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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불행, 풍수 탓인가 사람 탓인가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임기말에 대통령의 무능함과 무기력이 밝혀지고 시민들은 절망의 한숨을 쉽니다. 뭔가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까요. 이럴 때면 나오는 푸념이 있습니다. 청와대 풍수가 좋지않은 건가. 풍수탓인가.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말 풍수탓인지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사실 청와대터는 고려때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평가된 것 같습니다. 고려의 삼경(三京)인 남경의 궁궐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청와대터에 궁궐을 지어 1년에 4개월씩 머물면 36국이 조회하는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 했습니다. 정말 1990년 청와대 경내 북악산 기슭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요. 조선시대들어 청와대 터는 충성맹세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충성을 ..
박근혜 '올림머리'가 준 절망의 메시지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영국총리 시절 평생 정치적 무기로 활용한 제품이 있었다. 아스프레이 검정색 사각핸드백이었다. 대처가 핸드백을 회의실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장관들은 심장이 멎는듯 긴장했다고 한다. 대처의 핸드백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뜻의 신조어 ‘핸드배깅(handbagging)’을 탄생시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은 ‘재키룩’이라는 패션장르를 만들 정도로 여성정치인들의 롤모델이 됐다. 그러나 패션을 정치로 활용한 것은 미셸 오바마가 한 수 위다. 귀족의 이미지인 재클린에 비해 미셸은 35달러짜리 원피스를 입고 ‘투데이쇼’에 출연하는 등 실용성을 강조했다. 미셸이 패션업계에 끼친 효과는 연간 27억 달러(3조원)에 이른다. 2011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정상만찬에 ..
난 왕씨의 혼이 될테다. 너희는 이씨의 세상에서 살아라 “산소가 도굴됐는데 그 안을 보니까 무슨 선녀그림이 있었다는 거야. 한 6~7명이 봤다지.” 1980년대 후반 동아대 박물관 자료과장 박문국은 재실관리인에게 희한한 말을 들었다. 박문국은 그 유명한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분인 송은(松隱) 박익 선생(1332~1398년)의 후손. 두문동 72현은 새로 개국한 조선에 충성하지 않은 절의신(節義臣)의 상징이다. 송은 선생의 묘는 경남 밀양시 청도면 화악산 중턱(해발 505m)에 있었는데 1987년 도굴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도굴 구덩이를 발견하고 무덤 안을 내려다본 경찰관 등 몇 명이 무슨 선녀그림 같은 것을 어렴풋 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덤 전면에 파헤친 도굴 갱을 서둘러 메웠기에 박문국으로서도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려웠다. 경남..
박근핵닷컴과 닭그네닷컴 2011년 청와대가 ‘쥐박이.com’ 등 ‘안티 이명박’ 도메인들을 싹쓸이 선점한 것이 드러났다. 도메인을 통한 비판과 풍자의 목소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자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더했다. 취임한 지 불과 2주 후인 2013년 3월11일부터 한 일이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모든 도메인을 사재기한 것이었다. antiparkgeunhye, antibakgeunhye, antigeunhyepark, antiparkgh 등 수십개의 영문 도메인을 등록했다. 대통령을 비판할 여지가 있는 도메인이라면 철자 하나하나까지 싹쓸이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2014년 5월부터는 한글 도메인에 눈길을 돌렸다. ‘닭그네.com’ ‘닭그네.net’ 등이..
'빨간 마후라' 해인사 폭격을 거부하다 이런 말 들어봤는지요. 해인사와 해인사 안에 있는 고려대장경판이 한국전쟁 때 잿더미로 사라질 뻔했다가 겨우 모면했다는 소리 말입니다. 어렴풋 접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공군 조종사를 우리가 ‘빨간마후라’로 일컫고 있는데, 그 유래가 어떠했는지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두가지 사례를 공부하면서 역사를 제대로 쓰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 잘못 알려진 것을 올바로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해인사와 고려대장경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해인사와 고려대장경을 지킨 주인공임을 자처하는 일대기가 등장하고, 정부기관인 문화재청은 그 일대기를 아무런 거름장치없이 받아들여 곧이곧대로 기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진실과 다르다는 것이 한국전쟁에 ..
우르남무 법전인가 함무라비 법전인가 기원전 175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이 공포한 법전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유명하다. 단적인 예로 부모를 구타한 아들의 손목도 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똑같은 행동으로 보복을 허용하는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이다. 1901년 프랑스 탐험대가 페르시아의 고도 수사에서 발견한 이 법전은 현전하는 인류 최초의 성문법으로 뭇사람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혔다. 하지만 1952년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가량 앞선 법전이 이스탄불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확인됐다.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에 소장된 우르남무 법전.|위키피디아에서 당시 박물관측은 고대도시 니푸르(이라크 남동부)에서 발견된 두 조각의 점토판을 접합시키는 작업을 마쳤다. 그 소식을 들은 저명한 수메르 학자인 사무엘 크레이머..
해상왕 장보고의 야망과 좌절이 깃든 청해진 본영 “아아, 원한으로 질투하지 않고 나라의 우환을 걱정한 이는 진(晋)의 기해가 있고, 당에는 곽분양과 장보고가 있었으니 누가 동이(東夷)에 사람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는 두목(杜牧·803~852년)이 지은 ‘번천문집(樊川文集)’의 ‘장보고·정년전’을 전재한 송기(宋祁)의 역사서 ‘신당서(新唐書)’에 적힌 내용이다. 이 평가는 장보고와 쌍벽을 이룬 정년(鄭年)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청해진 본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도. ◇나라를 위해선 원수의 손도 잡는다 장보고와 정년은 서로 힘을 자랑했던 라이벌이었다. 정년과 견줘 나이는 10년 많았으나 힘에서는 다소 밀렸던 장보고는 ‘나이’로 누르려 했고, 정년은 ‘기예’로 대들며 앙앙불락했다. 둘은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武寧軍 小將)이 됐는데 대적할 자가 ..
851년 봄 장보고 세력의 슬픈 강제이주 1996년, 발굴단은 장도의 성 내부 무너진 석축 안쪽에서 둥그런 구덩이 유구를 발견했다. 당시 발굴단 학예사 김성배의 회고. “석축이 무너져 내린 부분이 있었어요. 무슨 건물지가 있는 줄 알고 조사했는데 건물임을 입증하는 초석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너진 석축내부를 정리하다보니 둥그런 윤곽이 보였어요. 잘 들어내니까 철로 만든 유물의 끝이 보였어요.” 김성배의 말이 이어진다. 청해진 주민들은 장보고를 잃은 뒤 서둘러 제사용기 및 생활용품을 묻고 강제이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구에서 세발 달린 정(鼎·철솥)과 함께 사각형 철제 소반, 편병, 청동병, 저장용 토기 등 범상치 않은 유물들이 나왔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세발솥은 알려진 대로 고대 제사용으로 쓰인 대표유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