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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 바닥에서 확인된 비밀문양. 국화형 꽃무늬 국보 상감청자 사발의 바닥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꽃무늬가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드러났다.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건국 1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대고려-찬란한 도전)에 전시중인 국보 제115호 청자 상감 국화넝쿨무늬 완(碗·사발)을 CT 촬영한 결과 바닥에서 국화형태의 꽃무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사발 밑바닥에 새겨져있던 꽃무늬 상감.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번 CT촬영 덕분에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분석결과 그릇 내부(0.53㎜)와 외부(0.40㎜) 유약층 두께는 비슷하지만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지고(1.00㎜), 내부 바닥에는 아예 유약층이 고여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영범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는 “청자 사발 바닥에 고여있던 유약층 때문에 가려..
이승만은 망가진 ‘미인 석탑’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대체 저게 어찌 된 것이요.”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대통령과 경복궁 내 경회루 산책에 나선 이승만대통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산산조각 난채 방치된 흉물스러운 탑 한 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외국정상과 함께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노기가 하늘을 찌르자 부랴부랴 방치된 탑의 복원에 나섰다. 한국전쟁 때의 폭격 유탄에 맞아 무려 1만2000조각으로 산산조각난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이후 여러차례 복원 수리 과정을 겪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문제의 탑은 바로 원주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었다. 원주 부론면을 떠나 서울-일본 오사카를 거쳐 원래의 자리인 원주로 가지못한채 서울 경복궁 한편에 서있다가 한국전쟁 때인 19..
요절한 조선의 마지막 공주가 남긴 친필글씨 “이 전각은 우리 영고(寧考·정조)께서 자궁(慈宮·혜경궁 홍씨)을 효도로 받들고자 세우신 바요, 우리 자궁께서는 우리 자전(慈殿·효의왕후)께 내리셔서 소자(小子·순조)가 효도로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신 전각이다. 우리 영고께서 자경이라고 이름을 내리셨으니 지금에 이르러 더욱 부합하고 드러남이 크도다.”“나 소자(小子), 지식이 부족하여 자덕(慈德)의 지극히 어지심을 찬양하지 뭇하오며…그러나 정성에 있고 글에 있지 아니하니…오직 있는 그대로 기록할 따름이니라…자교(慈敎·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삼가 기록하노라.”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의 친필 글씨. 덕온공주는 공주라는 신분임에도 궁체를 능숙하게 썼다. 덕온공주는 숨겨진 한글명필이었다.|문화재청 제공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1844)의 ..
'국왕 비서실장' 황희의 인사농단…“못참겠다” 익명서 올린 재상들 “이조를 담당하는 지신사(도승지) 황희는…자기와 친한 인물을 임금(태종)께 여러번 칭찬해서 벼슬에 임명하니 재상들이 매우 싫어했다. 좌·우의정이 천거한 인물들을 배척하고 자기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1408년(태종 8년) 2월4일 기사이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지신사(이하 도승지) 황희(1363~1452)가 인사전횡을 휘둘러 재상들마저 ‘패싱’했다는 것이다. 기사내용을 뜯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1534년(중종 29년) 농암 이현보가 도승지 남세진 등 승정원 동료들과의 모임을 기념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의 대통령비서실과 같은 승정원은 단순히 왕의 명령만 출납하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실학자 안정복이 말했듯이 ‘승정원은 왕의 출납을 맡아 옳은 것은 아뢰고, 부당한 것은 거부했으니’ 그..
고려의 장인 '동똥'이 제작한 개성 만월대 기와 ‘동똥이, 혜문 스님, 성광 스님….’ 2007~2015년 사이 남북공동조사단이 7차에 걸쳐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한 명문자료는 240점 정도이다. 그중 수키와(86점)와 암키와(133점), 수막새(11점), 암막새(1점) 등 제작지와 제작자를 나타내는 명문기와가 대부분이다.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명문은 기와제작자 중 한사람인 듯한 ‘동똥(冬 叱밑에 同)’의 존재이다. 2015년 남북공동 조사단의 개성 만월대 제 7차발굴에서 찾아낸 명문기와. 월개요에서 ‘동똥’이라는 기와장인이 제작한 기와라는 의미이다. 사진은 글자를 도드라지게 처리한 모습.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지난 10일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왕경과 고려 개경’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신라 월성과 고려궁성 출토유물의 명문비교’)에..
조선시대 감찰반과 청와대 감찰반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공직기강이 도마 위에 오르자 청와대는 지난달 대책을 내놨습니다.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꾸고 감찰반의 인적구성을 다양화하는 등의 개선책을 마련했습니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에 특별감찰반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화문 날개에 설치된 동십가각. 조선시대 감찰이 이곳에서 궁궐을 출입하는 관리들을 감시했다.기자가 ‘대통령 비서실 직제령’ 제7조(감찰반)를 찾아보니 “1)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2)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3)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한 감찰업무를 수행한다”고 했습니다. 임명 한 뒤에도 감찰할 필요가 있지만 새로운 인재를 임명하기 전에도 흠결 있는 인물인지 아..
"누가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했나. 철의 나라는 신라였다" 언젠가부터 ‘가야=철의 왕국’이라는 등식은 공리처럼 여겨졌다.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다. 즉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모두 이곳의 철을 가져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다.그러나 ‘동이전’의 내용을 뜯어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울산박물관이 진시중인 ‘달천철광(광산)’ 코너 전시품. 기원전 1~기원후 3세기 토기들이 발굴됐고, 이중에는 왜와의 교역사실을 일러주는 야요이 토기편이 조사됐다.|이도학 교수 촬영 제공■헷갈리는 는 알려지다시피 중국 서진의..
가야인들은 왜 봄철 밤하늘에 뜬 남두육성을 새겨넣었을까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은 왜 남두육성을 무덤방 덮개돌에 새겨 넣었을까. 지난해 12월 18일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인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 125개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별자리가 새겨진 구덩식 돌덧널 무덤방의 벽면이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부부조각상에 새겨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을 죽음을, 남두육성을 삶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여겼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전갈자리와 궁수자리의 내력 덮개돌에서 확인된 별자리 중 전갈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리온과 관계가 깊다. 사냥꾼인 오리온은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없다”고 떠버리고 다녔는데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제우스의 부인 헤라가 오리온을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