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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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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 무용, 수렵…고구려 벽화를 빼닮은 '신라행렬도' 1500년만에 현현 말을 탄 인물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춤추는 듯한 모습이다. 활쏘는 사람들이 암수 사슴과 멧돼지, 호랑이, 개 등을 사냥하고 있고,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개(犬)와 함께 행렬하고 있다. 안악 3호분이나 무용총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렬도와 흡사하다. 그러나 신라 특유의 선각문 기하학 문양들도 보인다.5세기대 신라 귀족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쪽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빼닮았지만 신라 특유의 문화도 빼놓지않은 ‘신라 행렬도’를 새긴 토기가 발견됐다. 행렬이라는 큰 주제 아래 기마·무용·수렵의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복합 문양은 신라 회화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이다. 무덤제사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쪽샘 44호분 에서 확인한 ‘신라행렬도’ 토기. 굵은 선으로 된 부분이 찾아낸..
40대 여성, 그녀가 1500년전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였다 ‘영산강 유역 다시벌(평야)을 다스리던 마한 출신 토착세력의 지도자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영산강 유역 전남 나주의 넓은 평야에 복암리 고분군이라는 대형 무덤떼가 자리잡고 있다. 그중 복암리 3호분에서는 3m에 가까운 대형옹관묘가 26기 출토되고 금동신발과 장식대도 등 최상급 유구와 유물이 쏟아졌다. 3세기~7세기까지의 무덤이 모인 고분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복암리 3호분을 마한 출신 토착세력 지도자들의 고분이라 평가한다.영산강 유역 드넓은 평야를 다스린 5세기 말 6세기 초 마한 토착세력의 지도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정촌고분의 피장자는 40대 여성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발굴된 인골을 분석해 복원한 얼굴..
'메롱' 혀내민 압도적 크기의 신라 금령총 말모양 토기 ‘혀를 낼름 표현한 말모양 토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주 금령총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압도적인 크기(56㎝)의 말모양 토기가 발굴됐다. 그런데 이 말모양 토기의 모습은 혀를 쑥 내밀고 있었다.지난해부터 금령총(5세기말~6세기초)을 발굴해온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4월부터 진행된 2차발굴에서 무덤 둘레에 쌓는 돌(호석)의 바깥쪽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큰 56㎝ 크기의 말모양 토기 1점 등 30여개체의 제사용 토기들을 수습했다고 30일 밝혔다. 제사용 토기 안팎에는 말과 소, 기타 포유류 등의 동물뼈와 굴, 고동, 조개류 등 각종 패각류, 뚜껑접시, 토제방울, 유리구슬, 쇠스랑 등이 확인됐다.발굴된 말모양토기.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모습이 이채롭다. 왜 혀를 내민 모습으로 표현했는지는 알 ..
다시 미궁에 빠진 백제 무왕의 부인묘 선화공주인가, 사택적덕의 딸인가, 의자왕의 모친인가. 전북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중 백제 무왕의 무덤임이 사실상 밝혀진 대왕릉과 달리 소왕릉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익산 쌍릉 중 소왕릉을 발굴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19일 “지난해 대왕릉의 주인공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라는 증거를 사실상 확보했지만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소왕릉에서는 피장자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소왕릉의 주인공을 가늠할 명문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익산 쌍릉 중 소왕릉의 무덤길 안쪽에 서있는 묘표석. 높이가 120㎝에 달하는 거대한 돌이 무덤의 주인공을 지키고 있다. 발굴단은 이 묘표석이 무덤주인공의 사후 생활이 편안하도록 귀신을 지키는 벽사의 의미로 조성된..
흉노 군주는 왜 한나라 황후에게 ‘성희롱 편지’를 썼을까 약 2200년 전 중국 중원을 공포로 몰아붙인 종족이 있었으니 바로 흉노족이었다. 진시황 이후 어지러워진 중국대륙에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즉 산을 뽑을 만한 힘과 세상을 덮을 만한 기세를 자랑했던 항우마저 제압하고 다시 중국을 통일한 난세의 영웅은 한나라 개국시조 고조 유방이었다. 그러나 천하를 차지한 한나라를 우습게 본 종족이 흉노족이었다. 몇가지 일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발굴팀이 2012년 몽골 골모드에서 발굴한 동복(구리솥). 흉노인들은 이 청동솥을 가지고 다니면서 요리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에피소드 ①“잔말 말고 조공품이나 보내라” 언젠가 한나라 사신이 흉노의 풍습을 ‘오랑캐가 아니냐’면서 비아냥댄 일이 있었다. “흉노에서는 노인을 천대한다지요? 또 아비와 아들이 같은 천막에..
'사람 얼굴 모양' 출토된 무덤에서 알아보는 흉노역사 몽골 연구기관과의 협약으로 몽골 현지의 흉노유적을 발굴중인 국립중앙박물관 조사팀이 사람 얼굴 모양의 은제 허리띠 장식 등 흉노유물을 찾았다.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등과의 협약으로 몽골 헨티 아이막의 도르딕 나르스 유적의 흉노무덤 200여기 중 가장 큰 제160호 무덤과 그 무덤에 딸린 배장묘를 조사한 결과 사람얼굴모양의 은제허리띠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은제 허리띠 장식의 경우 비슷한 형태를 한 2점이 피장자의 허리부분에서 출토됐다. 이런 형태의 유물은 러시아내 몽골자치공화국인 부랴트 공화국의 차람 고분군 등 몽골 동북부 지역의 흉노무덤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 유물의 연대는 기원후 1세기 쯤으로 편년된다. 기원후 1세기 흉노족 무덤에서 발굴된 사람 얼굴 모양의 은제..
"성락원 바위글씨는 '나만의 집(장외가)'…누가 '추사 코스프레'했나"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사이트에 쓰여있는 명승 제35호 성락원 설명자료이다.성락원 영벽지 바위에 새겨진 글씨. 지금까지는 ‘장빙가(檣氷家)’로 읽어 ‘고드름이 열린 집’이라는 의미로 통용됐다. 그러나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빙’자는 ‘외(外)’자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연구원은 후한시대의 이른바 팔분법에 따라 표기된 용례를 들어 ‘장외가’는 ‘아름답지만,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성락원은 1992년 당시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이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국가문화재로 지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최근..
흥선대원군은 왜 경복궁 현판바탕에 검은색을 칠했을까 ‘박정희 친필 한글 글씨(1968년)→하얀색 바탕의 검은색 글씨(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문글씨·2010년)→검은색 바탕의 황금빛 동판글씨(2019년)’로…. 14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 회의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광화문 현판의 재복원방식이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글씨’로 결정됨으로써 9년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광화문 현판의 제작방식 논란은 2010년 광복절 광화문 복원에 맞춰 내건 현판이 불과 몇개월만에 균열이 생겼고, 문화재청이 그해 연말 전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함으로써 전개됐다. 하지만 광화문 현판 논쟁은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가로쓰기 한글 현판이 걸리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아야 옳다. 그렇게보면 50년도 더 된 논쟁이었다. 1865~68년 사이에 경복궁과 함께 복원..