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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의 수', 그 지긋지긋한 악령 1994년 미국 월드컵 자료를 찾다가 ‘경우의 수’를 따진 기사를 검색했다. 스페인(2무)·볼리비아(1무1패)와 비겼던 한국(2무)이 독일(1승1무)과의 예선 최종전을 앞둔 시점이었다. 기사는 독일과의 전력차는 아랑곳 없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다 ‘일장춘몽’으로 끝을 맺는다. ‘독일이 혹 16강전에서 쉬운 상대를 고르려고 일부러 한국과 비겨서 조 2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즉 독일이 조 2위가 되면 비교적 쉬운 나라들로 구성된 A조 2위(루마니아·미국·스위스 등)와 16강에서 만날 수 있기에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일은 헛된 기대와 달리 한국을 3-2로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촌스런 기사를 누가 썼나 기자 이름을 보니 어이없게도 ‘이기환 기자’였다. 낯이 ..
폐암투병 요한 크루이프, '아름답게 이겨주길…'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68)는 스포츠계의 상식을 초월한 인물이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다. 경기 중 전반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가 되면 잽싸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말이다. 훈련도 빼먹기 일쑤였다. 시건방도 무진장 떨었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훈련에 관심도 없으면서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느냐는 질문에 “없다. 날 TV 앞에 앉혀놓을 유능한 선수가 없으니까…”라 너스레를 떨었다. 슈퍼스타의 상징인 9번이나 10번 대신 14번을 단 이유를 두고는 “9번은 디 스테파노, 10번은 펠레가 이미 달고 있으니까 헷갈릴까봐”라 으쓱댔다. 그랬으니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디 스테파노-펠레-크루이프-..
선조실록-수정실록, 어떤 역사였나 요즘 역사가 뜨거운 화두에 올라있는 때입니다. 이번 주는 그래서 정권에 따라 역사서술을 바꿨던 과 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남긴 흔적….’ 뭐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조실록을 수정하게 된 것은 첨예한 당쟁의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선조실록은 애초부터 부실덩어리였다는 점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사관들이 사초책을 불태우고 줄행랑 쳐버리는 바람에 선조 즉위년(1567)~임진왜란 직전(1592년 4월) 사이 25년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개인기록들을 모아 겨우 실록을 만들었지만 부실덩어리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광해군대에 정권을 잡은 대북파가 사필을 잡고 역사를 농단하면서 더욱 ..
중국의 화장실 혁명 “사람들이 섞여 화장실에 있는데 한 사람이 아니다(人雜厠在上非一也).” 후한 시대의 사전인 은 ‘측(厠·화장실)’의 또 다른 한자인 ‘잡(雜)’을 풀이하면서 ‘본래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북적대며 거리낌없이 볼일을 본다는 의미의 글자’라 했다. 십수년 전까지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악취를 풍기는, 그것도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것도 낯선 풍경인데, 볼일을 보면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던 경험이 있었을 테니까…. 백제시대 공동화장실 복원도, 익산 왕궁리 유적 서북쪽 공방근처에 있었다. 5칸-3칸-2칸짜리 화장실 3개동이 있었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하지만 후한 시대 즈음 서양의 로마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벌건 대낮 광활한 광장에 구멍..
역사학자들의 봉기 조선조 태종에게 귀찮은 존재가 있었다.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잘잘못을 기록해대는 사관이었다. 1401년 태종이 화를 터뜨리며 ‘사관 금족령’을 내렸다. “편전은 임금이 쉬는 곳이야. 사관은 들어오지마!” 고구려 벽화 속에 나타난 사관의 모습. 그러나 사관 민인생은 고개를 세우고 대꾸했다. “정사를 논하는 편전에 사관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찌 기록한단 말입니까.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上有皇天).” 3년 뒤인 1404년 태종 임금이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임금이 급히 일어나면서 측근에게 입단속을 명했다. “이 일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勿令史官知之)”. 기막힌 일이다. 사관이 ‘쓰지말라’는 임금의 오프더레코드 명령까지 고스란히 에 기록했으니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최저가 임금을 살해했다...
비인류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 50회를 맞은 는 ‘비인류로 취급받은 역사속 성소수자’입니다. 요즘도 성소수자는 엄청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바티칸 고위 성직자까지 커밍아웃했지만 아주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진보적이며, 소수의 인권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는 비정상이라 말씀하시죠. 그런데 성소수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성정체성이 다른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취향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신라 혜공왕부터 조선조 세종 임금의 며느리까지. 이번 주 팟캐스트에서 다룰 주제입니다.(경향신문 이기환 논설위원) “왕은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가 되었다. 첫 돌 때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늘 여자놀이를 하고 자랐다.”() 신라 혜공..
반기문 총장, 비오는 태산에 왜 올랐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1)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다음날(지난달 4일) 산둥성 태산(泰山)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와 새삼스레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차기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총장이 중국 역대 황제들이 봉선(封禪), 즉 하늘신(封)·땅신(禪)에게 제사를 지낸 태산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대망을 품었던 김대중·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비롯, 손학규·김중권씨 등 유력한 정치인들이 오른 경험이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9월4일 우산을 쓰고 중국 산둥성 태산(泰山)을 등정하는 사진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공개됐다.|웨이보 반 총장이 태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린 것도 참새들의 입방앗거리가 됐다. 중국에서 ‘태산에 오를 때 비를 맞으면 큰 뜻을 이룬다’는 우중등태산(雨中登泰山)의 속..
남달랐던 조선왕실의 태교법 “나라를 세운 것은 임금을 위해서인가. 백성을 위해서인가.”(임금 영조) “임금도 위하고 조선도 위해서입니다.”(세손 정조) “대답이 좋지만 분명히 깨우치지 못했구나. 나라를 세운 본뜻은 백성을 위해 세운 것이다.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스스로를 받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봉양하기 위해서다. 민심을 잃으면 임금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느니라. 스승보다 더 백성을 두려워 해야 한다.”(임금 영조) 1575년 태어난 ‘경룡 아기씨’(광해군)의 태를 묻었다는 내용을 담은 태지석과 태항아리. 보물 1065호로 지정됐다. 1762년(영조 38년) 4월 25일 11살짜리 세손 이산(정조)이 69살 할아버지 영조 임금과 일문일답식 구술시험을 치렀다. 사부로부터 배운 지식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이날의 대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