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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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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학교, 그리고 체벌… 언제 생겼을까 '아! 지겨운 학교, 언제나 쉬려나.' 기원전 2000년 무렵 어느 수메르 학생이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새긴 넉두리입니다. 학교생활,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그랬을까요. 수메르인이 새겨둔 점포판을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교사가 지극히 산만한 학생을 체벌하고, 체벌당한 학생은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우리 선생님에게 좀 뇌물 좀 줍시다"라 했습니다. 자식이 뭐라고, 아버지는 자식의 호소를 듣고 교사를 초청해서 이른바 촌지를 건넵니다. 인류 최초의 촌지입니다. 그런데 촌지를 받은 선생님의 반응이 걸작입니다. 문제의 학생을 향해 "넌 형제들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낼 거야. 틀림없어."라 칭찬해줍니다. 촌지의 효과일까요. 물론 지금이야 사라졌다지만 촌지는 3000년 이상 지속되어온 관행이었던 겁니다. 그..
사람제사와 성종의 '흑역사', 그리고 태종우(雨) 얼마전 경주 월성의 성벽 기단부에서 인골 2기가 발견됐습니다. 그저 휩쓸려 들어가 묻힌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제사의 희생물로 그곳에 묻힌 것입니다. 성벽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제사상을 차렸고, 두사람이 희생물이 된 것이지요. 인골이 발견된 성벽의 연대가 5세기 무렵이었으니까 1500년 전 신라의 상황이네요.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0년에는 경주의 한 우물에서 10살짜리 어린아이 인골이 거꾸로 박힌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제사에 사용된 다른 동물들의 뼈가 수두룩했고, 제사용 토기들도 즐비했습니다. 국가적인 제사행위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불쌍한 어린아이 역시 제사의 희생물이 된 거죠. 이 인골이 묻힌 연대는 9세기 무렵이니까 1100년 정도 된 것인가..
커제를 응원하는 이유 “승률이요? 0%에 가깝죠.” 23~27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우전(烏鎭)에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중국의 커제(柯潔·20) 9단이 3차례 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커제가 이길 가능성이 사실상 0%라는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프로바둑기사 손근기 5단은 “커제가 (알파고의 수를 그대로 따라두는) 흉내바둑 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인간바둑 9단이 인공지능을 흉내낸다? 굴욕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도전장을 내밀 때의 가소로운 장면이 떠오른다. 기사들은 ‘바둑의 수가 우주의 원자수보다 많은 10의 170제곱인데 인공지능이 어찌 무궁무진한 수를 다 읽겠냐’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어찌 따라올 수 있냐’고 얕잡아봤다. 결과는 1대4의 참패로 끝..
'동삼동패총'은 신석기시대 명품팔찌공장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물 박물관이 있습니다. 기원전 6000~기원전 2000년 사이 무려 4000년간 신석기인들의 삶을 복원해볼 수 있는 부산 동삼동 패총유적입니다. 패총이란 조개무지, 즉 신석기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들의 무덤입니다. 석회질로 된 조개껍데기는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바꾸기 때문에 패총 안에 들어있는 유구와 유물들이 잘 썩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삼동 패총에서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유물들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이곳은 당대 명품팔찌의 대량생산 공장이 존재했던 곳입니다. 1999년 발굴에서는 1500여점의 팔찌가 확인됐는데, 그 중에는 완제품도 있었고, 제작도중에 깨졌거나 아니면 제작하기 전의 조개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공장이었다는 얘기죠. 흥미로운 것은 광안리산 명품인 투..
간송 전형필과 야마나카의 문화재 전쟁 최근 일제강점기 고미술 무역상인 '야마나카 상회'를 다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 야마나카 상회를 거쳐 판매된 석조 및 도자 문화재의 도록 사진과 관련 기록을 정리한 논문입니다. 야마나카 상회? 관련 서적을 들춰보니 간송 전형필 선생과 몇차례 맞대결을 벌인 기록이 있었습니다. 논문이 나온 김에 간송과 야마나카 상회가 펼친 문화재 전쟁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간송도 조선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당대 글로벌 거대자본이던 야마나카 상회와는 견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간송은 당당히 맞섰습니다. 첫번째 야마나카 상회가 개최한 경매에서 석조물 4점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만남에서는 판정패였습니다. 어떤 이유때문일까요. 하지만 두번째 대면에서는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감상할 수 있는 혜원..
뒤바뀐 보물의 원통한 사연…노서리 215번지의 수수께끼 우리나라 보물과 관련된 기막힌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1933년 마을주민이 밭을 갈다가 발견한 경주 노서리 215번지 유물입니다. 그러나 주민이 수습한 것은 반쪽이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을 찾은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가 나머지 반쪽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마을주민이 찾은 반쪽은 서울(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나머지 반쪽은 도쿄(국립제실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거죠. 왜 그렇게 흩어진 것일까요.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이듬해인 1966년 문제의 노서리 유물 반쪽이 반환됩니다. 두 유물이 합체됐겠죠. 이듬해인 1967년 문화재위원회는 그렇게 합쳐진 유물 중 팔찌(454호), 귀고리(455호), 목걸이(456호) 등을 보물로 지정합니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귀고리..
전곡리 구석기와 후지무라 조작사건 이번 주는 27만년 전의 세계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선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이곳에서 구석기축제가 열립니다. 올해는 5월3일부터 7일까지 열린답니다. 27만년전 구석기 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고, 선사박물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어 있으니 한번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왜 하필 27만 년 전 세계냐. 그걸 어떻게 아느냐. 뭐 이런 질문들을 하실 겁니다. 사실 한탄강 임진강은 화산활동이 빚어낸 강들입니다. 용암이 흘러 두 강을 만들었고, 고인류는 문명의 젖줄인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1977년 이곳에서 수상쩍은 돌멩이 하나가 확인되면서 이곳이 구석기 시대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돌멩이..
고종의 비밀 정보 기관과 하얼빈 의거… 고종은 망국의 임금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기야 500년 왕조가 자기 대에서 끊겼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최근에는 고종이 그나마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쓴 증거가 여럿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랬겠지요. 쇠락한 나라의 임금으로 사방에서 으르렁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힘없이 나라를 바친 임금은 나이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증거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고종이 1902년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어 친일파와 일제의 결탁을 감시하고, 나아가 국내외 독립·애국운동을 배후 조정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1990년대 초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확인했던 자료인데요. 그 정보기관의 이름은 ‘제국익문사’였습니다. 이 교수는 이 ‘제국익문사’의 규정집을 찾아낸 것이지요.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