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래자 思來者

(159)
살아남은 ‘피의 군주’ 세조의 얼굴…다른 임금의 초상화는? 조카와 친동생(안평대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재위 1455~1468)의 얼굴은 어땠을까.국립고궁박물관은 22일부터 내년 1월13일까지 지하층 궁중서화실에서 ‘세조’ 테마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박물관 측이 2016년에 구입한 ‘세조 어진 초본’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세조의 생애, 정치·문화적 업적과 관련된 유물 3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세조의 어진, 일제감점기 화가 김은호가 1735년 그린 세조 어진 모사본을 토대로 다시 옮겨 그린 초본이다.|국립고궁박물관 ■세조의 초상화 맞나이번 전시의 핵심유물인 ‘세조 어진 초본’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이왕직(李王職)의 의뢰로 화가 김은호(1892~1979)가 1735년의 세조 어진 모사본을 다시 옮겨 그린 초본이다. 표암 강세..
‘데라우치에 상납된’ 청와대 미남석불의 사연…출생지가 밝혀졌다 이른바 청와대 미남석불의 원위치가 경주시 이거사터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1930년대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1916년 출판한 에 “이거사에 있던 불상을 총독관저로 옮겼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도지리 이거사터=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지난 다이쇼 2년(1913년)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광배(후광)가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이 자료는 2011년 작고한 이근직 경주대 교수가 일본 덴리대(天理大)에 소장된 책을 복사해서 보관했던 것이다. 이 내용을 고 이근직 교수의 부인인 주진옥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관리팀장이 16일 공개했다. 모로가는 총독부 촉탁이던 19..
인간 욕망의 상징, '엘 도라도'는 분명 존재했다 ‘엘 도라도(El Dorado)’는 요즘에 와서는 ‘황금의 나라’ 혹은 ‘이상향’, ‘낙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는 ‘황금빛이 나는 사람(족장)’을 일컬었으며, 후에 그 족장이 사는 지역 혹은 황금이 넘치는 도시로 각색됐다. 이 ‘엘 도라도’의 원뜻인 ‘황금빛이 나는 족장’은 과연 누구일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28일까지 콜롬비아 황금박물관과 함께 열고 있는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특별전은 바로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우고, 황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별전은 16세기 이후 ‘엘 도라도’로 알려진 콜롬비아의 황금박물관이 소장한 황금유물 322점을 소개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엘 도라도’를 찾아 아마존과 안데스산맥을 넘었던 정복자들..
보물 제2000호가 된 김홍도의 작품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이 지정되기 시작한 이래 56년만에 보물 제2000호가 탄생했다. 문화재청이 4일 보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 4건의 등재번호는 제1998~2001호이다.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보물 제1998호와 제1999호이고,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는 보물 제2000호, ‘자치통감 권129~132’는 보물 제2001호가 됐다. 보물 제2000호로 지정된 김홍도의 ‘삼공불환도’. 4m가 넘는 김홍도의 말년 대작이다. 순조 임금의 천연두 쾌차를 기념해서 ‘유후 한공’의 의뢰를 받은 김홍도가 그린 병풍 4점 중 하나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이중 보물 제2000호의 ‘행운’을 누린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신라의 미소’, 되찾은지 46년만에 보물된 사연 1930년대 초 경주 야마구치(山口) 의원에서 공중의로 일하고 있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1908~1993)가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경북 경주 사정동 영묘사 터(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독특한 와당인 수막새 한 점이 발견됐고, 일본인 골동품상인 구리하라(栗原)에게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기왓골 끝에 얹는 수막새의 무늬는 대개가 연꽃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수막새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당시 26살의 청년의사 다나카는 구리하라 가게로 달려가 주저 없이 1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신라의 미소’로 일컬어진 경주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 7세기 작품이다. 여인의 웃는 얼굴을 조각한 독특한 와당이다. |국립경주박뭀관 소장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과 학술지인..
제자(왕건)와 스승(희랑)의 만남, 남북한 공동의 ‘금속활자…대고려전에 어떤 북한유물 오나 제자(왕건)와 스승(희랑)의 만남, 남북한 공동의 ‘금속활자…대고려전에 어떤 북한유물 오나 “고려 태조 왕건상과 스승 희랑대사상의 만남, 남북한 공동으로 발굴한 금속활자 ‘단(전·전)’자의 전시…. 이것이 이뤄진다면 12월 19일 열릴 대고려전의 고갱이가 되겠지요.”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이룬 고려의 건국 1100년을 맞아 박물관이 준비중인 ‘대고려-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 ‘왕건상과 금속활자 단’의 출품을 학수고대했다. 그 바람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2016년 4차핵실험,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으로 남북한 공동발굴 사업이 무산된 이후 북한이 단독으로 개성 만월대에서 찾아낸 금속활자 4점. 물이름 ‘칙’, 지게미 ‘조’, 이름 ‘명’, 밝을 ‘명’ 자로 해석됐다. 국립중앙박..
피부 조직까지 붙은 머리띠 두른 인골의 정체 몽골 북서쪽 알타이 산악 지역 고분에서 아직까지도 피부조직이 남아있는 1700~2000년전 인골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15일부터 7월24일까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고고학연구소와 몽골 시베트 하이르한(해발 2500m) 유적 파지릭 고분을 공동발굴한 결과 선비시기 무덤 4기 중 1기에서 신장 165~170cm 가량으로 반듯이 누운 미라가 의복과 함께 발견됐다고 밝혔다. 파지릭 고분에서 확인된 선비 시기(기원후 1~3세기) 인골. 머리에 띠를 두른 모습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미라는 몸통과 얼굴 피부조직 일부가 남아있었으며, 머리는 끈을 두르고 있었다. 연대측정 결과 미라는 기원후 1세기로 확인되었다. 상의가 그대로 남아있는 의복은 앞섶이 교차한 형태의 긴소매이다. 짧은 상의 형태로 보..
'무덤의 주인공'을 덧붙인 조선왕릉 조선왕릉 중에 정릉과 온릉·희릉·태릉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의 제11대 임금인 중종(재위 1506∼1544)의 무덤이 정릉(靖陵)이고, 온릉·희릉·태릉은 중종의 세 부인인 단경왕후(온릉)와 장경왕후(희릉), 문정왕후(태릉)의 무덤이다. 중종이 세 부인 중 어느 한 분과도 합장되지 않은 사연이 있다. 중종 반정에 반대하던 아버지(신수근)이 피살되어 중종 즉위후 단 8일만에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와는 무덤을 같이 쓸 수 없었다. 중종의 무덤은 2번째 부인인 장경왕후의 무덤(서삼릉 희릉)에 조성됐다. 그러나 정권을 틀어쥔 제3부인 문정왕후는 남편을 독차지하려고 중종릉을 강남의 봉은사 곁(정릉)으로 옮겼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능으로 낙점된 곳이 낮은 침수지대였던 탓에 정작 자신은 남편 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