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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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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점 주인이 찾아낸 대한제국 최후의 문관대례복 그동안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던 대한제국 마지막 서구식 문관대례복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근대복식사 전공자인 이경미 한경대 교수(의류산업학과)는 10일 “1980년대부터 한국맞춤양복협회에 전시된 복식을 조사한 결과, 대한제국이 1906년 12월 칙령 개정 이후 제작한 문관대례복(국가의 의식 때 착용한 옷)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06년 12월12일 고종황제의 칙령 제75호 ‘문관대례복 제식’의 개정에 따라 제작된 대한제국 마지막 대례복. 이전에 비해 앞면의 금색표장이 사라졌지만 뒷면의 칼라와 어깨, 등, 호주머니, 소매 등에 무궁화를 장식했다.|한국맞춤양복협회 제공 대한제국은 국제외교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1900년 4월 17일 서양식 문관대례복에 대한 규정을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04∼1905년 칙..
화려한 색채의 공주 대통사…백제 장인이 묻힌 '아차' 실수 단청 흔적 백제 최고(最古)의 사찰인 대통사터로 지목된 충남 공주 반죽동 한옥부지에서 사찰을 화려한 단청으로 칠한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지난 3~4월 이곳에서 ‘대통(大通)’이라는 명문기와 등 2만 여 편의 유물을 발굴한 조원창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수습된 지두문(손가락으로 그린 무늬) 암막새의 뒷면에서 가로 방향의 붉은 칠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대통사터에서 확인된 암막새. 뒷면에 백제의 단청기술자가 실수로 묻힌 붉은 칠의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한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조 원장은 오는 7일 열리는 ‘공주 대통사지 성격규명과 향후 조사 및 활용방안’ 학술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한다. 조 원장은 이것이 “암막새가 시설되는 연함(連含)을 단청하는 과정에서 묻은 흔적으로 추정된다..
'생존학자를 돌아가신…'으로 쓴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전량 회수 최근 출간된 유홍준의 (창비)에 오류가 발견돼 출판사 측이 뒤늦게 회수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원로미술사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77)은 2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며칠 전 출판사에서 큰 결례를 했다고 전화가 왔다”며 “이미 인쇄된 책은 전부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책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문경 봉암사’ 편에서 강 원장의 평가를 인용하는 대목으로, “돌아가신 강우방 교수”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경북 문경) 봉암사에 다녀온 후 나는 돌아가신 강우방 선생을 만날 일이 있어서 얘기 끝에 봉암사에 다녀왓다고 햇ㅆ더니 강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그게 절이야? 다 망가졌어. 나는 다시능 안갈 거야’라고 한탄어린 푸념을….” 강 원장은 “멀쩡히 산 사람을 두고 죽었다고 하니 내가 오래..
공노(孔奴)…백제인의 익살 담긴 공주 공산성 옻칠갑옷 낙서인가 ‘공노(孔奴)…’. 2011년 10월 공주 공산성을 발굴중이던 공주대박물관 조사단은 가죽에 옻칠한 갑옷(칠피갑옷) 미늘편과 함께 이 갑옷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을 확인했다. 특히 ‘행정관십(行貞觀十)’과 ‘구년사월이십이일(九年四月二十二日)’ 명문은 결정적이었다. ‘정관’은 당나라 태종의 연호(627~649)이며, 정관 19년이면 645년, 즉 의자왕 5년에 해당된다. 복원과정에서 드러난 공노(孔奴) 명문. 고급스러운 갑옷에 장난스럽게 거친 글씨로 표현했다. |이현숙 국립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의 발표문에서 이와함께 지금 막 쓴 것 같은 생생한 글자들이 잇달아 보였다. 왕무감(王武監), 대구전(大口典) 등의 문자가 나타났고, 참군사(參軍事), ‘○작배융부’(○作陪戎副), ‘○인이행좌’(○人二行左) ‘근..
"단 4초, 경주 동궁에 화재진압 '골든타임용' 소화전 있었다" “단 4초, 경주 동궁에 화재진압 ‘골든타임’ 위한 ‘방화수로’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화재진압용 골든타임에 대처한 최첨단 시설이 조성돼있었다. 신라시대 골든타임은 4초였다.” 신라 동궁과 월지(안압지)는 삼국통일 직후인 679년(문무왕 19년) 조성된 궁원이다. 이 궁원에서는 1975~79년 사이 대대적인 발굴조사 끝에 3만점이 넘는 유물과 30곳의 건물터 등이 출토되고 노출된 바 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발굴조사 이전에도 총연장 107m 가량의 화강암제 석조수로가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실체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이 수로가 단순한 낙수처리용이나 경관용 등으로 볼 뿐이었다. 수로 조성된 부분(검은 선). 동궁내 화재가 발생할 때 바로 곁에 조성된 방화수로를 통해 불을 끄는 것이..
이토 히로부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안중근 의사의 1909년 판화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여 뒤 안 의사의 저격장면을 새긴 판화가 공개됐다.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은 하얼빈 의거 후 37일이 지난 1909년 12월 하얼빈 의거 발생 한달여가 지난 1909년 12월2일 일본 박화관이 새겨 발행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석판화. 고판화박물관 제공 2일 일본 출판사인 도쿄(東京) 박화관(博畵館)이 안 의사의 이토 저격장면을 표현한 석판화를 공개했다. 한선학 박물관장은 “18일~9월23일 73주년 광복절을 맞아 ‘판화로 본 근대한국의 사건과 풍경’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당대에 새겨진 가로 39.3×세로 53.8㎝의 대형석판화를 첫 공개한다”고 밝혔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가..
유관순,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요시찰' '수형' 카드 문화재된다 ‘유관순, 키=5촌(152㎝), 신분=평민, 죄명=보안법 위반 소요, 형기=징역 3년, 전과=초범, 직업=정동여자고등보통학교 생도….’ 일제가 충남 아우내 장터 시위를 주도한 뒤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1902~1920년)의 출생연월일과 출생지, 주소, 신장은 물론 활동, 죄명, 형기까지 기록한 신상카드이다. 유관순 열사의 신상카드. 키와 신분 등 신상은 물론 죄명과 형기까지 기록해놓았다.|국사편찬위원회 카드는 낱장의 종이재질로 가로 15㎝, 세로 10㎝이다. 가장 기분 나쁜 것은 독립투사의 상반신을 정면과 측면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지독한 문초를 받은 뒤 찍혔으니 좋은 사진일 리 없다. 유관순 열사 뿐이 아니다. 1910~45년 사이 작성된 신상카드 연번이 6만5193번까지 기재..
'삼팔 따라지' '먹자판 재판소'… 격동의 해방공간 특별전 ‘고두럼 장작 때구 냉수 먹세’ ‘하루종일 정거장’ ‘흐지부지 우편국’ ‘텅텅 비었다 배급소’ ‘먹자판 재판소’ ‘깜깜절벽 전기회사’ ‘삼팔 따라지’, ‘팔십오전’…. 해방 직후의 유행어들이다. ‘고두럼(고드름)…’은 불 피울 장작조차 마련하기 힘든 당대 농민들의 가난한 삶을 말해주고 있다. 고드름으로 장작을 지폈는지 엄청 찬방에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다는 의미다. 민족정경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 주요인물들의 친일행적이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하루종일 정거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는 정거장을, ‘흐지부지 우편국’은 전보 한 장 편지 한장 제때 전하지 못하는 한심한 우체국을 풍자한 말이다. ‘텅텅 비었다 배급소’는 나눠줄 게 없어 텅텅 빈 배급소를, ‘먹자판 재판소’는 ‘돈만 요구하고 판결은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