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래자 思來者

(170)
훈민정음 해례본, 1조원은커녕 단돈 1원도 받을 수 없다 ‘재산 1조4800만원.’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을 갖고 있다는 배익기씨(55)가 2017년 4월12일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재산 1조원’을 신고하려 했다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지를 받았다. “재산의 실물소유를 확인할 수 없다”는 선관위의 이의제기 때문이었다. 결국 배씨는 부동산과 예금을 비롯한 4800만원을 공식 신고했다.그러나 배씨가 실체를 보여준다며 언론에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의 사진은 불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상주본 일부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다시 훈민정음 상주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의 한글창제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1940년까지 이 해례본을 발견하지 못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
'조선의 여주인' 문정왕후의 아들 사랑이 담긴 불화, 보물된다 ‘조선의 여걸’로 통한 문정왕후가 발원한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가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문화재청은 24일 16세기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를 비롯해 조선 시대 불교 조각과 고려·조선 시대의 불교경전 등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보물로 지정예고된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정왕후가 아들인 명종의 건강을 위해 제작한 불화이다.|문화재청 제공‘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1565년(명종 20년) 중종 계비 문정왕후(1501~1565)가 아들인 명종의 만수무강과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제작한 400점의 불화 중 하나이다. 경기 양주 회암사의 중창에 맞춰 조성된 것이다.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은 승려 보우의 화기(畵記)에는 “당시 석가·약사·미륵·아미타불의 부처 및보살을 소재로 금니화..
'바리바리 짐싼다'는 말은 6세기 신라시대부터 시작됐다 ‘바리’는 곡식 한바리 처럼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잔뜩 실은 짐을 세는 말이다. 최근 이 ‘바리’라는 단어가 1500년전부터 신라에서 짐을 세는 단위였던 ‘발(發)’이 나중에 발달한 형태라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권인한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과)는 25~26일 경남 함안 문화원에서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국제적 위상’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바리는 6세기 중 후반 신라에서 ‘발(發)’로 추정되는 어형을 음사(音寫)한 글자로 추정되며 현대의 ‘바리’는 ‘발(發)’의 후대발달형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피 한 바리’를 의미하는 피발(稗發) 글자가 보인다.|권인한 교수 제공 성산산성 목간에는 차발(此發), 차부(此負), 패발(稗發·파 한 발)과 패석(..
살아남은 ‘피의 군주’ 세조의 얼굴…다른 임금의 초상화는? 조카와 친동생(안평대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재위 1455~1468)의 얼굴은 어땠을까.국립고궁박물관은 22일부터 내년 1월13일까지 지하층 궁중서화실에서 ‘세조’ 테마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박물관 측이 2016년에 구입한 ‘세조 어진 초본’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세조의 생애, 정치·문화적 업적과 관련된 유물 3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세조의 어진, 일제감점기 화가 김은호가 1735년 그린 세조 어진 모사본을 토대로 다시 옮겨 그린 초본이다.|국립고궁박물관 ■세조의 초상화 맞나이번 전시의 핵심유물인 ‘세조 어진 초본’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이왕직(李王職)의 의뢰로 화가 김은호(1892~1979)가 1735년의 세조 어진 모사본을 다시 옮겨 그린 초본이다. 표암 강세..
‘데라우치에 상납된’ 청와대 미남석불의 사연…출생지가 밝혀졌다 이른바 청와대 미남석불의 원위치가 경주시 이거사터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1930년대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1916년 출판한 에 “이거사에 있던 불상을 총독관저로 옮겼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도지리 이거사터=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지난 다이쇼 2년(1913년)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광배(후광)가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이 자료는 2011년 작고한 이근직 경주대 교수가 일본 덴리대(天理大)에 소장된 책을 복사해서 보관했던 것이다. 이 내용을 고 이근직 교수의 부인인 주진옥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관리팀장이 16일 공개했다. 모로가는 총독부 촉탁이던 19..
인간 욕망의 상징, '엘 도라도'는 분명 존재했다 ‘엘 도라도(El Dorado)’는 요즘에 와서는 ‘황금의 나라’ 혹은 ‘이상향’, ‘낙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는 ‘황금빛이 나는 사람(족장)’을 일컬었으며, 후에 그 족장이 사는 지역 혹은 황금이 넘치는 도시로 각색됐다. 이 ‘엘 도라도’의 원뜻인 ‘황금빛이 나는 족장’은 과연 누구일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28일까지 콜롬비아 황금박물관과 함께 열고 있는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특별전은 바로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우고, 황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별전은 16세기 이후 ‘엘 도라도’로 알려진 콜롬비아의 황금박물관이 소장한 황금유물 322점을 소개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엘 도라도’를 찾아 아마존과 안데스산맥을 넘었던 정복자들..
보물 제2000호가 된 김홍도의 작품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이 지정되기 시작한 이래 56년만에 보물 제2000호가 탄생했다. 문화재청이 4일 보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 4건의 등재번호는 제1998~2001호이다.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보물 제1998호와 제1999호이고,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는 보물 제2000호, ‘자치통감 권129~132’는 보물 제2001호가 됐다. 보물 제2000호로 지정된 김홍도의 ‘삼공불환도’. 4m가 넘는 김홍도의 말년 대작이다. 순조 임금의 천연두 쾌차를 기념해서 ‘유후 한공’의 의뢰를 받은 김홍도가 그린 병풍 4점 중 하나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이중 보물 제2000호의 ‘행운’을 누린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신라의 미소’, 되찾은지 46년만에 보물된 사연 1930년대 초 경주 야마구치(山口) 의원에서 공중의로 일하고 있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1908~1993)가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경북 경주 사정동 영묘사 터(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독특한 와당인 수막새 한 점이 발견됐고, 일본인 골동품상인 구리하라(栗原)에게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기왓골 끝에 얹는 수막새의 무늬는 대개가 연꽃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수막새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당시 26살의 청년의사 다나카는 구리하라 가게로 달려가 주저 없이 1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신라의 미소’로 일컬어진 경주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 7세기 작품이다. 여인의 웃는 얼굴을 조각한 독특한 와당이다. |국립경주박뭀관 소장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과 학술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