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자 思來者 (160) 썸네일형 리스트형 740매 말갑옷의 비밀…삼국시대 전투마는 조랑말 크기 무려 740매의 말갑옷 편, 유구의 무게는 28t. 그러나 신라 전투마의 크기는 현재의 조랑말과 유사하고…. 경주주 ‘쪽샘’ 지구는 4~6세기에 살았던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800여기가 집중된 곳으로 유명하다. 2007년부터 20년 예정으로 본격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쪽샘지구 C10호, 즉 5세기 전반 무덤인 목곽묘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말갑옷이었다. 쪽샘지구에서 확인된 말갑옷의 복원모습. 신라 기마병은 요즘의 조랑말 크기의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에는 이 말이 우량종이었을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발굴당시 말갑옷은 무덤 주인공의 널방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말갑옷의 목·가슴가리개 한쪽에는 사람 갑옷 중 투구와 목.. "신라판 펭수는 무슨'…소월리 항아리 얼굴은 가혹한 세리의 3단 표정이다" 혹자는 1500년 전 신라판 ‘이모티콘’이라 했고, 혹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펭수’라 했다. 지난해 12월초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3면 인면(사람 얼굴) 항아리’를 두고 참새 입방앗거리로 수근댄 표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토기 항아리 3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 무늬를 만들어놓았다.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된 ‘3면 인면 모양 토기 항아리’. 다양한 표정의 얼굴이어서 신라판 ‘이모티콘’이나 ‘신라판 펭수’라는 우스갯소리로 표현됐다. 손환일 서화문화연구소장은 ‘이 얼굴을 1500년전 백성들을 수탈한 가혹한 세리의 표정’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에 새겨진 3면의 얼굴이 이모티콘이나 펭수와 같이 귀엽고 선한 캐릭터가 아니라 혹정을 일삼는 ‘세리(稅吏·세금을 징수하는 관리)의 3단 표정’.. '광대 얼굴'의 부처님…'백제의 미소'로 복원해야 할 과정 얼굴은 광대 형상인데, 이름하여 국가가 지정한 ‘보물’ 문화재란다.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 법당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는 불상 이야기다. 언젠가인 지는 모르지만 불상의 본 얼굴은 떨어져 나갔고, 어느 시점에 누군가 새로운 얼굴, 즉 불두(佛頭)을 얹어놓았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시대 최대의 3차원 환조석불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목이 달아났고 누군가가 새로운 불두를 얹어놓았다. 하지만 ‘광대 형상’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복원해놓았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인자하거나 엄숙해야 할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다. 기왕 얹어놓을 요량이면 좀 제대로 만들 일이지, 왜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저렇게 흠결있는 불상인데도, 보물(제45호) 대접을 .. 올 11월까지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공동등재한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북한과 함께 비무장지대 일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추진일정을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11일 2020년 문화재청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남북간 협의를 거쳐 오는 12월까지 유네스코에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2년 1개월 여의 지루한 휴전회담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공산 양측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의 말뚝을 박고 있다.정 청장은 “비무장지대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탁월한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부합하는 논리를 도출하고, 오는 11월 잠정목록 신청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밝혔다. 남북간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어 올해.. '세종 코스프레'가 하고팠던 고종은···110년 만의 계조당 복원 이야기 “1443년(세종 25년) 5월12일 왕세자(문종)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집을 건춘문 안에 짓고, 이름을 계조당(繼照堂)’이라 했다.”()세종대왕 치세(재위 1418~1450)의 말년(1455~1450)에 왕세자(문종·재위 1450~1452년)가 임금 대신 정사를 맡았다. 이름하여 ‘대리청정’이다. ‘앉아있는 종합병원’이라 일컬을 정도로 각종 병마와 싸우면서 훈민정음 창제(1443년) 및 반포(1446년)에 몰두하기 위한 세종의 깊은 뜻이었다. 신하들이 지속적으로 세종의 대리청정 계획에 “아니되옵니다”라 반대했지만 그 뜻을 꺾지 못했다. 복원될 계조당. 계조당은 세종 연간에 왕세자(문종)의 대리청정 때 신하들을 조회하고 정사를 펼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후 고종도 왕세자인 순종을 염두에 두고 ‘.. '신라는 내 동생'…한반도 남부에서 현현한 고구려비의 정체 중원 고구려비를 말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예성동호회’라는 향토연구회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 중요한 국보(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보물(봉황리마애불상군·보물 1401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 뿐인가. 예성동호회는 고려 광종이 954년 어머니 신명순성왕후를 기려 지은 숭선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명문도 확인했다. 예성동호회는 1978년 당시 충주지청 유창종 검사와 장준식 현 충청대 교수 등이 만들었다. ■ 예성동호회의 개가 향토답사회 모임이 찾아낸 중원고구려비문 독해내용. 고구려가 신라를 형제국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당시에는 문화재 축에도 끼지 못했던 기와를 주우러 다녔고, 모임의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답사팀은 어느 식당의 디딤돌에서 연꽃무늬를 .. 어보 잃어버린 매국노 아들의 한마디..."돈 안되는 어보 때문에 골프놀이 못해?" ‘W B. Tom’. 조선의 자주외교 의지를 실현하려고 고종(재위 1863~1907)의 지시로 만든 조선의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뒷면에 새겨진 미국인 이름이다. 이 이름은 나라와 왕실의 상징이라는 국새에 찍힌 ‘수치의 낙인’이라 할 수 있다. 국권을 지키지 못한채 일제강점기에 전리품으로 일본 궁내청으로 ‘납치’되었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 와중에 어이없게 불법반출된 국새, 그 오욕의 역사가 바로 ‘W. B Tom’ 이름에 담겨있다. 그나마 이 ‘대군주보’ 국새를 구입하여 소장한 재미교포의 기증으로 상처 난 모습 그대로나마 환수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재미교포 이대수씨가 기증한 조선의 국새 ‘대군주보’. 미국인인 듯한 W B. Tom의 서명이 선명하다. 고종이 1882년 조.. 왕조실록이 센가, 승정원일기가 최고인가…난형난제의 경쟁 (이 기사는 문화유산채널에서 다룬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비교 영상을 첨부하면서 다시 올린 것입니다.) “(영조)임금이 어용(御容·임금의 초상화) 2폭을 내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나의 40살 때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 임금이 우의정(조현명) 및 예조판서(이종성)와 상의해서 어용의 봉안처를 정했다.”영조 20년(1744년) 8월20일 의 기사이다. 영조가 40살 때 제작한 자신의 초상화 2폭의 봉안처를 정했다는 다소 무미건조한 내용이다. 이번에는 같은 날짜 를 보자. 만 50살이 된 영조가 10년 전인 40살 때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가져와 신하들과 품평회를 열었다. “백낙천의 시에 ‘나이 많은 형이 어린 아우를 마주 대하듯 한다’고 했는데 그 표현이 맞습니다.”(조현명) “10년 사이에 이.. 이전 1 2 3 4 5 6 7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