿐" ‘20년 이상 진행된 문화유산의 해체·복원이었던만큼 일반적인 공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가 부적정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21일 “1998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원방법이 자주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었고 설계를 바꾸는 등의 절차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20년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 6층인지 9층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해체된 부재만 3000개에 달해 복원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됐고, 최근에는 가설덧집까지 완전히 해체됐다. 오는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문화재청 제공그러나 문화재청은 “제대로 해체·복원하기가 까다로워 20년 장기 계획을 세운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달리 봐.. 향산광랑과 犬の子(이누노코)…춘원 이광수와 ○석두의 창씨개명 “내 이름은 현전우일(玄田牛一·구로다 규이치)이다.” 지난 2002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협객이라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뤘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케이블 TV에서 단골로 방영된다.최근 새삼스레 다시 그 드라마를 보게 된 필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불세출의 만담가인 신불출(1905~?·김종국 분)의 ‘현전우일’ 대사에 ‘꽂혔다’. 신불출이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에 따라 창씨(현전)와 개명(우일)을 동시에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현전우일’이 일본어인 ‘畜生(축생)’의 파자(破字)라는 대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畜’은 ‘玄+田’이요, ‘生’은 ‘牛+一’이 아닌가. ‘畜生’을 파자하면 ‘현전우일’이 되는 것이다. ‘축생’은 일.. '황희 맹사성 투톱'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은 세종의 용병술 “맹사성의 사람됨이 종용하고 간편하다. 선비를 예절로 예우하는 것은 천성에서 우러나왔다. 벼슬하는 선비로서 비록 계급이 얕은 자라도 뵙기를 청하면 반드시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 맞아들였다. 이어 손님을 상좌에 앉히고, 물러갈 때에도 역시 몸을 구부리고 손을 모으고서 가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손님이 말에 올라앉은 후에라야 돌아서 문으로 들어갔다.”( 1438년 10월4일) ■‘배려심 갑 예절 남’ 재상님 청백리의 대명사이자 재상의 롤모델로 통하는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죽은 뒤 의 사관이 남긴 졸기(부음기사)이다. 교지연구가 김문웅씨가 공개한 ‘맹사성 왕지’. 1427년(세종 9년) 맹사성을 우의정에 임명한다는 임명장이다. 맹사성 이름 옆에 찍힌 확인점이 뚜렷하다. 맹사성은 이후 8.. '안사람의병단' 이끈 여성독립투사 윤희순의 의병가, 문화재 된다 “아무리 외놈(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외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구한말 시아버지(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의병장 윤희순 선생(1860~1935)이 지은 의병가 ‘안사람 의병가’ 가사의 일부이다.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이 짓고 윤희순 선생이 필사해서 보급했다는 ‘안사람 의병가 노래’도 남아 있다. “…내집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거니 의복버선 손질하여 만져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안윽하게 만져주세…”라는 가사다. 윤희순의 중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주제의 격문. ‘조선의 안사람들도 의병.. '광대 얼굴의 보물 부처님, 어찌 복원 하오리까 ‘광대 불상’.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에 있는 석불사 법당엔 아주 희한하게 생긴 불상이 턱하니 자리잡고 있다. 신성한 법당 안에 모셨으니 꼬집어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전혀 불상 답지않은 얼굴생김새를 갖고 있다. 까놓고 말하면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한 불상 같은 첫느낌이다. 인자하거나 아니면 엄숙한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전 이 절의 주지스님 얼굴을 새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시대 최대의 3차원 환조석불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목이 달아났고 누군가가 새로운 불두를 얹어놓았다. 하지만 인자하거나 엄숙한 부처상도 아니고 '백제의 미소'를 구현하지도 않은 ‘광대 형상’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 "쌍둥이 불상이었다", CT촬영으로 100년만에 물증 잡은 '오쿠라' 유물의 반출범죄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 실업가 중에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1837~1928)라는 인물이 있다. 1873년 일본에서 다이세이(大成)라는 회사를 차린 오쿠라는 청일전쟁 때 무기와 군수물자를 팔아 거부가 된 인물이다. 그래서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오쿠라는 구한말 부산으로 진출하여 고리대금업과 무역업을 겸하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건칠보살좌상’. 1915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에게 사들인 유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과 짝을 이룬 보살좌상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그런 오쿠라는 구한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백주대낮까지도 인부들을 끌고 다니며 조선의 고분을 도굴해서 1000여 점이 넘는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쿠라가.. 독일은 왜 불법반출 문화재를 돌려줄까 ‘아니 뭐 이런 유물 가지고….’ 오는 3월19일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이하 로텐바움 박물관·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재 반환식’ 소식을 접하면 우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텐바움 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까지 나서 반환결정을 내린 유물이 ‘고작’ 조선시대 문인석 1쌍(2기)이기 때문이다.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이 소장중인 조선시대 문인석. 1983년 독일인이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서 구입한 뒤 불법반출한 것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문인석은 고려·조선시기 능묘 앞에 세우던 문관 모습의 석인상이다. 유몽인(1559~1623)의 은 “조상의 묘 앞에 석인상을 세우는 이유는 공양.. 이전 1 ··· 57 58 59 60 61 62 63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