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2) 썸네일형 리스트형 올빼미 같은 인간…그 치욕적인 욕 요즘 남편들은 ‘오징어’라는 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못생긴 남자’라는 뜻이랍니다. 왜 하필 ‘오징어냐’고 또 물으니 평면적이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는 오징어를 닮았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고금을 통틀어 오징어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그 어원이 ‘까마귀 도적’ 즉 오적어(烏賊魚)에서 비롯된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먹물로 바다를 흐리게 해서 먹이를 잡는다는 비열한 이미지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엔 선명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이 떨어져나가 나중엔 빈종이로 변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먹물은 ‘사기계약’ ‘거짓약속’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억울합니다. 그렇게까지 폄훼될 동물이 아니기 때.. '오징어' 남편의 절규와 송중기 요즘 남편들은 ‘오징어’라는 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못생긴 남자’라는 뜻이랍니다. 왜 하필 ‘오징어냐’고 또 물으니 평면적이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는 오징어를 닮았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고금을 통틀어 오징어 이미지는 좋지 않습니다. 그 어원이 ‘까마귀 도적’ 즉 오적어(烏賊魚)에서 비롯된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먹물로 바다를 흐리게 해서 먹이를 잡는다는 비열한 이미지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엔 선명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 흔적이 떨어져나가 나중엔 빈종이로 변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먹물은 ‘사기계약’ ‘거짓약속’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억울합니다. 그렇게까지 폄훼될 동물이 아니기 때.. 광종의 어머니 사랑이 담긴 절터, 그곳에서 발견된 밀봉그릇 1978년, 당시 충주지청으로 발령받은 유창종(검사)과 장준식(당시 충주북여중 국사교사·현충청대 교수) 등 5명이 만든 답사모임이 있었다. 정식 이름도 없이 그저 기와를 주으러 다니는 모임 정도라고나 할까. 당시만 해도 기와는 문화재 축에도 끼지 못하고 천대받고 있었다. 다른 고미술을 사면 덤으로 끼워주는 게 바로 기와였으니까. 숭선사에서 발견된 밀봉된 그릇. 그 안의 액체가 무엇인지 수수께끼다. ◇예성동호회의 잇단 쾌거 그런데 78년 9월5일 어느 날, 이 ‘기와를 줍는 모임’이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였다. “이거 이상한 돌이네요.” 식당에 디딤돌 같은 돌이 있었는데 그 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은가. 연꽃무늬라. 사람들은 ‘고려사’ 기록을 언뜻 떠올렸다. 1277년 충렬왕 3년에 충주성을 개축하.. 카이저 베켄바워 몰락하나 흔히 ‘축구황제’의 수식어가 펠레에게만 붙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71)의 별명도 ‘카이저(Der Kaiser·황제)’다. 선수 시절의 화려함만 따진다면 펠레(브라질)나 마라도나(아르헨티나), 크루이프(네덜란드) 등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곧잘 ‘헛다리 예측’으로 비웃음을 사는 펠레나 마약 복용 등으로 망가진 마라도나에 견줄 수 없다. 선수(주장)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고, 클럽(바이에른 뮌헨)에서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룬 유일한 축구인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바이에른 뮌헨 회장 등 축구행정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레전드 업계’에도 급이 있다면 베켄바워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야 할 것이다. ‘리베로(자유인) 시스템’을 완성시킨 전술혁명가로도 유명하.. 축구영웅 크루이프의 죽음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68)는 스포츠계의 상식을 초월한 인물이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다. 경기 중 전반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가 되면 잽싸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말이다. 훈련도 빼먹기 일쑤였다. 시건방도 무진장 떨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훈련에 관심도 없으면서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느냐는 질문에 “없다. 날 TV 앞에 앉혀놓을 유능한 선수가 없으니까…”라 너스레를 떨었다. 슈퍼스타의 상징인 9번이나 10번 대신 14번을 단 이유를 두고도 “9번은 디 스테파노, 10번은 펠레가 이미 달고 있으니까 헷갈릴까봐”라며 으쓱댔다. 그의 자부심 대로 그의 이름은 디 스테파노-펠레-크루.. 감은사엔 문무왕의 사리가 있다 1997년 “감은사 동탑엔 문무왕의 사리가, 서탑엔 부처님의 사리가 각각 봉안됐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추정은 불교계를 뒤집어 놓았다. 우선 연구소 측의 주장. 문무왕은 처음으로 서역식 화장 장례를 도입한 ‘불심 깊은 왕’이었다. 왕을 화장했을 때 사리가 나왔다면 분명 그의 원찰인 감은사, 그것도 동탑에 봉안했을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감은사 동탑에는 문무왕의 사리가 봉안된 것으로 파악했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서탑과 어깨를 나란히했다는 주장이다. 서탑의 경우 사리병 장식물이 부처님의 열반을 향연하는 주악(奏樂)의 천인(天人)들인 반면, 동탑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문무왕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인 사천왕이 장식됐다. 문무왕은 재세기간동안 사천왕사를 건립했을 정도로 사천왕 사상과.. 용이 되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문무왕 “앗.” 탑을 바라보던 김재원(당시 국립박물관장)의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3층 석탑 해체를 위해 높이 12m, 사방 160㎝의 3층 탑신 위에서 일하고 있던 연구관 김정기(최근 작고)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3층 지붕받침돌을 연결한 나비장이음이 김정기의 무게 때문에 떨어지면서 옥개석이 기우뚱, 무너져 내렸다. 김정기 역시 추락사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순간 김정기는 기지를 발휘하여 탑 옆에 세워둔 비계목으로 건너뛰었다. “살았다.” 김재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명횡사할 뻔했던 김정기는 일본 메이지(明治大)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쿄대(東京大) 건축학 연구실에서 한국건축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의 사찰 터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재원이 일제시대 때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반환회담에 참.. 고려시대 개경 8학군은 어디였을까 최근 중국발로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베이징 뒷골목 원창(문창·文昌) 지역의 쪽방(11.4㎡)이 10억원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입니다. 3.3㎡당 2억8000만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집값이었습니다. 왜 일까요. 학군 때문입니다. 이 동네 이름이 우리 말로 ‘문창(文昌)’이라는 것도 ‘맹모삼천’을 부추겼습니다. 도교에서 ‘문창’은 ‘학문의 신’, ‘공부의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문창’을 모신 사당에 기도한 뒤 과거를 치렀답니다. 베이징의 문창, 강남의 대치동 같은 이른바 ‘교육특구’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도 있었습니다. 해동공자의 별명을 갖고 있는 최충의 사립학교, 즉 문헌공도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지금의 대치동처럼 고려시대 유수 학원이 있었던 동네도.. 이전 1 ···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