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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백제 한성백제의 출현(하) 1998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체가 된 풍납토성 발굴이 시작됐다. 성벽 안쪽에서 한성백제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백제인들이 쌓은 성벽의 축조방법도 초미의 관심거리였기에 발굴이 시작된 것이었다. 1920년대 풍납토성 모습. 해자, 즉 성을 막기위한 주변의 도랑시설이 보인다. ◇감개무량한 발굴 “높이는 한 6~7m 정도나 될까. 폭은 한 10여m?” 애초에 발굴단은 현존하는 성의 모습으로 볼 때 그 정도려니 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와. 이게 뭐야.” 발굴기간 내내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끝도 없는 판축 토루와 성벽을 보호하는 강돌·깬돌이 열 지어 있고 성벽의 흘러내림을 방지하는 수직목과 식물유기체들. 발굴 결과 폭 43m 이상에 현존 높이 11m에 이르는 사다리꼴 형태의 토성임을 알게 되었다..
잃어버린 백제, 풍납토성의 발견비화(상) “나는 마땅히 사직을 위해 죽겠지만 너는 피하여 나라의 계통을 잇도록 하라.” 개로왕이 비참한 최후를 마친 475년 9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개로왕은 아들 문주에게 ‘피를 토하는’ 유언을 내린다. 한성백제(BC 18~AD 475년) 시대가 비극적인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와 함께 한성백제의 500년 도읍지 풍납토성도 패배자의 역사 속에 파묻혀 1,400여 년간이나 잊혀져 갔다. 그러던 1925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이름조차 없었던 풍납토성의 서벽마저 대부분 유실된다. 하지만 그 순간 잠자고 있던 한성백제가 깨어날 줄이야. 풍납토성 유구. 493년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을축년 대홍수로 잠을 깬 한성백제 1925년 여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가 한강변을 휩쓸었다. 한강이 범람했고, 강변에 ..
화성인, 태양풍의 침공에 짓밟히다 “화성의 대기는 지금도 1분당 100g씩 사라진다. 태양풍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이 불모지로 변한 이유가 ‘태양풍 탓’”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구가 강력한 태양풍을 뚫고 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모두 지구 자기장 덕분이었다. 이미 죽은 행성인화성에는 자기장이 없다. 중대발표를 예고하는 등 호들갑을 떤 것 치고는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NASA의 발표는 잊고 있던 인류의 궁금증을 새삼 자극했다는 점에서 다소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태양이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양성자+전자)는 시간당 140만㎞의 속도로 46억㎞까지 내달린다. 10만도에 이르는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 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행성은 없다. 그 태양풍이 초속 400㎞ 속도로 지나치면서 화성의..
중국의 바둑외교가 던진 화두 바둑을 다른 말로 난가(爛柯)라 한다. ‘기원전 700년 무렵 진(晋)나라 사람 왕질이 나무 하러 갔다가 두 동자의 바둑을 넋놓고 관전한 뒤 돌아가려 했는데, 들고 있던 도끼자루(柯)가 폭싹 썩었다(爛)’는 고사에서 나왔다. 맹자는 “술 마시고 박혁(바둑과 장기)을 하며 부모를 돌보지 않은 것이 두번째 불효”( ‘이루 하’)라 했다. 물론 요 임금이 ‘못난 아들(단주)의 어리석음을 바둑으로 가르쳤다’()는 전설도 있다. 바둑이 중독성 강한 오락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절친인 네웨이핑(섭衛平) 9단에게 바둑을 배운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바둑에서 치국(治國)의 도리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중국 경제를 바둑에 비유하면서 “두 눈(眼)이 나야 바둑돌이 사는데 안정적인 ..
어느 사관의 절규,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사관 위엔 하늘이 있다’고 한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직필 전통을 계승하고….” 최근 28개 역사 관련 학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서 자랑스런 사관선배들의 직필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했습니다. 궁금합니다. 과연 지금 위기에 빠진 역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존경하는 바로 그 ‘사관 선배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조선조 태종시대의 사관 민인생과 홍여강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계급은 7~9품에 불과한 전임사관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포털사이트 인물 검색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을 비롯한 태종 시대의 사관들은 ‘제발 내 곁으로 오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싫어한 태종 임금의 곁을 절대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종이 누굽니까. 어린 이복동생들을 ..
광주에서 발견된 2000년 전 현악기 지난 1992년 5월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사였던 조현종이 광주 신창동을 찾았다. 국도 1호선 직선화 공사가 한창이던 현장이 아무래도 걸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작정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42년전에도 어린아이 독무덤이 발굴된 곳인데요. 그렇다면 당대 사람들이 경작한 농경지 유적이 있을 게 분명한데 아무런 조사 없이 공사가 강행되니까요. 고고학자들이 공사현장을 찾으면 담당자들이 무척 싫어하니까 신분을 속이고 이리저리 살폈죠.” 독무덤이 발견된 곳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연약지반, 즉 농경지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유심히 살피던 조현종은 극적으로 2,000여 년 전 역사의 실마리를 잡는다. “2,000년 전 홍수 등에 의해 범람했던 흔적인 퇴적층에서 모래와 흙을 긁어모아 비닐에 담..
소황제와 6개의 지갑 ‘샤오황디(소황제·小皇帝)’는 1979년 시작된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산물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격동기를 겪은 부모세대는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하나 뿐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꼬마황제로 떠받들며 키웠다. 이 정책은 중국 사회의 근간을 뿌리채 바꿔놓으며 갖가지 에피소드와 신조어를 양산했다. 예컨대 샤오황디에겐 지갑이 6개나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친·외가 할머니·할아버지 4명과 부모 2명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자녀)에게 따로 용돈을 챙겨준다는 뜻이다. 집안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성장한 샤오황디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웨광쭈(月光族)로 전락하기 일쑤다. 웨광쭈는 매달(月) 타는 월급을 자신 만을 위해 몽땅 써버리는(光) 사람들(族)을 가리킨다. ..
화장실에서 건진 인류의 역사 이번 주는 화장실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를 하렵니다. 무슨 화장실에 역사가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 역시 인간의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인간의 틈에서 살지 않는다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필요없었겠지요. 사람 틈에 끼어있지 않으면 굳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일찍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화장실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라 했습니다.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곳(화장실)은 분명 혼자서도 첫날 밤을 치른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는 경이로운 곳, ~당신이 그 어느 것도 몸에 지니지 않는 한갓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겸손의 장소~ 그 곳은 인간이 휴식을 취하는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