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81)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려 조선의 '덕후', 그 기묘한 '덕질' 요즘 ‘덕후’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우리 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라는데요. 원래는 집이나 댁의 높임말인데 그 뜻이 바뀌어 집안에 틀어박혀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사람을 지칭했답니다. 요즘엔 특정 분야에 몰두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덕후’들은 왕조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괴상한 취미라는 의미에서 ‘벽(癖)’이라 했습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땅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을 ‘전벽(田癖)’ ‘지벽(地癖)’이라 했고, 남을 고소 고발하는 게 취미인 자를 ‘소벽(疏癖)’ 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하면 ‘전벽(傳癖)’ 혹은 ‘서음(書淫)’ 이라 했으며, 술과 시에 탐익하는 사람을 ‘주벽’ ‘시마(詩魔)’라 했습니다. 물론.. 천년수가 담긴 요술 황금 사리병의 정체 왕흥사 출토 사리기 명문을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을 볼 수 있다. 즉, 백제왕 창이 죽은 아들을 위해 절을 짓고, 원래 사리 2매를 봉안했는데, 나중에 신의 조화(신령스럽게)로 3매로 변했다.(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는 내용이다. 그런데 괴상한 것은 그렇다면 금제 사리병 안에 존재했어야 할 사리는 2매나 3매는커녕 단 1매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금제사리병엔 1400년된 물이 담겨있었고, 사리 또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리병 안에는 맑은 액체가 가득 들어차 있었을 뿐. 금제사리병을 품에 안고 있는 은제사리병과 사리함에서도 한 알의 사리도 확인되지 않았다. 어찌된 것일까. 그렇다면 명문은 거짓이란 말인가.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누가 사리를 꺼냈을까? 하지만 조사단에 따르면 사리함.. 백제 창왕은 왜 왕흥사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을까 2007년 10월10일, 부여 왕흥사 목탑지를 조사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은 숨이 멎는듯 했다. 이미 노출된 목탑지 초석의 남쪽 중앙 끝단에서 다른 석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단면 사다리꼴의 화강암제 뚜껑이었다. 석재는 사리구멍을 조성한 뒤 이를 막아낸 뚜껑역할을 한 것이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뚜껑(25센티미터×15센티미터×7센티미터) 표면앤 붉은 주사(朱砂)로 칠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주칠은 익산 왕궁리 오층탑에서 발견된 사리외함이나 남원 출토 사리기에서도 보이는 것이었다. 주칠을 한 이유는 벽사, 즉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왕흥사 목탑지에서 수습된 명문 사리장엄구. ■'백-제-창-왕!' 조사단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뚜껑을 열었다. 내부구멍(20센티미터×10센.. 걸그룹의 비조는 '저고리시스터즈'였다 흔히 걸그룹의 원조라면 1997년 결성한 베이비복스나 SES 등을 꼽는다. 하지만 그보다 60여년 전에 활약한 걸그룹의 비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저고리 시스터즈’다. 비조(鼻祖)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이나 사물의 시초를 일컫는다. 동양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는 코부터 그 형태를 갖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코 비(鼻), 조상 조(祖)를 써서 비조라 한다. 그런 의미라면 걸그룹의 비조는 저고리시스터즈라는 이야기다. 저고리시스터즈를 만든 이는 당시 OK레코드사를 설립한 이철(1904~1944)이란 인물이다. 악극단에서 김정구(왼쪽에서 세번째)와 함께 노래 부르는 걸그룹의 비조 ‘저고리시스터즈’. 왼쪽부터 이준희, 김능자, 이난영, 장세정, 박향림, 서봉희. |동아일보.. 백제인이 백주대로에 '남근'을 세운 까닭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 백제 구구단 목간의 수수께끼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 충청인의 여유 물씬 풍기는 백제 가요 목간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 천마총이냐 기린총이냐…물러설 수 없는 논쟁 경주에 가보면 엄청난 규모의 무덤이 한복판에 늘어서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반에 공개된 무덤이 바로 천마총입니다. 원래는 황남동 155호 고분이었다가 1973년 발굴 이후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무덤에서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금관이 발굴됐습니다. 그렇다면 국보 중의 국보인 금관과 관련된 이름이 붙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바로 상상의 동물인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가 3벌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1벌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림 속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하늘로 훌쩍 날 것 같은 생생한 천마그림이었습니다. 1500년전 신라인들의 빼어난 회화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 천마총의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당연히 국.. 이전 1 ··· 93 94 95 96 97 98 99 ··· 17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