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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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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강의 '복지왕'은 세종 혹은 숙종?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다.(民惟邦本 食爲民天)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굷주림을 면치 못한다니…. 너무도 가련하고 민망했다.” 1419년(세종 1년), 세종 임금이 ‘억장이 무너진다’면서 “부덕한 과인 때문에 한많은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만일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과인이 장차 관원을 파견, 감사에 나설 것인즉….”) 과연 최고의 성군(聖君)다운 조치라고 여길 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종 뿐이 아니었다. 조선을 46년 간이나 다스린 숙종은 어땠을까. 1698년(숙종 24년) 1월, 굶주림에 얼어죽은 시신이 40~50구가 쌓였다는 소식을 들은 임..
운석의 경고, "운석은 하늘의 재앙" 1492년(성종 23년),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이 “운석이 떨어졌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극돈은 매우 신기한듯 운석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빛깔은 뇌설(겉이 검고 속이 흰 버섯의 일종) 같고, 모양은 복령(주름이 많은 공모양의 흑갈색 버섯) 같은데…. 손톱으로 긁으니 가루가 떨어졌습니다.” 요즘 같은 첨단의 세상에서도 운석이 떨어지니 한바탕 난리굿을 떠는데 하물며 예전에는 어땠으랴. 2013년 2월 러이사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주 체바르쿨 호숫가에 떨어진 운석. 운석은 세 조각으로 부서졌으며, 전체 무게가 600㎏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운석이 비처럼 쏟아졌다.’ “104년(신라 파사왕 25년) 운석이 비처럼 쏟아졌다.”() “1057년(문종 11년) 황주에 운석이 우레 같은 소..
고려 조선을 뒤흔든 사교육 열풍 “학교의 흥폐가 스승의 도(道)에 있는데…. 심지어 ‘해(亥)와 시(豕)’, ‘노(魯)와 어(魚)’의 글자를 구별할 줄 모르는 자들이 선생이라 합니다.” 1429년(세종 11년) 사간 유맹문의 상소를 보면 성균관과 향교 선생들의 질이 형편없음을 고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갈 곳 없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성균관 교관(선생)으로 발령내는 일이 다반사이며, 그마저 자주 바뀌는 형국”(중종의 언급)이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1527년(중종 22년) 지사 김극핍의 상소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한다. “유생들이 선생 한사람의 기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형들은 ‘관학(성균관) 공부가 안된다’며 유명 과외선생에게 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공교육의 선생들은 믿을 수 없으니 실력있는 과외선생을 찾는 것이 ..
장애인 외교특사까지…. 조선의 선진적 장애정책 “이덕수는 적임이 아닐 듯 하옵니다. (귀가 어두워) 돌발발언이 튀어나오면 어쩝니까.” 1738년(영조 14년), 영조 임금은 청나라로 파견할 외교사절(동지정사)로 도승지 이덕수를 임명했다. 그러자 사헌부는 반대의 뜻을 전했다. 이덕수의 문학과 지조는 견줄 자가 없지만, 외교사절로서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덕수는 귀가 들리지 않은 증세, 즉 ‘중청(重聽)’을 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직상소를 여러번 올렸지만 번번이 반려됐다. 대신 영조는 옆사람을 시켜 큰소리로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웃음(目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이덕수를 청나라 외교사절 단장으로 보낸다니…. 아닌게 아니라 걱정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영조 임금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중국어에..
"남자 의사가 여인의 살을 주무르니…" “산증(疝症·생식기와 고환이 붓고 아픈 병증)과 복통이 있었는데…. 어제부터 대소변이 보통 때와 같지 않구나. 의녀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써야 할 약을 의논하여라.”(1544년) 에 나오는 임금의 지시사항들이다. 중종임금이 의녀, 즉 여자의사를 무한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의녀들이 임금의 비뇨기 질환도 돌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 등장하는 여의는 아마도 ‘의녀 장금’일 가능성이 크다. 중종이 얼마나 장금을 신뢰했는지는 곳곳에 등장하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장금이 에 처음 등장하는 때는 1515년(중종 10년)이다. “의녀 장금은 왕후 출산에 공이 커서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했는데, 대고(大故·왕후의 죽음)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그에게 상을 베풀지는 못할만정 형..
장성택, 주공 단, 여불위 … '후견인의 운명' 역사상 ‘후견인’의 전범은 역시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공(周公) 단(旦)’이라 할 수 있다. 주공 단이 누구인가. 그는 상나라를 무찌르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었다.(기원전 1046년)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창업에 성공한 무왕은 불과 2년 만에 중병에 시달린다. 여전히 상나라 유민들의 반발이 거셌던 시점이어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 때 무왕의 첫째 동생인 주공이 목욕재계하고 제단에 올랐다. 진시황릉 근처 병마용에서 확인된 청동마차. 진시황은 이런 마차를 타고 현장지도를 벌이다 객사하고 말았다. ■후견인의 전범 “천지신명이시어! 형(무왕)의 병을 제가 대신 가져가겠나이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주공은 “형님 대신 저를 죽여달라”고 기도한 축문을 ‘금색 실로 묶은 나무궤짝’에 감춰두..
동이족, 그 슬픈 전설 새삼스러운 궁금증 하나. 복숭아 나무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없애주는 상서로운 나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절대 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동이족의 ‘슬픈 전설’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전설 속 ‘동이족의 명궁’인 ‘예’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 임금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태양이 10개나 있었다.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난 자식들이었다. 10개의 태양은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즉 삼족오였다. 이들은 어머니 희화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올랐다. 그 일을 수만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부여의 제기. 동이족은 하늘신, 동이의..
"조선인은 일본의 스파이다"? “자본주의 적들에게 포위돼있는 소련에는 외국의 스파이들로 가득차 있다.” 1937년 3월3일 스탈린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심상찮은 연설을 했다. 그러자 공산당 기관지 는 기다렸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쏟아낸다. ‘일본의 간첩망’(3월16일), ‘소비에트 원동에서 스파이 행위’(4월23일)’ 등등…. 일본이 밀파한 조선 스파이들이 소련 내의 군대집결 및 이동 등 각종 정보들을 수집해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왜 일본을 경계한다면서 조선인들을 스파이로 지목했을까. 그것이 바로 망국의 설움이었다. 러시아 연해주 체르냐치노 마을유적 옆을 흐르는 라즈돌라야강(솔빈강). 이 마을에는 옥저-발해-고려인들이 시차를 두고 터전을 잡고 살았음을 알려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개를 든 황화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