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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릉(쌍릉)에서 발견된 무덤길…무왕 생전에 조성한 무덤일까 백제 무왕릉으로 추정되는 전북 익산 쌍릉(대왕릉)은 생전에 치밀한 계획아래 조성됐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4월 50~70대 노년 남성의 인골이 출토된 전북 익산 쌍릉(사적 제 87호)의 대왕릉에서 백제고분으로는 가장 길이가 긴 묘도가 확인됐다.이번에 확인된 무덤길. 4m50㎝ 가량의 흰선은 피장자 생전에 무덤을 조성하려고 판 흔적이며, 보라색 선은 피장자가 죽은 뒤 파낸 무덤길의 흔적이다. 가운데 파란색 선은 일제가 파낸 흔적이다. 왕릉이 피장자 생전에 철저하게 준비된 수릉이라는 얘기다.|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쌍릉 중 대왕릉을 발굴중인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20일 길이 21m,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가량의 묘도(무덤 입구에서 시체를 두는 방까지 조성한 길)를 찾았다고 밝혔다...
노비, 재소자, 장애인…세종의 '혁명적인' 인권 복지정책 (가)=“출산 휴가 100일로는 부족하다. 산전 휴가 1개월을 더 보태라.” (나)=“산모만 휴가를 주었더니 안되겠다. 그 남편에게도 30일간 출산 휴가를 주어라.” 꼭 요즘 시대 어느 나라 복지정책을 일컫는 것 같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이것은 다름아닌 만고의 성군이고, 해동의 요순이라는 세종대왕 복지정책의 일단이다. 그것도 조선시대에 사람 취급도 받지못한 것으로 알려진 ‘노비의 출산정책’이다. 조선 후기 곤장을 맞는 모습. 세종은 범죄자에 대한 노여움과 분풀이로 태형을 함부로 가하는 것을 막았다. 가죽채찍을 대용으로 사용하되 50대 이하로 규제했다.■노비의 남편에게도 1개월 출산휴가를 줘라 (가)는 1430년(세종 12년) 10월 19일 세종이 승정원에 내린, 그야말로 노비를 보살펴줘야 할 어엿한 ..
1500년전 아라가야에도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다 가야연맹 6개국 중 주요국이었던 경남 함안의 아라가야 왕성터에서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부대시설이 확인됐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18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하나로 아라가야 왕궁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망루와 창고, 고상건물, 수혈건물, 집수지 등 특수목적 건물터 14개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정왕궁터에서 확인된 부대시설. 공지(연병장)와 내무반(부뚜막 있는 건물지), 망루, 강당(1호 고상건물지)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부대일 가능성이 짙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이 건물군은 가운데 빈터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왕성 내부의 공간구조와 관련 의도된 기획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대형인 8m×6m의 7호 건..
아라가야 왕릉에서 발견된 ‘생명의 별자리’ 남두육성 아라가야인들이 바라본 봄철 남쪽 하늘의 별자리는 어땠을까.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으로 알려진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아라가야 왕릉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안 말이산 13호분 덮개돌에서 확인된 성혈.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등의 별자리가 선명하게 확인됐다. 특히 궁수자리 안에 있는 남두육성이 눈에 띈다. 남두육성은 동양에서 생명과 태양을 의미한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제공 이 고분을 발굴한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18일 “붉게 채색된 구덩식 돌덧널 무덤(수혈식 석곽묘)의 벽면과 125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말이산 고분은 이번에 부대시설이 확인된 왕성터에서 2㎞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 1..
석기시대의 비밀…40만년전 사용된 나무창의 정제 석기시대(stone age)하면 떠오르는 도구는 역시 석기, 즉 돌이다. 그러나 돌 말고도 하나 더붙여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나무다.물론 인류는 처음에는 돌도끼 같은 도구를 이용했지만 점차 효용성 증대에 골몰하게 됐다. 독일 쉐닝겐 구석기 유적에서 거의 완형에 가까운 10여점의 나무창이 쏟아졌다. 석기시대는 흔히 ‘돌의 시대’로 알려졌지만 ‘도구가 나무’의 시대, 즉 ‘석 목기 시대’라 일컬어질만 하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그래서 사용한 것이 나무이다. 특히 사냥도구의 관점에서 창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창의 발명으로 사냥꾼은 안전한 곳에서 사냥감을 향해 창을 던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볍고 날카로운 창의 찌르개는 살상력을 높였다. 석기시대가 아니라 ‘석·목기 시대’라 일컬어져야 하지 않을까.고인..
'아이 울음소리' 에밀레종의 신비는 비대칭의 미학에서 비롯됐다 “비대칭성의 미학이 에밀레종의 신비를 낳았다.”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의 또다른 이름인 ‘에밀레종’은 아주 끔찍한 작명의 전설을 갖고 있다. 771년(혜공왕 7년) 도무지 종이 완성되지 않자 어린 아이를 쇳물이 펄펄 끓는 도가니에 던졌더니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종에서 어린아이의 소리처럼 ‘에밀레’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자신을 쇳물에 던지게 만든 어미를 원망하며 ‘에미 죄’라고 울부짖는 소리라는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만의 고유 맥놀이 현상을 설명하는 그래프. 성덕대왕 신종의 음파는 타종하고 대략 9.1초 후에 “…어~엉…”하고 울고는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후에 울음을 토해낸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표현되는 이유다.|김석현 ..
혜공왕, 만월부인, 맥놀이, 스위트 스팟…'에밀레종, 천상의 소리' 비밀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 일명 ‘에밀레종’을 둘러싼 설화는 해괴하고 끔찍하다. 같은 주제인데 여러 버전으로 전해진다. 즉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서 스님들이 시주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 부인이 시주를 받으러 문을 두드린 스님에게 “마음 같아서는 시주 하고 싶지만 있는 것은 갓난아이 뿐이니 이 아이라도 시주 받겠냐”고 했다. 스님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열심히 시주받아 종의 제작에 보탰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종은 완성되지 않았다. 2003년 타종 및 음향.진동 측정조사를 위해 종을 치는 모습.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점을 쳐보니 ‘받을 시주를 받지 않아서 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궤가 나왔다. 스님이 문득 갓난 아이..
몽골의 감시아래 흐느끼며 허물어야 했던 강화성벽의 흔적 “1259년(고종 49년) 6월 강도(강화도)의 내성을 헐기 시작했다. 몽골 사신이 급하게 독촉하자 군사들이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울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성을 쌓지 말걸 그랬다.’”()고려와 28년간(1231~59년) 6차례의 전쟁을 벌인 끝에 강화협정을 맺은 몽골이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강화도성을 허무는 것이었다. 몽골이 느꼈던 물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강화 중성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방어시설. 외부 침입을 막는 시설인 치와 외황(마른 도랑) 등이 발견됐다. 특히 몽골과의 항쟁이 끝나고 강화협정을 맺은 후 몽골의 압력에 의해 성벽을 허문 흔적도 보였다. |한백문화재 연구원 제공칭기즈칸이 13세기 초 제정한 법에는 “제4조=물이나 재에 방뇨하는 자는 사형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