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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문양과 불교 卍자는 같은 문양이다 卍 문양의 뜻은 심오하다. 고대인들은 卍을 태양의 빛, 혹은 우주의 순환 및 윤회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겼다. 특히 卍은 석가모니 부처 이전부터 인도의 태양신인 비슈누의 상징 문양이었다. 비슈누의 가슴에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털에서 발하는 서광을 가리켰다. 불교에서 卍은 좋은 징조를 가리키는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여겼다. 석가모니의 가슴과 발바닥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卍 문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문양에 지나지 않았던 卍은 측천무후 시대인 693년 정식글자로 거듭났다. 즉 卍자를 ‘길상과 만덕(萬德)이 모였다’는 뜻을 새겨 만(萬)으로 읽었다. 부처님은 물론 중생의 마음 속에 잠재한 불성(佛性)을 상징하고, 상서로운 조짐을 안겨주는 글자로 사랑받았다. 이렇게 동양에서는 만덕(萬德)의 조짐인 卍문양을 ..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지은 까닭은 역사서를 읽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대체 임금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름을 찾아 보면 또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임금의 이름은 외자일까. 다시 임금의 한자 이름을 찾아보면 또다른 궁금증이 피어납니다. 임금의 한자이름은 왜 이렇게 한결같이 어려울까. 그렇습니다. 임금의 이름은 절대다수가 외자였으며, 그것도 어려운 한자만 골라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조시대 임금이나 황제의 이름을 둘러싼 갖가지 사연들을 풀어 놓으려 합니다. 여기에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씨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황제를 사대(事大)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했던 가슴아픈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팟캐스트 65회 주제는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지은 까닭은?’ 입니다. “에서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
'이혼도장 찍고' 출가 해볼까 카필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가 출가한 것은 29살 때였다. 어느 날 궁궐 밖에서 밭갈이하는 농부, 새에게 잡혀먹는 벌레, 쇠약한 노인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 게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뇌를 눈치채고 혼인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식까지 낳은 석가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고뇌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해 출가의 길을 택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석가는 불면과 단식, 결가부좌 등 처절한 고행으로 깨달음을 구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장면을 새긴 조각유물. 석가의 출가는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를 깨우치려는 혹독한 수행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출가의 의미는 퇴색한다. 자발적인 출가가 아니라 의지할 곳이 없거나, 세금과 징집을 모면하거나, 살 길이 없는 자들의 도피수..
'우주식물' 백일홍의 반전매력 흔히 백일홍이라는 일컬어지는 식물은 두가지다. 중국 원산인 목백일홍과, 멕시코 원산인 꽃백일홍이다. 꽃백일홍은 원래 잡초에 불과했지만 독일인인 진(Zinn)이 발견한 이후 화훼가들이 개량해서 관상용으로 재배했다. 반면 동양의 문헌에 다수 등장하는 목백일홍은 배롱나무를 가리킨다. 이 ‘목백일홍’의 이름은 가슴 찡한 전설을 담고 있다. 우주인 스콧 켈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핀 백일홍 사진을 트위터에 올럈다.|스콧 켈리 트위터 캡처 옛날 어떤 남자가 제물로 낙점된 처녀를 구한다며 괴물과 싸우려고 떠났다. 남자는 처녀에게 ‘성공하면 흰 깃발을,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100일 후 괴물과 한판 승부를 펼치고 돌아오던 남자의 깃발은 붉은 색이었다. 처녀는 남자가 죽은 줄 알고 크..
원숭이 똥구멍만도 못한 인간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원숭이는 흔히 잔나비라 했습니다. 원숭이띠보다는 잔나비띠라 하는데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 했을까요. 사실 잔나비가 더 먼저였답니다. 원숭이라는 한자어는 18세기부터나 등장한답니다. 그러나 ‘빠른(잰) 원숭이(납·申)’라는 뜻의 잔나비는 16세기 정철의 가사 ‘장진주사’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잔나비가 다소간 원숭이를 폄훼하는 말로 일컬어집니다. 사실 잔나비, 즉 원숭이라는 동물은 사람의 얼굴로 사람의 흉내를 낸다고 해서 ‘혐오·흉악’스러운 인물의 상징으로 꼽혔죠. 예컨대 조선을 침략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태어난 해(1536년)와 태어난 월·일·시 모두가 병신(丙申)이어서 원숭이왕(猿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간신이거나 대역죄인..
돌부리에 신발 털다가 찾아낸 단양 적성비의 비밀 1978년 1월6일. 정영호 교수가 이끄는 단국대조사단이 충북 단양을 찾았다. 온달의 유적을 찾고, 죽령을 중심으로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밝히는 학술조사를 벌이기 위함이었다. 조사단이 찾아가려고 한 곳은 단양 읍내 뒷산인 성재산(해발 323m·적성산성)이었다. 오후 2시. 조사단은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뒤덮은 산에 올랐다. 정영호 교수의 회고담. “성 안에는 옛날 식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흩어져 있었지. 대부분이 신라토기였고. 학생들에게 ‘글자가 있는 기왓장을 수습하면 맥주 한 병씩 준다.’고 했는데….” 하지만 별무신통. 간밤에 내린 눈에 녹아 진탕이 되었고, 조사단은 신발에 묻은 흙을 털려고 두리번거렸다. 마침 직경 한 뼘쯤 되는, 흙묻은 돌부리가 지표면을 뚫고 노출돼 있었다. 안성맞춤이었다. 조..
의리의 사나이, '정몽주으리'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질문만큼이나 곤란한 것이 바로 이성계(혹은 정도전)가 나쁜 사람이야, 정몽주가 나쁜 사람이야 하는 질문입니다. 아들이나 딸이 그렇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네가 보기에 나쁜 사람이면 나쁜 사람이고, 네가 보기에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시답지 않은 이야기기냐고 하겠지만 그 말이 정답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왜냐면 역사라는 것은 해석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읽고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전적으로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 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여말선초의 사건과 인물을 집중해서 다루는게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나 처럼 기록도 풍부한데다 워낙 드라마틱한 상황이 많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개국의 주역들이..
백제 손바닥에 있던 마한-나주 복암리(하) “마한의 시작은 BC 3세기 무렵이다. 영산강 유역에서 백제와는 전혀 다른 정치체를 유지하며 AD 6세기까지 존재했다.” 이것이 이른바 최근 대두되고 있는 마한론의 실체이다. 나주 복암리 등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나는 주구토광묘(도랑을 두른 무덤)와 옹관묘, 그리고 전방후원형 고분을 중심으로 한 초기횡혈식 석실묘 등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고대사다. 결국 마한은 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지해온 고대국가라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백제와는 다른 문화를 유지했다고 백제와는 전혀 다른 정치체, 즉 고대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백제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800년간이나 정치체를 유지했다면 왜 마한과 관련된 역사기록은 없을까.’ 차근차근 풀어보자. 마한에 대한 기존의 통설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