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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에스트로의 퇴장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듣는 음악의 문외한들이 한번쯤 갖게 되는 궁금증이 있다. 작곡자도 아닌데다 악기도, 연주도, 소리도 내지 않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향한 박수갈채를 독차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기가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영국의 음악학자 한스 켈러는 “음악만 들으면 되지 지휘자는 불필요한 존재”라 주장했다.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칼 플레시도 “지휘자처럼 사기꾼이 진입하기에 좋은 직종이 없다”고 했다. 물론 음악이 단순했던 시절에는 수석 연주자의 신호에 따라 무난히 박자를 맞췄다. 17세기 베니스에서는 오페라의 아버지로 일컫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를 위해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maestro di cappella·교회 음악감독)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최고의 음악가를 고용해서..
조선의 임금들도 순식간에 잿더미 되다 그랬으니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진의 제작은 대개 3종류로 나뉜다. 임금의 생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는 도사(圖寫)와, 임금의 사후에 그리는 추사(追寫)가 있다. 또 이미 그려진 어진이 훼손됐거나 혹은 새로운 진전에 봉안할 경우 기존본을 토대로 그려내는 모사(模寫)가 있다. 어진을 제작하려면 우선 임시 관청인 도감을 설치하고 화원을 선발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이는 임금의 얼굴을 직접 그리는 어진화사였다. 대신들이 당대 초상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았다. 때에 따라서는 시험을 거쳤다. 예컨대 1713년(숙종 39년) 숙종 어진을 도사할 때 당대 내로라하는 화가들을 추천받아 모아놓고는 각각 초상화 초본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선발된 ..
세종이 고려임금의 어진을 불태운 까닭은 옛 초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쭈글쭈글한 노인들만 주인공으로 등장했을까. ‘꽃청년’들은 왜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수양도 덜됐고, 학식도 부족하며, 경륜도 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상화에 등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저 사람을 본떠 그린다는 의미의 ‘초상(肖像)’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寫眞)이라 했습니다. 내면의 ‘참됨(眞)’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아직 모든 면에서 설익은 젊은이들은 ‘사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터럭 한올, 털끝 한오라기(一毫一髮)’라고 허투루 그릴 수 없었습니다. 임금의 초상화도 어진(御眞)이라 했습니다. ‘임금의 참됨’을 드러내는..
올해의 단어와 혼용무도 1999년 일본 통신사 NTT 도코모의 구리타 시게타카(栗田穰崇)가 200여개의 그림문자를 만들었다. 그림(え·繪)과 문자(もじ·文字)를 합성한 ‘이(에)모지’라 했다. 이모지는 컴퓨터 자판의 글자 및 부호로 감정을 표현한 이모티콘과 달랐다. 유니코드 시스템을 이용한 실제 그림이었다. 이모지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기 등에 도입되면서 삽시간에 퍼졌다. 최근 영국의 옥스포드 사전은 ‘이모지’ 가운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을 ‘2015년의 단어’로 선정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난민(refugee) 등 쟁쟁한 후보를 제쳤다. 캐스퍼 그래스워홀(Grathwohl) 옥스포드 회장은 “알파벳 같은 기존문자가 강렬한 시각 효과와 빠른 속도..
왜 일본식 무덤이 영산강에 있을까-나주 복암리(중) 1996년 영산강 유역에 자리잡은 나주 복암리 3호분의 발굴성과는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럴 만했다. 3m에 가까운 대형옹관이 잇달아 출토되고(26기), 금동신발과 장식대도, 은제관식 등 영산강 유역과 백제·일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어디 유물만이랴. “3호분 한 분구에서 41기나 되는 다양한 무덤들이 나왔지. 목관묘-옹관묘-석곽옹관묘-수혈식석곽묘-횡구식석곽묘-횡혈식석곽묘, 뭐 이런 식으로 줄줄이 나왔어…. 어때요. 옛 사람들이 후손들을 생각해서 타임캡슐을 묻어둔 것 같지 않아?”(고고학자 조유전 선생) 그러고 보니 옹관의 생김새가 마치 캡슐 같기도 하다.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함평 신덕고분. 영산강 유역에는 5세기 말부터 약 50년간 이런 일..
혼용무도, 혼군인가, 용군인가, 폭군인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전세계적으로 발표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정리해서 한글자나 한단어, 한문장으로 축약해서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들’입니다. 우리의 경우엔 교수신문이 한 글자가 아니라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하는데 올해는 ‘혼용무도(昏庸無道)’가 꼽혔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가 무도한 정치를 했다는 뜻입니다. 너무 혹독한 평가가 아닐까요? 아니면 그런 평가를 당연히 받아야 했을까요. 팟 캐스트에서 ‘혼군과 용군, 그리고 폭군, 아니면 성군과 현군, 명군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시고 평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61회 주제는 ‘혼용무도, 혼군과 용군 사이…’입니다. 문란한 지도자의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다. 폭군, 혼군(昏君 혹은 暗君), 용군(..
고대사의 블랙박스 열렸다-나주 복암리(상) 1995년이었다. 전남 나주시는 영산강 중류, 즉 나주 다시면 너른 들에 자리잡고 있는 복암리 고분군(당시 전라남도 기념물 136호)에 대한 정비복원을 계획했다. 특히 이 가운데 3호분은 어느 종가의 선산이었는데, 주변 경작으로 계속 분구가 유실되어 나가자 복원계획을 세운 것이다. 기초조사는 전남대 박물관이 맡았다. “그때까지는 3호분을 비롯해 4기의 고분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칠조산(七造山)이라고 했어요. 분구(봉분)가 7개가 있었다는 얘긴데, 3기는 1960~70년대 경지정리로 삭평된 상태였죠.”(임영진 전남대 교수) 복암리 고분군 발굴모습 ■ ‘처녀분이다!’ 그 해 11월27일부터 한 달간 실시된 당시의 조사(1, 2, 3호분)는 말 그대로 정비복원을 위한 기초조사였다. 정식발굴이..
대통령 수명이 짧다고? 새빨간 거짓말 “잦은 흉년 때문에 노심초사하느라 수염이 하얗게 셌다.” 1699년 숙종 임금이 어의에게 업무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토로했다. 정조는 1799년 “백성과 조정이 염려되어 밤마다 침상을 맴도느라 늙고 지쳐간다”고 괴로워했다. 당선직후인 2009년의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주름과 흰머리가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1425년 병세가 위중했던 세종은 만일의 흉사에 대비해 관까지 미리 짜놓고 명나라 사신단을 맞이했다. 죽음을 무릅쓴 외교였던 것이다. ‘만기친람’이라는 말도 임금이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만가지(萬機)라 해서 나온 것이다. 하버드 의대 아누팜 제나 교수팀은 “1722~2015년 사이 선거에서 승리한 17개국 지도자(대통령·총리) 279명과 낙선한 261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