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251)
팟 캐스트(3회) 환향녀, 화냥년, 그녀들의 외침 '환향녀’를 아십니까. 혹시 ‘화냥년’이라는 욕을 연상하십니까. 호로자식이라는 욕과 함께? 그러나 이 ‘환향녀’의 단어 속에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뭐 다 아시는 얘기겠지요. 그러나 막연하게 아시는 분들을 위해 ‘환향녀’에 담긴 여인들의 슬픈 역사를 풀어보려 합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뭇여인들이 오랑캐에게 절개를 잃지 않으려 강화해협의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은 “몸을 던진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연못에 떠있는 낙엽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은 어땠을까요. ‘적병에게 욕을 보느니 빨리 죽으라’고 다그쳐 자진하게 만들고, 혼자 살아남은 남정네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과 같은 기록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용케 살..
한국인의 조상은 서양인이다? “이건 제가 한번 해볼게요.” 1962년 3월 하순,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기원전 6세기) 발굴현장. 28살 신참 고고학자였던 이난영(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은 선배인 김정기 학예연구관을 졸랐다. 그 때까지 계획된 12기를 모두 발굴한 상황. 단 하나 남은 게 바로 상석부분이 파괴된 채 흙에 파묻혀있던 고인돌 1기(13호)였다. 너무도 빈약한 고인돌이었기에 신참 고고학자가 한번 욕심을 내본 것이었다. “깨진 것 같은데 한번 해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흙을 파던 신참 고고학자의 손 끝에 뭔가가 걸렸다. 석관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석관을 파헤치자 놀랄 만한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의 뼈였다. 오른팔은 배에, 왼팔은 가슴에 대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사진을 ..
팟 캐스트 1회-조선을 물들인 요망한 풀, 담배 5년 만에 조선을 물들인 남령초(담배)…. 그래서 에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담배를 요망한 풀, 즉 요초라 했습니다. 담배는 1616~18년 사이 들어왔는데, 처음 피운 이는 조선 중기 한문 4대가 중 한 사람이었던 장유였다고 합니다. 담배예절이 없었던 시절이라 어전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장인에게 훈쭐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장유는 “누가 이 신비로운 약제를 전했는가”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중흥군주라는 정조 임금은 지독한 골초였는데, 담배사랑이 끔찍했습니다. “담배를 치국의 도로 삼는다”고 하면서 “조선을 담배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포까지 했답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담배예절도 엉망이었는데요. 정조 시대의 명재상 채제공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새파란 유생들에게 “담배 좀..
팟 캐스트 2회-'삼전도의 굴욕사건', 그 전말 1637년 1월 30일은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일 것입니다. 평소 오랑캐라 낮춰보던 청나라에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림)의 굴욕 속에 항복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힌 백성들은 항복 후 도성으로 돌아가는 인조를 향해 외쳤습니다. “임금님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역사는 이 날의 치욕을 ‘삼전도의 굴욕사건’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는 항복의식이 벌어진 삼전도에 ‘청나라 황제 승첩비’를 세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문을 직접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아무도 글을 짓지 않겠다고 피했습니다. “한때의 굴욕을 참자”는 인조의 신신당부에 따라 글을 지어 청..
'욕실 속' 마릴린 먼로의 자태-광고로 본 50년 전 그 날 ‘장0자(18) 속히 돌아오라. 모든 것 해결됐다. 그이와 언니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경향신문 1964년 11월 7일에 ‘한 줄 광고’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개구쟁이 시절 이런 광고를 패러디 해서 “000야, 빨리 돌아오라. 아버지 바지(혹은 빤쓰) 줄여놨다”는 등의 농지거리를 나누며 실없이 낄낄 댔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보면 유치찬란한 농담인데,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참…. ‘한 줄 광고’를 더 살펴보니 30대 여인의 구혼광고가 눈에 띈다. ‘재혼, 가옥 고급 둘, 건실 남 원함.’ 1964년 11월 6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마릴린 몬로 주연의 영화 '나이아가라' 영화광고. "바스-룸 속에서의 몬로-염자(艶姿)!', 즉 목욕탕 속에서 빛나는 몬로의 농염한 자태를 선전하고 있다. '미성년자..
금관의 수난사, '도난에서 기생의 면류관까지' 1921년 9월, 경주 봉황대 바로 아래서 운영하던 박문환의 주막집은 장사가 무척 잘됐다. 사세확장’을 해야 했다. 그는 주막을 늘리기로 하고 뒤뜰의 조그마한 언덕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9월 23일 이상한 유물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소문이 삽시간에 경주 전역에 퍼졌다. 당시 경찰서 순경(미야케 요산·三宅與三)이 이 풍문을 듣고 곧바로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노서리 일대를 순시 중이던 미야케의 눈에 심상찮은 장면이 목격됐다. 어린아이 3~4명이 매립된 흙 속을 열시히 찾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들의 손에 청색 유리옥들이 들려 있었다. 1926년 10월10일 서봉총 발굴 현장에 온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 부처가 노출된 황금유물들을 쳐다보고 있다. 황태자는 이날 황금허리띠와 황금관을 ..
황룡의 꿈 서린 주몽의 도읍지, 오녀산성을 가다 “와!” 환런(桓仁)시내에서 8㎞ 쯤 달렸을까. 단풍이 곱게 물든 산 길을 굽이굽이 돌다가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상상 속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이, 혹은 천신이 강림하여 쌓은 거대한 성채(城砦) 같은 것이 떡하니 솟아있다. 이름하여 오녀산성이다. 옛날 산과 마을을 수호하던 선녀 5명이 흑룡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고 해서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고구려의 발상지라면서 5선녀가 어떻고. 흑룡이 어떻고 하는 전설이 좀 뜬금없기는 하다. 하지만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으니 어쩌랴. 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녹록치 않다. 필자는 강남문화원 답사단과 함께 중국 라오닝성(遼寧省) 환런시(桓仁市)에서 약 8㎞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휴전선이 찢어놓은 궁예의 야망 “저기 예쁘게 생긴 나무 한 그루 보이시죠? 그 나무를 따라 쭉 이어진 띠 처럼 펼쳐진 윤곽이 보이시죠?” “예” “저 윤곽이 바로 궁예가 건설한 태봉국 도성의 외성 흔적입니다.” 지난 25일 강원 철원 흥천원 벌판, 비무장지대가 눈앞에 펼쳐있는 평화 전망대. 필자는 파주 교하도서관의 탐방프로그램(‘길 위의 인문학’)에 참가한 답사객들에게 태봉국과 태봉국의 역사를 설명했다.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지역 문화유산 전문가인 박종용씨가 부연한다. “이곳에 와보니 궁예가 왜 이곳에 태봉국의 도읍을 정했는지 알 수 있겠죠?”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궁예의 태봉국도성. 군사분계선과 경원선이 4등분으로 도성을 갈라놓았다. ■비무장지대는 산이 아니다. 벌판이다. 최성숙 교하도서관 사서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