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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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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구구단 목간의 수수께끼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
충청인의 여유 물씬 풍기는 백제 가요 목간 목간은 당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목간에 쓰여진 기록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체취를 흠뻑 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목간은 500여점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목간은 70여점 정도랍니다. 많지않은 숫자지요. 대부분이 사비백제 시기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리 많지않은 백제 목간 가운데는 유독 흥미로운 목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백제 시대 ‘빅 3’ 목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쌍북리 구구단 목간이 눈에 띕니다. 과연 어떤 패턴으로 만들어진 목간일까요. 옛 사람들은 왜 이이단이라 하지 않고 구구단이라 했을까요. 과연 구구단을 ‘9×9’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흥미로운 목간이 바로 ‘남근형 목간’입니다. 능산리에서 발견된 이..
근초고왕의 한성백제, 그 최후의 순간 475년 9월이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구가한 백제가 한성시대를 마감합니다. 그런데 그 최후의 순간은 너무도 비참합니다. 임금인 개로왕은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간 배신자에게 잡혀 아차성까지 끌려온 뒤 목이 잘립니다. 개로왕은 사로잡히기 전 아들인 문주(왕)에게 “너는 후일을 도모하라”는 당부를 남깁니다. 이로써 중국사서에 따르면 중국 요서지방에까지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왜왕에게 칠지도까지 하사하는 등 국력을 떨쳤던 한성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립니다. 그후 1400년 이상 한성백제는 잊혀진 왕국이 됩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역사의 편린이 얼핏 드러났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강고한 식민사관의 영향력 아래 한성백제의 왕성이 ‘그럴리 없다’는..
②‘석촌동 3호분의 주인공은 근초고왕인가’ 최근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에서 한성백제 시대 적석총이 확인됐습니다. 새삼 40여 년 전 ‘야만의 시간’을 되짚어봅니다. 1983년 개발의 광풍 속에서 포클레인 삽날에 백제인골이 찍혀나간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참상을 고발하고, 온몸으로 유적을 지켜낸 소장학자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석촌동 고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당연히 한성백제 493년의 역사도 파괴되었을 겁니다. 더불어 최근의 발굴성과를 토대로 백제의 최전성기인 한성백제 시대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지금의 송파구, 즉 예전의 광주평원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 형인 비류는 지금의 인천(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다가 실패로 돌아갔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하나, 한성백제의 도읍지는..
①포클레인 삽날에 찍힌 석촌동 백제왕릉 최근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에서 한성백제 시대 적석총이 확인됐습니다. 새삼 40여 년 전 ‘야만의 시간’을 되짚어봅니다. 1983년 개발의 광풍 속에서 포클레인 삽날에 백제인골이 찍혀나간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참상을 고발하고, 온몸으로 유적을 지켜낸 소장학자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석촌동 고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당연히 한성백제 493년의 역사도 파괴되었을 겁니다. 더불어 최근의 발굴성과를 토대로 백제의 최전성기인 한성백제 시대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지금의 송파구, 즉 예전의 광주평원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 형인 비류는 지금의 인천(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다가 실패로 돌아갔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하나, 한성백제의 도읍지는..
백성을 사랑한 군주, 머리를 올린 대통령 지도자의 업무를 되돌아보게 하는 요즘입니다. 대통령이 300명이 넘는 목숨이 수장되는, 처참한 상황에서 출근조차 하지 않고 7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 올림머리 하느라 또 1시간 이상 소비했다는 것 아닙니까. 사생활 운운할 수 있습니까. 참담하기만 합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지도자의 자세를 비춰보고 싶습니다. 하루 24시간 밤잠을 이루지 못한채 정사를 돌보고 독서를 하고, 전국 각지에서 보네온 장계를 읽었던, 그래서 건강까지 해쳤던 조선조 정조 임금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청나라 옹정제의 사례도 언급하렵니다. 물론 만기친람이라는 지적도 있었고, 때로는 각박한 정치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공과 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조든, 옹정제든 그들의 ..
청와대의 불행, 풍수 탓인가 사람 탓인가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임기말에 대통령의 무능함과 무기력이 밝혀지고 시민들은 절망의 한숨을 쉽니다. 뭔가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까요. 이럴 때면 나오는 푸념이 있습니다. 청와대 풍수가 좋지않은 건가. 풍수탓인가.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말 풍수탓인지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사실 청와대터는 고려때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평가된 것 같습니다. 고려의 삼경(三京)인 남경의 궁궐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청와대터에 궁궐을 지어 1년에 4개월씩 머물면 36국이 조회하는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 했습니다. 정말 1990년 청와대 경내 북악산 기슭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요. 조선시대들어 청와대 터는 충성맹세의 장으로 변질됩니다.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충성을 ..
"하늘이 버린 지도자는 죽여도 된다" 요즘 온 나라가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또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터질지 온 국민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3000년 전이나 20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읽으면 어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민심을 잃은 지도자를 과연 어찌 해야 할지 찾아봤습니다. 흔히 성선설과 성악설로만 알려진 맹자와 순자, 두 분의 사상을 접하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두 분은 ‘민심과 천심을 잃은 지도자는 쫓아내도 되며, 수틀리면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맹자와 순자, 두 분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