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역사 (355)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려 조선을 뒤흔든 사교육 열풍 “학교의 흥폐가 스승의 도(道)에 있는데…. 심지어 ‘해(亥)와 시(豕)’, ‘노(魯)와 어(魚)’의 글자를 구별할 줄 모르는 자들이 선생이라 합니다.” 1429년(세종 11년) 사간 유맹문의 상소를 보면 성균관과 향교 선생들의 질이 형편없음을 고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갈 곳 없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성균관 교관(선생)으로 발령내는 일이 다반사이며, 그마저 자주 바뀌는 형국”(중종의 언급)이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1527년(중종 22년) 지사 김극핍의 상소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한다. “유생들이 선생 한사람의 기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형들은 ‘관학(성균관) 공부가 안된다’며 유명 과외선생에게 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공교육의 선생들은 믿을 수 없으니 실력있는 과외선생을 찾는 것이 .. 장애인 외교특사까지…. 조선의 선진적 장애정책 “이덕수는 적임이 아닐 듯 하옵니다. (귀가 어두워) 돌발발언이 튀어나오면 어쩝니까.” 1738년(영조 14년), 영조 임금은 청나라로 파견할 외교사절(동지정사)로 도승지 이덕수를 임명했다. 그러자 사헌부는 반대의 뜻을 전했다. 이덕수의 문학과 지조는 견줄 자가 없지만, 외교사절로서는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덕수는 귀가 들리지 않은 증세, 즉 ‘중청(重聽)’을 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직상소를 여러번 올렸지만 번번이 반려됐다. 대신 영조는 옆사람을 시켜 큰소리로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웃음(目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이덕수를 청나라 외교사절 단장으로 보낸다니…. 아닌게 아니라 걱정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영조 임금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중국어에.. "남자 의사가 여인의 살을 주무르니…" “산증(疝症·생식기와 고환이 붓고 아픈 병증)과 복통이 있었는데…. 어제부터 대소변이 보통 때와 같지 않구나. 의녀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써야 할 약을 의논하여라.”(1544년) 에 나오는 임금의 지시사항들이다. 중종임금이 의녀, 즉 여자의사를 무한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의녀들이 임금의 비뇨기 질환도 돌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 등장하는 여의는 아마도 ‘의녀 장금’일 가능성이 크다. 중종이 얼마나 장금을 신뢰했는지는 곳곳에 등장하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장금이 에 처음 등장하는 때는 1515년(중종 10년)이다. “의녀 장금은 왕후 출산에 공이 커서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했는데, 대고(大故·왕후의 죽음)가 이어지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그에게 상을 베풀지는 못할만정 형.. 장성택, 주공 단, 여불위 … '후견인의 운명' 역사상 ‘후견인’의 전범은 역시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공(周公) 단(旦)’이라 할 수 있다. 주공 단이 누구인가. 그는 상나라를 무찌르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었다.(기원전 1046년)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창업에 성공한 무왕은 불과 2년 만에 중병에 시달린다. 여전히 상나라 유민들의 반발이 거셌던 시점이어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 때 무왕의 첫째 동생인 주공이 목욕재계하고 제단에 올랐다. 진시황릉 근처 병마용에서 확인된 청동마차. 진시황은 이런 마차를 타고 현장지도를 벌이다 객사하고 말았다. ■후견인의 전범 “천지신명이시어! 형(무왕)의 병을 제가 대신 가져가겠나이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주공은 “형님 대신 저를 죽여달라”고 기도한 축문을 ‘금색 실로 묶은 나무궤짝’에 감춰두.. 동이족, 그 슬픈 전설 새삼스러운 궁금증 하나. 복숭아 나무는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없애주는 상서로운 나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절대 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여기에는 동이족의 ‘슬픈 전설’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가 전설 속 ‘동이족의 명궁’인 ‘예’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 임금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태양이 10개나 있었다.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난 자식들이었다. 10개의 태양은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즉 삼족오였다. 이들은 어머니 희화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올랐다. 그 일을 수만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부여의 제기. 동이족은 하늘신, 동이의.. "조선인은 일본의 스파이다"? “자본주의 적들에게 포위돼있는 소련에는 외국의 스파이들로 가득차 있다.” 1937년 3월3일 스탈린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심상찮은 연설을 했다. 그러자 공산당 기관지 는 기다렸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쏟아낸다. ‘일본의 간첩망’(3월16일), ‘소비에트 원동에서 스파이 행위’(4월23일)’ 등등…. 일본이 밀파한 조선 스파이들이 소련 내의 군대집결 및 이동 등 각종 정보들을 수집해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왜 일본을 경계한다면서 조선인들을 스파이로 지목했을까. 그것이 바로 망국의 설움이었다. 러시아 연해주 체르냐치노 마을유적 옆을 흐르는 라즈돌라야강(솔빈강). 이 마을에는 옥저-발해-고려인들이 시차를 두고 터전을 잡고 살았음을 알려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개를 든 황화론 .. 무즙파 vs 창칼파, '엿먹인 '중학입시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찹쌀 1kg 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이 밥을 물 3ℓ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4.이것을 엉성한 삼베 주머니로 짠다. 5.짜 낸 국물을 조린다. (문제 18)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①디아스타제 ②무우즙 3)4)…. 1964년 12월7일 치른 서울시내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 18번 문제. 엿을 만들 때 엿기름대신 넣어도 되는 것을 묻고 있다. 정답은 디아스타제였지만 무즙도 맞는 것으로 처리돼 이른바 무즙파동이 일었다.|경향신문 자료 ■무즙이냐 디아스타제냐 1964년 12월7일 치른 서울시 전기중학 공동출제 입시문제 가운데 ‘자연 18번’.. 패전의 병자호란, 그러나 '대첩'도 있었다. “우리 임금님, 우리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吾君 吾君 捨我而去乎)” 1637년 1월30일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 중의 하나이다. 병자호란 패배로 인조 임금이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치욕스런 날이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 나온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 즉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행해야 했다. 말이 ‘조아린다’는 것이지 실은 머리를 찧어 피가 날 정도로 용서를 비는 절차였다. 이마저도 청나라가 봐준 것이었다. 원래 청나라는 인조의 두 손을 묶고 구슬을 입에 문채 빈 관을 싣고 나가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 굴욕적인 ‘항복의 예’는 진나라 3세황제인 자영이 한나라 유방에게 항복하면서 노끈을 목에 걸고 백마가 끄는 흰 수레.. 이전 1 ··· 32 33 34 35 36 37 38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