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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꽃과 청와대 미남석불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금강국수나무, 미선나무, 새양버들…. 1922년 식민지 조선에서 자라는 식물을 샅샅이 조사해서 펴낸 일본어 식물서적 부록에 등장하는 식물 5종의 이름이다. 그런데 뒤의 세 가지 식물은 뭔가 한반도 고유종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앞의 두 식물 즉 사내초와 화방초는 어쩐지 좀 수상하다. ■조선의 꽃으로 거듭난 조선총독 데라우치 ‘화방초’는 지금은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한국 고유종이다. 전 세계에 2종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 자생한다. 8~9월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데, 청사초롱 모양으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다면 ‘화방초’ 이름은 또 무엇인가. 이 꽃의 학명인 ‘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에서 ..
'모범납세자' 예수와 로마 교황 가이사 이탈리아 피렌체 브랑카치 예배당에 마사치오(1401~1428)의 ‘성전세(聖殿稅)’ 벽화가 있다. ‘세금내는 예수’(마태복음 17장)를 그린 작품이다. 성전세는 성전을 관리하는 자들이 받는 일종의 인두세였다. 물론 세속의 왕과 왕자들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예수 일행을 시험하려고 “너희 선생은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고 도발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성전의 주인인 예수더러 세금을 내라 하다니…. 예수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려고 시비를 건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브랑카치 예배당에 있는 마사치오의 ‘성전세’ 벽화. 세금을 내는 예수님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반응은 뜻밖에도 ‘쿨’했다. “베드로야. 바다에 낚시를 던져 먼저 잡힌 고기의 입을 열면..
신라 연습생 키운 연예기획자 '우륵' “금의 길이 석자 여섯 치 여섯 푼은 366일을 상징하는 것이고, 너비 여섯 치는 천지와 사방을 뜻하며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난 것은 하늘과 땅을 본받은 것이다.” ‘잡지 악(樂)’편에서 현금(玄琴·거문고)을 설명한 내용이다. 옛 사람들은 악기 하나, 노래 하나에도 심원한 뜻을 새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야금도 마찬가지다.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떠 만들었는데, 열두 줄은 1년 12달을 의미하며, 기둥의 높이 3촌은 삼재(三才), 즉 천(天)·지(地)·인(人)을 뜻하는 것이다.” 악기 하나에 1년 12달을 새겨넣었고,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낸 것이다. ■신라 연습생과 연예기획자 우륵 대가야의 유명한 음악가 중에 우륵이 있었다. 우륵은 가실왕의 명에 따..
'검은개 증후군'과 청와대 퍼스트도그 [여적] ‘검은개 증후군’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1874~1965)은 평생 우울증과 싸웠다. 1965년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도 “정말 지루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 처칠이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표현한 말이 있다. “평생 나를 따라다닌 검은개(블랙독)가 있다.” 1911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도 “내 블랙독(우울증)이 다시 날 찾아오면…”이라고 했다. 인류가 ‘검은개’를 터부시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검은개와 그 새끼들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화를 소개했다. 켈트족 속담에도 “검은 개나 검은 안개가 나타나면 겁에 질린다”고 했다. 개를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여긴 이슬람에서 검은개는 반드시 죽여야 할 악마로 간주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6일 청와대 관..
유전자 가위, 선한 가위일까 악한 가위일끼 2004년 10월 30살에 불과한 브라질 축구선수 세르지뉴가 경기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부검 결과 심장이 정상인의 2배 이상 컸고, 심장벽도 매우 두꺼웠다. 시쳇말로 ‘강심장’이란 얘기인데 왜 사망에 이르렀을까. 심장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 피가 뿜어져 나가는 출구가 좁아진다. 심장은 그 좁은 구멍으로 혈액을 보내려 더 강하게 수축하게 되고 호흡곤란과 흉통으로 이어지며 심할 경우 돌연사하고 만다. 비후성심근증이다. 놀랍게도 이 병은 인구 500명당 1명 꼴로 일어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11번째 염색체에 존재하는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천성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사슬을 싹둑 잘라버린다면 어떨까.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팀이 그걸 해냈다...
겸재 정선 답지 않은 졸작, 왜 그렸을까 “겸재는…조선중화사상이 팽배하던 시기에 태어나 조선성리학을 전공한 사대부로…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요 대성자였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연구자인 최완수는 “민족적 자부심과 자존심을 잃지 않게 한 겸재야말로 마땅히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 꼽았다. 왜 이런 평을 내렸을까. 정선이 활약하던 시기, 조선은 한낱 오랑캐로 치부하던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통 주자학을 신봉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중국 문명의 전통이 조선에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조선중화주의라는 것이다. 겸재야말로 중국풍을 답습하던 전대 화가들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금강산과 한양 등 조선의 강산을 직접 답사한 뒤 사실적으로 표현함으..
'군함도', 영화가 실화를 능가할 수 없는 이유 일본 나가사키에서 남서로 20여㎞ 떨어진 곳에 섬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인도가 있었다. 하시마(端島)였다. 1810년 무렵 부근의 어민이 이 섬의 표면에 노출된 석탄층을 발견했다. 이후 어민들은 석탄캐기를 부업으로 삼았다. 그러다 1869년 나가사키의 업자가 채탄사업을 시작했지만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그후에도 계속해서 3개 회사가 1~3년 정도 탄광을 운용하다가 큰 태풍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1886년 처음으로 36m에 달하는 지하수직갱도를 파고 채굴을 시작했다. 그러다 1890년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가 소유자인 나베시마 손타로(鍋島孫太郞)에게 10만엔을 주고 탄광을 구입한다. 탄광은 곧 ‘노다지’가 되어 일본 제국주의 근대화의 축을 담당하게 된다. 미쓰비시는 6차례에 걸쳐 매립공사로 섬을 ..
"개 혀?" 다산 정약용의 개고기 사랑법 “개 혀?” 충청도 사투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보신탕(개고기) 먹을 줄 아느냐”는 질문이다. ‘개 혀?’의 복수형도 있단다. ‘개들 혀?’란다. 충북 사람들이 딴죽을 건다. ‘개 혀?’는 엄밀히 말해 충청남도 사투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북에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나온다. “개 햐?” 사실 개고기는 동양만의 식습관은 아니었다. 1926년 1월 8일 동아일보를 보면 흥미롭다. “조선에서는 위생상 해롭다고 떠드는데 독일 작센 지방에서는 매년 평균 5만두의 개가 식용으로 팔리고, 개고기 전매업자까지 있다”는 해외토픽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차츰 ‘개고기는 동양의 야만스런 식습관’이라는 이미지로만 굳어져 갔다. 중국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독일의 빌헬름 2세에게서 사냥개를 선물받은 뒤 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