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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혈서(血書)인가 기생에게 홀딱 빠진 남자가 ‘사랑한다’는 혈서를 써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후 기생의 집을 다시 찾은 남자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남자가 “혈서까지 써주었는데 어찌 된거냐”고 분기탱천하자 기생은 혈서를 한가득 담아놓은 보따리를 던졌다. “이 보따리에서 당신이 쓴 혈서 찾아가세요.” 웃자고 전해진 이야기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 여인을 향한 뭇 남성들의 충성맹세가 혈서 보따리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한데 그 충성맹세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 김기룡·강기순 등 12명은 1909년 연해주에서 손가락을 끊어 혈서를 썼다. 혈서의 내용은 ‘대한독립’이었다. 남자현 선생은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이 괴뢰국인 만주국을 조사하러 하얼빈에 도착..
남근은 아니고…, 신라인의 지문도 있고… “단장님, 이건 꼭 남근 같습니다. 아무래도 안압지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 대학원생(성균관대) 신분으로 조사에 참여하고 있던 김성태가 흥분했다. 무덤 속에 퇴적돼 있던 흙더미 속에서 범벅이 되어 버린 유물 한 점을 들고 나왔다. 꼭 남근처럼 생긴 유물이었다. 용강동 고분에서 확인된 유물. 처음엔 남근이라고 판단했지만 목없는 흙인형 . ◇무덤에서 웬 남근이? 1986년 7월 18일. 경주 용강동 폐고분을 발굴 중이던 경주고적발굴단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널길, 즉 연도와 무덤 방이 닿는 곳에 마련된 빗장 문을 열고 들어가 무덤내부에 쌓여있는 흙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핏 보아 남우세스럽게 생긴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상한데. 그늘에서 흙을 잘 털어보도록 하지.” 마음이 찜찜했다. 무덤 속에 무..
'경우의 수', 그 지긋지긋한 악령 1994년 미국 월드컵 자료를 찾다가 ‘경우의 수’를 따진 기사를 검색했다. 스페인(2무)·볼리비아(1무1패)와 비겼던 한국(2무)이 독일(1승1무)과의 예선 최종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기사는 독일과의 전력차는 아랑곳 없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다 ‘일장춘몽’으로 끝을 맺는다. ‘독일이 혹 16강전에서 쉬운 상대를 고르려고 일부러 한국과 비겨서 조 2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즉 독일이 조 2위가 되면 비교적 쉬운 나라들로 구성된 A조 2위(루마니아·미국·스위스 등)와 16강에서 만날 수 있기에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은 헛된 기대와 달리 한국을 3-2로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촌스런 기사를 누가 썼나 기자 이름을 보니 어이없게도 ‘이기환 기자’였다. 낯이 ..
폐암투병 요한 크루이프, '아름답게 이겨주길…'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68)는 스포츠계의 상식을 초월한 인물이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다. 경기 중 전반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가 되면 잽싸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말이다. 훈련도 빼먹기 일쑤였다. 시건방도 무진장 떨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훈련에 관심도 없으면서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느냐는 질문에 “없다. 날 TV 앞에 앉혀놓을 유능한 선수가 없으니까…”라 너스레를 떨었다. 슈퍼스타의 상징인 9번이나 10번 대신 14번을 단 이유를 두고는 “9번은 디 스테파노, 10번은 펠레가 이미 달고 있으니까 헷갈릴까봐”라 으쓱댔다. 그랬으니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디 스테파노-펠레-크루이프-..
선조실록-수정실록, 어떤 역사였나 요즘 역사가 뜨거운 화두에 올라있는 때입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정권에 따라 역사서술을 바꿨던 과 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남긴 흔적….’ 뭐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조실록을 수정하게 된 것은 첨예한 당쟁의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선조실록은 애초부터 부실덩어리였다는 점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사관들이 사초책을 불태우고 줄행랑 쳐버리는 바람에 선조 즉위년(1567)~임진왜란 직전(1592년 4월) 사이 25년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개인기록들을 모아 겨우 실록을 만들었지만 부실덩어리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광해군대에 정권을 잡은 대북파가 사필을 잡고 역사를 농단하면서 더욱 ..
중국의 화장실 혁명 “사람들이 섞여 화장실에 있는데 한 사람이 아니다(人雜厠在上非一也).” 후한 시대의 사전인 은 ‘측(厠·화장실)’의 또 다른 한자인 ‘잡(雜)’을 풀이하면서 ‘본래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북적대며 거리낌없이 볼일을 본다는 의미의 글자’라 했다. 십수년 전까지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악취를 풍기는, 그것도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것도 낯선 풍경인데, 볼일을 보면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던 경험이 있었을 테니까…. 백제시대 공동화장실 복원도, 익산 왕궁리 유적 서북쪽 공방근처에 있었다. 5칸-3칸-2칸짜리 화장실 3개동이 있었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하지만 후한 시대 즈음 서양의 로마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벌건 대낮 광활한 광장에 구멍..
역사학자들의 봉기 조선조 태종에게 귀찮은 존재가 있었다.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잘잘못을 기록해대는 사관이었다. 1401년 태종이 화를 터뜨리며 ‘사관 금족령’을 내렸다. “편전은 임금이 쉬는 곳이야. 사관은 들어오지마!” 고구려 벽화 속에 나타난 사관의 모습. 그러나 사관 민인생은 고개를 세우고 대꾸했다. “정사를 논하는 편전에 사관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찌 기록한단 말입니까.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上有皇天).” 3년 뒤인 1404년 태종 임금이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임금이 급히 일어나면서 측근에게 입단속을 명했다. “이 일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勿令史官知之)”. 기막힌 일이다. 사관이 ‘쓰지말라’는 임금의 오프더레코드 명령까지 고스란히 에 기록했으니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최저가 임금을 살해했다...
비인류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 50회를 맞은 는 ‘비인류로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입니다. 요즘도 성소수자는 엄청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바티칸 고위 성직자까지 커밍아웃했지만 아주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진보적이며, 소수의 인권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는 비정상이라 말씀하시죠. 그런데 성소수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성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취향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신라 혜공왕부터 조선조 세종 임금의 며느리까지.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다룰 주제입니다.(경향신문 이기환 논설위원) “왕은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가 되었다. 첫 돌 때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늘 여자놀이를 하고 자랐다.”() 신라 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