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70) 썸네일형 리스트형 "모두 과인의 탓이다!"를 외친 왕조시대 군주들의 재난대처법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치더니 곧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밤처럼 깜깜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를 볼 수 없는 황무지로 돌변했다. 아낙들은 모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 떼와 싸웠다.” 펄 벅(1892~1973)의 에 등장하는 풀무치(메뚜기) 떼의 습격 장면입니다. 1억 마리 이상의 풀무치 떼가 수확기 농촌을 휩쓸어서 순식간에 황무지로 변했다는 해외토픽이 요즘도 가끔 보이는데요. ■풀무치를 꿀꺽 삼킨 군주 역사서는 ‘풀무치’를 ‘황충(蝗蟲)’이라 했습니다. ‘황충’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요. 중국 역사상 위대한 명군으로 .. 태풍 '매미'가 울자 8000년전 신석기인의 배와 똥화석이 떠올랐다 혹시 ‘매미’라는 이름의 태풍을 기억하십니까. 2003년 9월 12~14일 한반도 남부에 불어닥친 슈퍼태풍입니다. 중심부 최저기압이 이전까지 태풍의 대명사였던 ‘사라’(1959년·952헥토파스칼)보다 낮은 950헥토파스칼(h㎩)로 역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상자가 130명(사망 117명·실종 13명), 재산피해가 4조 2225억원에 달한 최악의 태풍이었습니다. ‘매미’는 북한이 지은 태풍 이름이었는데요. 1999년 11월 열린 제32차 아시아 태평양 태풍위원회에서 14개국이 10개씩 제안한 태풍 이름 140개 중 하나였죠. 태풍위원회는 140개 이름을 5개조로 나눠 28개씩 차례로 쓴다고 합의했는데요. 그러나 ‘매미’는 2003년 너무나 많은 피해를 준 재수없는 이름이라 해서 ‘불명예 퇴출’됩니다. ‘.. '따비질'하는 그 남자는 왜 벗고 있었을까…청동기 노출남의 정체 ‘한반도는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만 거쳤다.’ 1907~1934년 김해 회현동 패총 유적을 발굴한 일본학자들이 반색했습니다. 이곳에서 석기와 철기가 동시에 나오자 ‘얼씨구나!’ 했던 건데요. 이들은 ‘맞아 한반도에는 독자적인 청동기 시대가 없었어. 석기만 쓰고 있던 미개사회였는데, 중국(한나라)에서 철기로 무장한 선진문화가 밀려 들어와 석기-철기가 공존한 것일 뿐이야!’, 뭐 이렇게 단정한 겁니다. 일본학계는 한반도의 선사시대가 파행·정체되어 있었음을 강조하는 식민사관의 하나로 이 ‘금속병용기설’을 주장했는데요. ■터무니 없는 금석병용기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 상서로운 조짐이 보입니다. 1967년 대전 괴정동에서 한 주민이 밭을 갈다가 심상치않은 청동기 유물을 수습하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긴급조사.. 24K 순금으로만 휘감은 백제 무령왕 부부…신라왕은 금은 합금 선호 “신체 발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건데…훼손시키지 않는게 효도의 시초다. 그런데 요즘 양반이나 평민 남녀 할 것 없이 귀를 뚫고 귀고리를 달아 중국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다…사헌부가 나서 엄벌하라.”( ) 1572년(선조 5) 9월28일 선조가 ‘귀를 뚫고 귀고리를 다는 풍습을 엄단한다’는 비망기(특별담화문)를 발표합니다. 선조는 “이것은 부끄러운 오랑캐의 풍습”이라고 개탄합니다. 사실 선조의 언급은 팩트가 아닙니다. 은 연산군(1494~1506)의 서자로 9살 때 사약을 마시고 죽은 양평군 이인(1498~1506)의 인상착의를 말하면서 “귀에 귀고리를 꿴 구멍이 있었다”(1513년 1월7일)고 기록했거든요. 또한 이유원(1814~1888)의 ‘귀고리’ 조는 선조의 비망기 내용을 인용하면서 “중국에서도 아.. ‘히힝~’, 천마 3마리가 보였다…신라왕 무덤인데 ‘금관은 뒷전’이었다 “7월 25일…(미리 예상했지만) 곡옥이 달린 나뭇가지 형태의 세움장식이 확실한 금관 일부를 확인했다.” 197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경주 155호분 발굴을 기록한 야장(발굴일지)의 7월25일자 내용입니다. 어째 좀 이상하죠. 명색이 신라 금관을 발견했는데, 짜릿한 흥분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금관총(1921년)-금령총(1924년)-서봉총(1926년)에 이어 4번째 금관 출토가 아닙니까. 게다가 155호 고분 출토 금관은 해방 후 첫번째로 수확한 금관이라는 의미가 있죠. 발굴된 금관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구요. 그런데 발굴일지의 ‘예상했던 대로’라는 표현에 눈길이 갑니다. 해방 후 첫 발굴한 왕릉급(높이 12.7m, 밑지름 47m)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었으니까요. 금관 출.. 북쪽으로 22.58㎝ '기우뚱' 한 첨성대, 정말 괜찮은건가 요즘은 황리단길과 벚꽃길도 각광을 받지만 경주 시내의 ‘랜드마크’는 역시 첨성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주시내 한복판, 대릉원과 월성 사이의 평지에 다소곳이 서있는 첨성대는 남녀노소와 밤낮을 막론하고 사계절, 사진발 잘 받는 핫플레이스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첨성대를 볼 때마다 괜히 조바심이 납니다. 혼자 이리저리 나름대로 수평을 잡아보고, 기울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게다가 지난 9월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경주 지역을 휘몰아쳤잖습니까. 왜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죠. 1400년 넘게 잘 버티고 있는 첨성대를 두고 걱정을 사서 하니 쓸데없는 ‘기우’라고 하시겠죠. ■지진 때문에 북으로 2.13㎝, 동으로 1㎝ 기움 그러나 마냥 ‘기우’는 아닙니다. 실제로 첨성대가 기울어졌으니까요. 2009년 발.. 국보 '황금 띠고리'의 주인인 '낙랑인'은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자료(41만여점) 가운데 유독 낙랑 관련 유물과 사진이 눈에 밟힙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사되고 촬영된 1만7000여점의 유물과 4053점에 이르는 유리 건판 사진이 그것입니다.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강점기 자료 조사 사업의 공개와 활용’ 관련 학술대회를 열었는데요. 그동안 박물관 소장자료를 재검토해서 특별전(‘낙랑·2001’)도 열고, 발굴보고서(·2002), ·2018)도 펴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발표 자료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이 보였습니다. ■알코올로 닦자 2000년전 글씨가 “평양 석암리 9호분 출토 노기(弩機·원거리용 화살발사장치)에서 ‘조자릉 용(趙子陵 用)’이라는 명문 묵서(묵 글씨)가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암리 9호분은 유명한 국보 ‘황금제 띠고리’ 등 화.. 중국 역사교과서는 고구려사를 '딱 한줄' 썼다…"수가 고구려를 정벌!"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청동기 전시회(7월26~10월 9일)가 간과할 수 없는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명색이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친선 특별전인데요. 우리측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자료에서 ‘고구려와 발해사’를 삭제한 한국사 연표를 전시장에 내걸었답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이 개막된지 50여일이나 지난 9월 중순, 그것도 언론보도에서 알게 됐으니 얼마나 기막힙니까. 뒤늦게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뭐했냐’는 타박이 나오고, 관장이 직접 사과문을 올리는 촌극도 빚었죠. 물론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연표만 보내놓고 확인하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져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물관장의 사과’ 만으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 이전 1 ··· 6 7 8 9 10 11 12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