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자 思來者 (156) 썸네일형 리스트형 반달곰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허한다" 1983년 5월 설악산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반달가슴곰이 2주 이상 고통을 호소하다가 끝내 숨졌다. 밀렵꾼들이 10여일 이상 총을 맞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곰의 동태를 살피면서 밀매꾼들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곰의 쓸개, 즉 웅담을 키우려고 사경을 해매는 곰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뉴스는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이 죽은 곰의 웅담(180g)을 4600만원에 공매처분했다는 것이다. 창경궁에서 실시된 공매의 낙찰자 인터뷰 기사까지 자랑스레 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문화재관리국이 천연기념물(제329호)의 내장(웅담)을 대놓고 팔았다는, 지금 같으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뉴스가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75년 9월에는 꿀바른 고기에 폭약을 넣어 반달가슴곰이 지.. 축구는 왜 ‘안녕! 단일팀’을 선언했는가 남북한 축구 대결사에서 명장면 하나가 있다. 1978년 12월20일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공동우승을 차지한 남북한 주장인 김호곤과 김종민 선수가 1위 시상대에서 어깨동무한 사건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으르렁댔지만 시상대에서는 한민족임을 과시한 가슴뭉클한 장면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그 장면은 ‘연출’이었다. 비좁은 1위 시상대 위에 오르려고 남북 선수들이 서로 밀치는 촌극을 빚었고, 급기야 김호곤 주장이 시상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겨우 자리를 다잡은 김호곤 선수가 “남의 눈도 있으니 잘해보자”고 속삭이고, 이를 김광민 선수가 받아들이면서 ‘어깨동무 사진’(사진)을 연출할 수 있었다. 이는 남북한 축구가 벌인 치열한 신경전의 단편에 불과하다. 1960년대엔 북한이 한국을 압도했다. 예컨대 북한이 196.. 남북 정상의 군사분계선 '금 밟기 놀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은 엄밀히 따지면 군사분계점(휴전점)이라 해야 한다. 선이 아니라 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공산군측은 54년 9월까지 임진강변의 제0001호 말뚝(표지판)에서 동해안의 제1292호 말뚝까지를 지도상으로 이은 선을 군사분계선이라 했다. 그중 696개는 유엔군이, 596개는 북한군이 관리한다. 간격도 200~500m 사이로 들쭉날쭉했다. 흔히 155마일(248㎞)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디지털맵으로는 148마일(238~239㎞)로 계산된다. 어찌됐든 이 ‘지도상의 선’을 기준으로 남북 2㎞씩 만들어놓은 완충지대가 바로 비무장지대다. 그런데 휴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즉 임진강변 이하~강화도와 황해도 .. '소박데기' 보물의 명예회복 1933년 4월8일 경주 노서리 215번지에서 밭을 갈던 주민 김덕언씨가 금귀고리·금반지 각 1점과 금구슬 33알을 발견했다. 김씨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추가발굴에서 나머지 금귀고리 1점과 금팔찌 1쌍 등과 금구슬 44알, 비취색 굽은 옥 1점 등을 더 찾아냈다. 금구슬 77알과 비취옥을 이으니 완벽한 목걸이가 됐다. 여기에 합체된 금귀고리 한 쌍까지…. 무덤 주인공이 차고 있던 장신구 세트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물의 운명은 얄궂었다. 김씨 수습품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아리미쓰 발굴품은 도쿄제실박물관(현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나뉘어 이산가족처럼 보관됐다. 그러다 1965년 한·일 협정 체결로 일본에 있던 유물 반쪽이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다. 문화재관리국은 1.. '못난이 아닌 개성파 국보' 인증받은 은진미륵 ‘은진미륵’으로 알려진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못생긴 불상’으로 폄훼됐다. 일본의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균형미가 없고, 머리가 지나치게 크며 면상 또한 평범하다”고 혹평했다. 고고미술사학자인 고 김원룡 박사도 “전신의 반쯤 되는 거대한 얼굴은 삼각형이어서 턱이 넓고… 일자로 다문 입, 넓적한 코와 함께 가장 미련한 타입”이라 했다. 김원룡 박사는 특히 “은진미륵이야말로 신라의 전통을 완전히 잃어버린 최악의 졸작”이라고 ‘디스’했다. 1000년 이상 그 자리에 그냥 서있는 죄밖에 없는 은진미륵으로서는 어이없이 당해온 ‘의문의 1패’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삼등신’이니 ‘미련한 대두’니, ‘최악의 졸작’이니 하고 손가락질하다 못해 각종 언론 지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술논문에까.. 안경 아나운서의 용기 “다시 이렇게 밝고 통쾌한 물건을 낳아 사람들이 이용하니 노인 눈이 아니요 젊은이의 눈이로다. 털끝만큼 작은 것도 볼 수 있으니 누가 이러한 이치를 알아내었나. 바로 구라파의 사람이도다. 저 구라파의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인을 행하였도다.”() 실학자 이익(1681∼1763)의 안경예찬론이다. 임진왜란 전후 조선에 들어온 안경은 이런저런 이유로 눈이 침침해진 독서인의 ‘잇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안경예절이 생겼다. 이규경(1788~?)은 “아무리 눈이 나빠도 존귀한 사람이나 연장자 앞에서는 안경을 써서는 안된다”면서 “안경 너머로 높은 분이나 연장자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건방지기 때문”이라 소개했다.() 심지어는 지존인 임금(정조)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안경을 꺼려 했다. “내 시.. 잘못된 임시정부 수립일…어디서부터 문제였나 4월 13일자 달력을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1990년부터 시작된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위해 제정한 날짜였다. 왜 4월13일이었을까. 상하이(上海) 주재 일본 총영사국 경찰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후 임시정부 사무실을 급습·압수한 문건을 토대로 작성한 ‘조선민족운동연감’을 근거로 했다. 1938년 4월30일자 한국국민당 기관지인 18호기사. ‘1919년 4월11일 임시로 10개조의 헌장을 제정 발포하고 임시정부를 조직했는데, 금년 4월11일이 임시정부를 성립한지 제19회째 되는 기념일이므로 임시정부에서는 그 날에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내용이다.|출처: 한시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바로 잡아야 ’, 제44집, 2008.. 공시생이 읽어야 할 '지×같은' 필독서? “대학 교수도 풀 수 없는 지×같은 문제를 출제하다니….” 온라인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씨가 비속어를 섞어가며 지난달 24일의 서울시 지방공무원 7급 필기시험 한국사 문제를 비판한 동영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려 후기의 역사서를 시간 순으로 옳게 배열한 것’을 찾는 7번 문항의 보기는 ‘ㄱ)민지의 본조편년강목, ㄴ)이제현의 사략, ㄷ)원부·허공의 고금록, ㄹ)이승휴의 제왕운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틈틈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필자에게도 ‘멘붕’의 문제였다. (1317년)과 (1357년)도 그렇지만 불과 3년 차이인 (1284년)과 (1287년)를 구별해내라니…. 무엇보다 이라는 역사책이 생소해서 를 검색해보았다. 모두 3종류의 이 검색됐다. 먼저 “(고려 전기 문종대의) 박인량(?~10.. 이전 1 ··· 15 16 17 18 19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