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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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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포탄 6발 터졌다’…유물 2만점 미국·부산으로 피란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25일이었습니다. 북한군의 공세에 낙동강까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국립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에 국방부 제3국장 김일환 대령(1914~2001)이 찾아옵니다. “경주 분관 소장 유물을 소개(疏開·분산 이동)하라는 대통령의 긴급 지령으로 왔습니다.” 북한군이 이미 국립박물관 서울본관은 물론 개성·부여·공주분관까지 접수했거든요. 남은 곳은 경주 분관 뿐이었습니다. 박물관측은 즉시 유물선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피란간 국보급 유물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금관총 출토품(1921년) 등 국보급 유물 총 139점이 낙점되었습니다. 선택된 유물들은 대구 한국운행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당시 대구에는 한국은행 소장 금괴(금 1.07t)가 역시..
“저기 반짝거리는 물체가…” 두 인부가 찾아낸 0.05mm 금박 화조도 며칠전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엄청난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의 금판에 0.05㎜ 이하 선으로 한 쌍의 새(쌍조)와 꽃(團華·둥근 꽃무늬)을 조밀하게 새긴 이른바 ‘금박 화조도’의 출현을 알렸죠. 기사의 일보는 이미 보도되었으니까요. 저는 이 극초정밀 유물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동궁과 월지’가 어떤 유적인지 그 기막힌 스토리를 ‘발굴’해보고자 합니다. ■심상치않은 인부들의 눈썰미 2016년 11월이었습니다. ‘동궁과 월지’와 접한 동쪽지역을 발굴중이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조사를 마무리할 작정이었습니다. 유적과 인접해서 일제강점기에 부설된 동해남부선의 철로(폐선)가 지나고 있는데요. 그 철로 옆에 조성된 배수로에..
‘광화문 현판’에 웬 색깔 논쟁?…경복궁을 '물바다'로 만든 사연 1997년 11월11일, 경복궁 내 경회루 연못을 준설하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단이 흥미로운 유물 하나를 건져냈습니다. 큰 돌에 눌린채 직사각형 돌판 위에 놓여있던 청동용이었는데요. 몸과 머리가 분리됐고, 발도 일부 절단된 상태여서 그리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청동용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요. 혀를 쑥 내밀고 콧수염을 동그랗게 만, 해학적인 형상의 청동용(龍)이었답니다. 조사단은 무릎을 쳤습니다. ■경회루 연못에서 혀를 내민 청동용이 조선 후기 유학자인 정학순(1805~1890)이 경회루의 건축원리를 기록한 (1865년 제작)를 떠올린 건데요. 즉 는 “경회루 연못의 북쪽(감방·坎方·물의 방향)에 (불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물의 신인 청동용(銅龍) 두마리를 잠겨넣었다”..
8.6m 산수화에 그린 360명의 삶…200년전 조선의 ‘진경 풍속화’였다 요 몇년 사이 제가 본 국립중앙박물관의 대작 가운데 눈에 띈 작품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2020년 11월 공개된 ‘세한도’였는데요. 따지고보면 ‘세한도’(가로 70.4㎝×세로 23.9㎝)는 ‘작품이 뛰어나다’는 의미의 ‘대작’인 것은 분명하지만 ‘규모가 크다’는 뜻의 ‘대작’은 아니죠. 그러나 중국(16명)과 한국(4명)의 문사 20명이 달아놓은 감상평, 즉 시쳇말로 댓글 덕분에 작품도, 규모도 엄청난 대작이 되었습니다. 댓글까지 포함하면 전체 길이가 15m(가로 1469.5㎝×세로 33.5)에 달하거든요. ■실감컨텐츠로 8m 대작 산수화를… 그러나 순수 작품의 크기만 친다면 역시 그 해(2020년 7월)에 전시된 ‘강산무진도’가 압도적이죠. 조선후기의 대표화가인 이인문(1745~?)의 작품인데요. 작..
“오징어게임은 가라! 오백나한 납신다!”…호주도 열광한 ‘볼매’ 얼굴 ‘오징어게임은 비켜라-한국의 다음 주자는 나한이다.’(시드니모닝헤럴드) 지난해 12월부터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관련 전시회가 누적관람객 23만명을 돌파하는 인기를 끌며 막을 내렸는데요.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나한 석조상 50여점을 출품한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입니다. ‘오징어게임은 가라-나한이 납신다’는 제목을 단 호주 일간지인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나한전은 2022년 가장 아름다운 전시중 하나”라고 소개했는데요. 신문은 “병약한 아내가 산비탈을 지나기만하면 몸이 좋아져서 이곳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짓다가 오백나한상을 발견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까지 소개하면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나한상이 코로나로 지친 호주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500년전 무덤에 묻힌 개(犬)는?…신라인의 반려견, 가야인의 경비견 경남 창녕 화왕산(758m)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교동·송현동 고분군에는 모두 300여기의 무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가야연맹체 중 비화가야 지도자의 후예가 묻힌 고분군이죠. 그런데 이곳 창녕은 물론 고령·함안·김해·성주 등은 일제강점기부터 무단발굴과 도굴의 무대였습니다. 일제가 ‘가야지역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거죠.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369~562년 사이 야마토(大和) 정권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관청을 세워 200여년간 지배했다는 학설이죠. “남조선은 내궁가(內宮家·209년 일본이 신라정벌 후 설치했다는 관청)를 둔 곳이고, 조정의 직할지가 되어 일본의 영토가 된 일이 있다. 한국병합은 임나일본부의 부활이니….”( 1915년 7월24일) 하지만 ..
임금이 ‘궁궐 현판 쓴다’하면 “전하가 연예인이냐”고 욕먹었다 조선시대 관원들의 공무수행 공간이었던 창덕궁 궐내각사에는 약간 특별한 ‘현판’이 걸려있었습니다. 1725년 대은원이라는 전각을 수리한 내역을 새긴 건데요. 그런데 수리공사를 지휘한 것도 내시이요, 현판의 글을 지은 것도 내시이고, 글씨를 쓴 것도 내시였습니다. 아마 내시들이 머물렀던 건물이니 내시들이 수리공사의 모든 책임을 진 거죠. 그러나 내시가 궁궐 전각의 현판을 썼다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였죠. ■“초심을 잃으면 안됩니다” 현판은 왕조의 상징물이고, 그 상징물의 간판이죠. 국왕의 글씨 혹은 당대 최고 명필들의 글씨를 받아 장인들이 정교하게 새겼고, 화려한 문양과 조각으로 장식했습니다. 이중 왕과 왕세자의 글과 글씨가 상당수 남아있는데요. 현판에는 특별히 작은 글씨로 어필(御筆·임금의 글씨), ..
죄책감에 빠진 '백,제,왕,창'…0.08mm 초정밀 예술 쏟아냈다 제가 가본 문화재 발굴 현장 중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곳이 있는데요. 2007년 10월 24일 부여 왕흥사터 발굴유물을 실견했을 때입니다. 절정기 백제예술의 정수를 보면서 넋을 잃었답니다. 과연 어떤 발굴이었는지 시간을 15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발표 2주 전인 10월10일이었습니다. 왕흥사 목탑터를 조사중이던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단원들의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습니다. 목탑터 초석의 사리구멍을 막은 돌뚜껑(25㎝×15㎝×7㎝)이 노출되었는데요.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자 흙탕물이 가득했답니다. 대나무칼로 조심스레 흙을 제거하자 글자들이 한자 한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백, 제, 왕, 창’ ‘정(丁), 유(酉), 년(年), 2월(二月), 25일(十五日)’. 이 목탑의 조성시기를 알려주는 명문이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